거울을 보며 자신의 몸에 만족하는 여성은 거의 없다. 충분히 아름답고 이상적인 몸매를 가진 사람조차 자신의 몸을 ‘결점 투성이’라며 질책한다. 더 아름다운 몸매를 만들기 위해 강하게 식단을 조이고, 숨이 넘어가기 직전까지 운동에 매진하며 자신을 극한으로 내몰기도 한다.
최근 배우 이태임 씨(32)는 극도로 마른 몸매로 브라운관에 등장, 하루에 밥 세 숟가락으로 몸매관리를 한다는 ‘세숟가락 다이어트’로 화제가 됐다. 기자들은 이를 ‘철저한 자기관리’라고 보도하며 건강에 해가 될 수 있는 초절식 다이어트를 긍정적인 이미지를 심어주기도 했다. 대중 앞에서 완벽한 모습을 보이고 싶은 여배우의 심정은 이해되지만 결국 몸을 혹사시키는 잘못된 방법이지 단연코 ‘잘된 다이어트’로는 볼 수 없다.
곽정은 작가는 이를 두고 ‘밥 세숟가락으로 하루를 버틸 정도는 돼야 자기관리하는 사람이라는 억압적 가치판단이 전달될 수 있는 잘못된 표현’이라며 기자들을 비판하기도 했다.
세숟가락 다이어트처럼 자신의 기초대사량에 한참 미치지 못할 정도로 적은 열량만을 먹는 것을 초절식 다이어트라고 한다. 오한진 을지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체중감량의 최종 목적은 지방을 줄여 건강하게 사는 것”이라며 “단기간에 체중에 큰 변화를 주기 위해 초절식 다이어트를 하면 지방보다 근육을 크게 소실하며, 비타민 등 필수영양소가 부족해져 노화현상이 나타날 우려가 높다”고 지적했다.
초절식 다이어트는 부작용을 일으킬 확률이 크다. 과격한 식단조절은 음식에 대한 욕구를 조절하는 데 어려움을 느끼게 만들어 요요현상으로 가는 지름길이 되기도 한다. 또 무기력감 등 심리적인 면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오 교수는 “우울증은 다양한 식이장애에 동반되며 특정 음식을 먹는 것에 대한 불안, 몸매가 다른 사람에게 보여지는 것에 대한 불안,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음식을 먹어야 할 때 느끼는 불안 등이 강박장애로 이어지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한국은 미의 기준이 획일화된 측면이 강하다보니 연예인뿐만 아니라 일반인도 다이어트강박에 시달리는 경우가 적잖다. 이용제 연세대 강남세브란스병원 가정의학과 교수 연구팀이 지난 3월 발표한 연구 결과 출산 경험이 없고 정상체중(체질량지수 18.5~22.9)인 여성의 41.4%가 자신이 뚱뚱하다고 인식하고 있었다. 이 가운데 67.8%는 건강관리 목적이 아닌 균형 잡힌 외모를 갖기 위해 체중조절을 한다고 답했다.
이 교수는 “잘못된 체형 인식을 가진 여성은 그렇지 않은 사람과 비교했을 때 금식·폭식하거나, 무리하게 다이어트약을 먹는 등 과격한 체중조절에 나설 가능성이 크고 우울증이나 정신적 스트레스를 느끼는 위험도도 높다”며 “날씬한 몸매를 띄워주는 광고나 미디어의 영향으로 마른 체형에 대한 선호현상이 우려할 수준”이라고 비판했다.
실제로 폭식증, 거식증 등 섭식장애는 15∼25세 젊은 여성에서 호발한다. 주변에서 아무 생각 없이 던지는 ‘뚱뚱하다’, ‘살 좀 빼라’ 같은 말을 듣고 무리하게 다이어트하는 상황에서 흔하다. 초절식 다이어트를 넘어 음식을 과도하게 제한하면 거식증으로 악화되는 등 섭식장애를 겪거나 ‘다이어트중독’에 빠지게 된다.
유은정의좋은의원의 유은정 원장(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은 “비만과 식사장애는 정신의학 교과서에서 상당 부분을 차지할 정도로 중요한 정신질환이 됐다”며 “과도한 외모스트레스는 정신 건강을 해치기 마련이며 무리한 다이어트를 반복하거나 살이 찌는 것 자체에 두려움을 느낀다면 다이어트강박을 의심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김율리 인제대 서울백병원 섭식장애클리닉 교수는 “날씬함을 미의 기준으로 제시하는 문화적 환경과 사회적 압박이 섭식장애 증가의 큰 원인”이라며 “섭식장애인 경우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전문치료기관에 도움을 요청하는 게 가장 중요하며 신체적 위험 감소, 섭식병리 완화, 식습관 회복의 단계를 거쳐 치유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만성적이고 심각한 상태라도 치료계획을 ‘점진적 회복’에 둔다면 떨쳐낼 수 있다”고 덧붙였다.
가령 거식증은 매일 체중을 측정하고 몸 상태를 사진으로 찍어 음식을 먹어도 살이 급격하게 찌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게 중요하다. 신경성 폭식증은 인지행동치료로 일정한 식습관을 엄격히 유지하고, 습관적으로 구토나 설사를 하는 행위를 제한하도록 한다. 음식 스트레스와 정서적인 어려움을 타인과 대화로 풀도록 유도하면 식이장애 증상을 예방 및 억제하는 데 도움이 된다. 필요에 따라 약물요법을 진행하기도 한다.
초절식 다이어트 이슈를 불러일으킨 이태임 씨는 현재 무리한 다이어트를 중단한 상태다. 논란이 된 방송 이후 건강을 걱정하는 주변의 이야기를 받아들였다. 소속사인 매니지먼트 해냄 관계자는 “건강이 걱정돼 무리한 다이어트 대신 건강유지를 권해 현재 논란이 된 방송 녹화 당시보다 체중이 어느 정도 증가한 상태”라며 “향후 평소 체중인 50㎏대 초반을 유지할 계획”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