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은 경제적 효용성의 관점에서 보면 가장 쓸모없는 학문이다. 속도가 삶을 지배하는 시대에 철학은 느리고, 궁핍한 살림살이를 넉넉하게 해주지도 못한다. 그러나 사회적 문제가 생기면 언제나 철학이 없기 때문이라는 비판을 가한다. 피상적인 것만 보고 깊은 것을 밝혀보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오희천 서울신학대 교양학부 교수가 서양철학사 전체의 흐름을 다루면서 당시 철학이 현재에 미친 영향을 요점정리한 ‘한권으로 읽는 서양철학’을 내놓았다. 2007년에 나온 초판을 저자가 그동안에 바꾼 자신의 철학인식과 새로 수집된 자료를 바탕으로 손봐 10년만에 개정증보판을 내놓았다.
고대·중세철학에 책의 절반을 할애했고 칸트의 순수이성비판 및 실천이성비판, 실존주의를 중요하게 다뤘다. 포스트모더니즘(데리다), 과학철학(칼 포퍼, 토마스 쿤), 존 롤즈의 고전적 공리주의 및 정의론 등 현대철학도 놓치지 않고 소개했다.
저자는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와 관련, 현상의 세계에 사로잡혀 그것이 전부인 것처럼 사는 동굴안의 죄수들이 대다수를 차지한다며 추론적 이성과 지성적(신적) 직관을 통해 사물의 본질을 직관할 수 있으며, 변하지 않는 완전한 세계에 도달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감각적 경험을 중시했다. 이런 관점에서 질료와 형상과 관련, 개체를 형성시키는 실체적인 힘이 형상에 있다고 보고 형상이 질료보다 우선시되는 개념이라고 설파한다.
중세철학은 기독교 교리를 체계화하는 교부철학과 이를 다시 철학적으로 변증하는 스콜라철학으로 구분할 수 있다고 저자는 정의했다.
스피노자는 자기가 원인인 능산적 자연과 다른 원인으로 태어난 소산적 자연으로 나누고 후자 속에 전자가 표현되는 방식으로 신이 존재한다는 만유내재신론을 주장했다. 이는 자연이 곧 신이라는 범신론과는 구별된다는 것이다. 스피노자 철학의 핵심은 신에 대한 지성적 사랑이다. 여기서 스피노자의 신은 기독교나 유대인의 신이 아니라 비인격적인 신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순수이성이란 경험에 의존하지 않고서 갖게 되는 인간의 총체적인 의식을 말한다. 이를 비판하는 것은 이성의 가능성과 한계를 재점검하는 것이다. 어떻게 선험적으로(경험하지 않고도) 종합적인 판단이 가능한가. 칸트는 과거의 잘못된 형이상학을 지적하고 학문적으로 새롭게 해석한 주역이라고 저자는 평가했다.
또 실존은 내적지향적, 개인주의적인 게 아니라 오히려 언제나 ‘타자지향적’고 규정했다. 실존은 타인과의 소통을 통한 ‘사랑의 투쟁’에서 실현된다. 그 과정에서 자신의 존재를 내적으로 인식하게 되고, 사랑의 빛에서 완전한 평화에 도달한다는 게 실존의 궁극적 지향이라는 설명이다.
저자는 서울신학대를 졸업하고 독일 쾰른대에서 석·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서울신학대에서 철학과 논리학을 가르치고 있다.
오희천 저, 종문화사 간, 408p, 1만7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