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은 지금 여자친구한테 진짜 잘해줘야겠다. 그 머리 받아주는 사람이 또 어디 있겠어?”
직장인 김모 씨(30)는 최근 대학 후배로부터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를 들었다. 1년 전 입사 이후로 급격하게 머리숱이 빠지더니 어느새 정수리가 훤해졌다. 아직 ‘바코드컷’(탈모인이 빈 정수리를 옆머리로 가리는 헤어스타일)을 할 정도는 아니지만, ‘팡팡이’(머리숱 없는 부위에 색을 입히는 헤어메이크업 도구)로도 커버하기 어렵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지만 강력한 ‘돌직구’를 들으니 마음이 착잡했다.
탈모는 ‘노화현상’만으로 보긴 어렵다. 한국 남성은 탈모가 시작되는 연령이 점점 낮아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는 추세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조사 결과 2016년에 건강보험 적용을 받은 원형 탈모증 환자 16만3785명 중 20~30대가 7만1330명(43.5%)이었다. 이 중 20대 환자는 2012년과 비교해 7.5%나 증가했다.
탈모를 인식하는 계기는 30대 전으로 조사됐다. 닐슨코리아는 지난달 25~45세 한국 남성 801명을 대상으로 탈모 관련 설문조사를 시행했다. 응답자 중 47%가 탈모로 고통받고 있었으며, 이 가운데 절반 이상이 30세 이전에 처음 탈모를 인식했다.
외모지상주의는 탈모인의 자존감을 갉아먹는 큰 요인으로 조사됐다. 탈모는 외적으로 나이가 들어 보이게 만들고, 이는 한창 사회생활·연애 등 하고 싶은 게 많은 20~30대의 의욕을 떨어뜨리고 있었다. 실제로 탈모 때문에 연애, 취업 등에 제약을 받았다는 경험담은 온라인 탈모 고민 게시판에서 수없이 볼 수 있다.
대학생 황모 씨(26)는 “2년 전부터 점점 머리숱이 가늘어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며 “취업준비 중인데 면접에서 ‘외모는 이미 과장급인데’라는 이야기를 듣기도 하고, 소개팅은 엄두도 내지 못하며, 두상이 예쁘지도 않아 머리를 밀면 오히려 ‘사회에 불만있냐’는 말만 듣는다”고 말했다. 이어 “심지어 탈모 때문에 모든 일이 제대로 풀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며 “탈모가 심해진 뒤로 성격도 소심해지고, 불평불만이 늘어난 듯하다”고 털어놨다.
실제로 같은 설문에서 한국 남성은 외모의 중요성에 대해 ‘중요하다’(60%), ‘매우 중요하다’(25%)라고 응답해 85% 이상이 외모가치에 높은 비중을 두고 있었다. 특히 30대가 외모에 더 많이 신경을 썼다.
이와 함께 모발이 외모와 자존감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했다. 설문 결과 모발이 ‘내 삶과 외모에 서 중요하다’(39%), ‘자존감을 증가시키는데 중요하다’(12%)고 답한 사람이 50%를 넘었다. ‘풍성한 머리’를 위해서는 성관계, 스마트폰 사용, 음주 등을 1년간 포기할 수 있다고 답하기도 했다.
심리학자들은 탈모가 특히 젊은 남성들의 자신감과 자존감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으며, 심할 경우 우울증과 심한 정서적 고통으로 이어질 수 있어, 이를 적극적으로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젊은이의 탈모는 중장년층이 머리카락이 빠지기 시작작할 때 ‘나도 이제 다 늙었구나’ 하고 느끼는 상실감과는 상당히 다른 감정을 갖는 것으로 유추된다. 온라인 게시판에는 서로 누가 더 탈모로 인해 고통받는 상황에 놓였는지 자조하는 글을 올리며 위로받고, 문제를 인식하고 괜찮은 병원 정보나 치료법을 공유하거나, 자신의 외모를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에 불만을 느끼며 분노를 표출하는 등 다양한 반응을 보인다.
젊은 탈모인들은 어떻게든 자신의 현상을 부정하려고 한다. 이런 탓인지 20~30대는 탈모의 원인이 유전보다 스트레스에 있다고 여기는 게 특징적이다. 보통 ‘남성형 탈모’(Androgenetic Alopecia)는 유전적인 요소가 가장 흔한 원인으로 알려져 있다. 남성형 탈모의 진행 과정은 모든 사람이 동일하지만, 스트레스 등 여러 요인이 진행 속도를 높이거나 반대로 늦추기도 한다. 전문가들은 단순 스트레스로 인한 문제보다 탈모 유전인자가 스트레스로 인해 빨리 발현된 것으로 보고 문제가 심각하다면 조기에 치료하는 것만이 ‘해답’이라고 설명한다.
임이석 테마피부과 원장은 “탈모를 예방하거나 진행속도를 늦추려면 금연, 금주, 규칙적인 운동 및 건강한 식습관을 갖는 게 기본인데 현대사회에서 이를 제대로 지키기란 굉장히 어려운 게 사실”이라며 “요즘 젊은이 중에는 자발적으로 병원을 찾는 사람도 많지만, 반대로 단순 스트레스 문제로 여기거나, 민간요법에 의존하며 방치하다 오히려 치료시기를 놓치는 경우도 상당수”라고 말했다.
심우영 강동경희대병원 피부과 교수는 “탈모 치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조기 약물 복용”이라며 “약물치료도 누구에게나 다 적용되는 것은 아니어서 머리카락이 가늘어지다 없어진 뒤에 복용하면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어 “경구치료제는 가늘어지고 짧아진 모발을 굵고 길게 만드는 역할을 하는데 대부분의 환자는 머리카락 수에만 민감해 초기에 ‘별 효과가 없는 것 같다’며 중단하고 상태가 악화돼 후회하며 다시 치료에 나서는 경우가 적잖다”고 덧붙였다.
다만 탈모 증상이 심하지 않은 상황에서 치료를 시작하면 별다른 효과를 보기 어려운 만큼 면밀한 진단받은 뒤 치료에 나서야 한다. 한번 약물치료를 시작하면 이를 꾸준히 유지해야 하며, 도중에 치료를 멈추면 치료 이전의 탈모 수준으로 돌아갈 수 있어 주의해야 한다.
심 교수는 “모발이식의 경우 탈모가 많이 진행된 뒤에는 이식할 모발도 한정돼 있고 효과도 적어 모발선이 이마 라인 뒤로 후퇴했다면 고려할 만하다”며 “하지만 젊은이 중 약간의 탈모에도 이식을 고려하는데 대부분 과민한 반응으로서 약물치료를 꾸준히 시행하는 것부터 도전하는 게 순서”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