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원 고모 씨(34)는 3개월 전부터 중요한 회의나 업무 관련 미팅 때 시도때도 없이 기침이 나와 난감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특히 영화관 같이 조용한 장소나 지하철처럼 사람이 많이 모인 공공시설에서 기침이 멈추지 않아 다른 사람들의 눈총을 받기도 했다. 처음엔 감기 초기 증상이라고 생각해 약을 먹어봤지만 나아지지 않았고 임시 방편으로 사탕을 물고 다녀봤지만 별다른 효과는 없었다. 그러던 중 직장에서 정기 건강검진을 받은 결과 후두염과 초기 역류성식도염이 발견됐고 이로 인해 기침이 지속적으로 나올 수 있다는 진단을 받았다.
기침은 인체의 중요한 방어작용 중 하나로 세균이나 가스처럼 해로운 이물질이 기도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고, 이미 들어온 이물질이 기도 밖으로 배출되도록 돕는다.
기침은 외부자극으로부터 기도를 깨끗하게 유지시키는 정화작용을 한다. 물론 외부자극에 의해서만 발생하는 것은 아니며 가래·콧물·위산 등 몸속에서 분비되는 물질, 기도염증, 종양, 귀 바깥쪽에 생기는 자극 등이 원인이 될 수 있다.
봄철엔 건조한 날씨 탓에 마른기침이 자주 나온다. 기관지는 섬모, 점막, 그 위를 덮고 있는 점액으로 구성된다. 정상적인 상황에선 기관지가 촉촉하게 점액으로 잘 덮여 있고 섬모는 공기 중 이물질, 먼지, 세균 등을 걸러준다. 하지만 습도가 낮고 건조한 봄엔 점액이 마르면서 섬모기능이 떨어져 바이러스나 이물질이 잘 들어와 기침이 심해질 수 있다.
콧물, 코막힘 등 일반적인 감기 증상이 나타나지 않고 마른기침이 3~8주 이상 계속되면 지속된다면 후두염, 역류성식도염, 폐질환 등 다른 원인질환을 의심해볼 수 있다.
후두염은 성대 아래에 염증이 생겨 후두가 빨갛게 부어오르고 목에 통증이 생긴다. 감기와 증상이 비슷하지만 콧물이나 코막힘보다는 후두 내 염증으로 인한 쉰 목소리, 음성 상실, 마른 기침, 이물감 등이 나타난다. 숨쉴 때마다 강아지가 짖는 ‘컹컹’ 소리와 ‘쌕쌕’거리는 쇳소리가 나오는 게 특징이다. 세균이나 파라인플루엔자바이러스(parainfluenza virus)로 인한 급성 후두염이 전체 환자의 85%를 차지하며 장기적인 흡연, 위산 역류, 음성 오남용 등도 원인으로 꼽힌다.
후두는 목 속의 공기가 통과하는 호흡기관으로 코와 입으로 호흡한 공기가 지나갈 때 이물질을 걸러내는 가습기 역할을 한다. 성대를 포함한 상기도 중 폭이 가장 좁은 부위여서 염증에 의해 더욱 좁아지면 공기가 원활하게 통과하지 못해 호흡에도 문제가 생긴다. 특히 생후 3개월부터 5세까지 아이는 후두가 성인보다 더욱 좁아 염증에 의해 기도가 좁아지면 질식할 수 있어 평소 손발을 자주 씻고 양치질에 신경써야 한다.
후두염은 항생제 없이 염증과 부기를 줄여주는 소염제만으로 1주일 이내 증상이 개선된다. 하지만 단순 감기로 여겨 제때 치료하지 않으면 자칫 만성화되기도 한다. 이럴 경우 말하지 않고 가만히 있을 땐 멀쩡하다가 입을 열어 소리를 내면 목소리가 변하고 목통증이 생긴다.
박일석 한림대 동탄성심병원 이비인후과 교수 “쉰 목소리와 목통증이 2~3주 이상 지속되거나 목소리가 완전히 나오지 않으면 후두염이나 편도염일 가능성 있어 병원을 찾아 정확한 검사를 받는 게 중요하다”며 “습관적인 헛기침, 가래 뱉기, 술과 담배 등은 목의 건조감을 더하고 붓게 할 수 있어 삼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성대 내 염증이 계속 자극받아 발생하는 현상으로 심하면 성대궤양, 성대폴립, 라인케부종(성대점막 부종, laryngeal edema) 등으로 악화돼 목소리가 영구적으로 변할 수 있다.
목소리, 목소리 떨림, 음성 변화 등 증상이 나타나면 말을 많이 하지 말고 성대를 쉬게 해줘야 한다. 교사, 텔레마케터, 영업직 등 업무상 자주 말해야 하는 직업군은 성대가 마르지 않도록 틈틈이 수분을 섭취하고 카페인, 알코올, 맵고 짠 자극적인 음식은 피해야 한다. 집이나 사무실에서 가습기를 사용하고 요즘처럼 미세먼지가 심할 땐 외출 시 마스크를 꼭 착용하도록 한다. 증상이 2주 이상 이어지면 이비인후과를 찾아 정확한 검진을 받는 게 중요하다.
역류성식도염도 만성기침을 초래하는 원인이다. 위산이 상부 식도나 인후두(입천장과 식도 사이)까지 역류해 염증을 일으키면 기침과 이물감이 나타난다. 가슴 한 가운데 뼈인 흉골에 타는 듯한 작열감이 느껴진다. 만성기침의 5~7%가 이 질환에 의해 발생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기침을 반복하면 복압이 증가해 위식도역류가 심해질 수 있어 조기에 치료하는 게 중요하다. 취침 3시간 전에 음식을 먹거나, 과음 후 바로 잠자리에 들거나, 꽉 끼는 옷을 입고 자는 것을 피하고 수면 시 베개를 10㎝ 정도 높이면 증상 완화에 도움된다.
이밖에 쌕쌕거리는 기침은 폐렴, 천식, 모세기관지염 등 기관지 염증을 의심해볼 수 있다. 소아나 면역력이 약한 사람에게 주로 나타나며 호흡이 빨라지고 호흡곤란 증상이 나타난다.
가슴에 통증을 동반하는 기침은 폐렴이나 늑막염, 말할 때마다 기침이 나온다면 위축성비염일 수 있다. 일반 알레르기비염은 콧물이 맑지만 위축성비염은 끈적한 게 특징으로 목에 뭔가 붙어 있는 느낌이 들고 입 안이 쉽게 건조해진다.
박 교수는 “기침을 억제하기 위해 무분별하게 감기약이나 진해거담제를 복용하면 오히려 병을 키울 수 있고 원인질환을 제대로 발견하기 어렵게 만든다”며 “가래가 많다고 해서 가래 배출을 의도적으로 막으면 폐렴으로 악화될 수 있어 주의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평소 기침을 자주 한다면 세탁과 실내 청소를 철저히 하고, 자주 환기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