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노르웨이 스발바르군도에서 한 몸에 암컷과 수컷의 생식기가 함께 있는 변종 북극곰이 발견됐다. 충격적인 변종이 탄생한 원인은 잔류성유기오염물질(Persistent Organic Pllutants, POPs)로 인한 호르몬 교란이었다.
지구에서 가장 깊은 태평양 마리아나해구마저 독성물질에 의해 심각하게 오염됐다는 조사결과가 나왔다. 이달 초 영국 뉴캐슬대 해양과학기술대 앨런 제이미슨 박사팀이 무인잠수정을 통해 태평양 마리아나해구 10㎞ 깊이 해저에 서식하는 단각류(갑각류 일종)의 독성화학물질 농도를 검사한 결과 중국의 오염된 강에서 잡은 것보다 POPs 수치가 50배 높게 나타났다. 인간의 접근이 거의 불가능해 청정해역으로 여겨졌던 이 곳마저 독성물질이 검출된 것은 사실상 지구의 모든 곳이 오염됐음을 의미한다.
일명 ‘팝스’로 불리는 잔류성유기오염물질은 잔류성·농축성·장거리 이동성을 특징으로 하는 유해물질로 생명체 지방조직에 축적돼 면역체계 교란, 중추신경계 손상, 출산장애, 암 등을 일으킨다. 대부분의 산업생산 및 폐기물을 저온 소각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며, 한번 동·식물 체내에 축적되면 오랫동안 남아 지구촌 생태계 전체를 위협할 수 있다.
현재 폴리염화바이페닐(Polychlorinated Biphenyls, PCBs), 다이옥신(dioxins), 퓨란(furans), 토양살충제로 쓰이는 올드린(aldrin), 방충제 딜드린(dieldrin), 살충제인 디디티(DDT, dichloro-diphenyl-trichloroethane)·헥사클로르벤젠(hexachlorobenzene)·톡사펜(toxaphene)·헵타클로르(hepachlor), 제초제 클로르덴(chlordane) 등 총 32종류가 POPs로 지정돼 있다.
인간이 처음 POPs 물질을 발명한 것은 약 100년 전으로 1930~1940년대 산업화 과정을 거치면서 종류가 다양해졌다. 특히 DDT로 대표되는 유기염소계 농약은 탁월한 살충 효과를 인정받아 개발자인 스위스 화학자 폴 헤르만 뮐러(Paul Hermann Muller)는 1948년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하지만 1960년대로 접어들면서 엄청난 양의 POPs 물질이 지구 생태계에 이상을 초래하자 위험성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결국 1970~1980년대를 기점으로 POPs 물질 중 가장 독하다고 알려진 염소가 붙은 PCBs의 생산과 사용이 법적으로 금지됐다.
2001년 5월 22일엔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POPs 제조와 사용을 규제하기 위한 협약(잔류성 유기오염물질 관리에 관한 스톡홀름협약)이 채택돼 2004년 발효됐다. 한국은 2002년 8월 26일 스톡홀름협약을 비준한 뒤 ‘잔류성 유기오염물질 관리법’을 제정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POPs가 일상생활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다. 대표적인 게 브롬과 불소다. 브롬(브로민, BR) 결합 POPs 물질인 폴리브롬화디페닐에테르(PBDE)는 난연제로 쓰인다. 화재가 발생했을 때 불이 붙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컴퓨터를 비롯한 각종 전자제품, 반도체, 불이 붙지 않는 카펫, 물이 스며들지 않는 방석과 소파, 비가 새지 않는 의류, 코팅 처리된 일회용품 등에 광범위하게 사용됐다. 2009년 국제협약에 의해 사용이 금지됐지만 그전에 이미 수십 년 동안 막대한 양이 생산돼 일상생활 곳곳에 퍼져 있는 실정이다.
PBDE는는 화학적으로 안정된 상태가 아니어서 온도가 높아지면 공기 중으로 배출된 뒤 호흡기 등을 통해 인체에 침투 및 축적될 수 있다. 갑상선호르몬 등 인체호르몬과 비슷한 구조를 띠어 몸에 들어가면 원래 호르몬의 자리를 빼앗아 정상적인 기능을 방해한다.
갑상선호르몬은 아기의 지능·신경발달·성장 등에 영향을 미치므로 특히 태아와 아기의 성장 발육에 치명적이다. 산모와 태아는 POPs를 비롯한 각종 환경호르몬의 노출에 가장 민감해 소량의 PBDE에만 노출돼도 갑상선호르몬이 교란될 수 있다.
프라이팬의 검은 코팅제로 사용되는 과불화옥탄산(PEOA)는 불소가 결합된 유기화학물질로 당뇨병과 고혈압 위험을 높이고 불임을 초래할 수 있다. 장기적으로 뇌혈관을 좁혀 중풍이나 치매를 유발하기도 한다.
프라이팬을 불로 가열하면 온도가 올라가면서 불소수지코팅제 일부가 기화돼 과불화옥탄산이 배출될 수 있다. 프라이팬 자체에서 녹아 나오기도 한다. 이것을 요리 과정에서 코로 들이마시거나, 음식물로 섭취하면 인체에 쌓이게 된다. 2004년 양재호 대구가톨릭대 건축과 교수팀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혈중 과불화옥탄산 농도는 아시아인, 특히 한국 여성에서 유독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1956년 프랑스의 조리기구 회사 테팔(TEFAL)은 이 물질이 들어간 불소수지코팅제인 테플론을 사용해 음식이 눌어붙지 않는 ‘테플론 코팅 프라이팬’을 출시,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다.
흡연은 POPs 수치를 높이는 주요인이다. 지선하 연세대 보건대학원 교수팀이 21∼73세 건강한 성인 401명(남 232명, 여 169명)을 흡연자 190명과 비흡연자 211명으로 나눠 혈청 내 POPs 농도를 측정한 결과 흡연 여성은 비흡연 여성보다 독성물질 농도가 3배 이상 높았다. 여성이 남성보다 체내 POPs 농도가 높은 것은 상대적으로 대사능력이 떨어져 독성물질을 체외로 배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흡연을 통한 POPs 흡수는 담배 자체가 유해물질 축적의 원인이긴 하지만 대기 중 오염물질도 함께 흡입될 가능성을 안고 있다.
이밖에 폴리염화바이페닐(PCBs)는 변압기, 절삭유, 절연유 등 다양한 산업 분야에서 장기간 사용된 물질로 세계보건기구 국제암연구소로부터 1급 발암물질로 분류됐다.
POPs 노출을 최소화하려면 손을 잘 씻고 진공청소기와 물걸레를 사용해 틈틈이 청소해주는 게 좋다. 전자제품이나 가구를 너무 자주 바꾸면 폴리브롬화디페닐에테르 노출량이 증가할 수 있다. 과불화옥탄산으로 코팅된 코팅된 조리기구는 가급적 사용하지 않는다. 식품 중엔 유제품, 고기, 생선류 등에 POPs가 다량 함유될 위험성이 높다. 이들 식품을 아예 안 먹을 수는 없으므로 통곡물과 채식 위주로 식단을 짜는 게 바람직하다.
현미 등 통곡물에 다량 함유된 섬유소는 담즙과 함께 나오는 POPs를 대변으로 배출시키는 데 효과적이다. 채소와 과일에 풍부하게 들어있는 식이섬유와 파이토케미컬은 체내에 존재하는 화학물질을 몸 밖으로 배출하는 데 탁월한 효과를 나타낸다. 파이토케미컬은 식물성을 의미하는 ‘파이토(phyto)’와 화학을 의미하는 ‘케미컬(chemical)’의 합성어로 천연 항산화제로 유명한 ‘글루코시놀레이트(십자화과 채소에 풍부한 항발암 및 항산화제)’, ‘플라보노이드’, ‘라이코펜’ 등이 대표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