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에 대한 한국인의 관심은 유별나서 어떤 약초나 식품이 몸에 좋다는 방송이 나오면 당장 다음날에 불티나게 팔려 나간다. 효능이나 안전성에 대한 검증은 나중 일이다. 특히 한약재는 천연재료여서 양약보다 부작용이 덜하고 효과가 좋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는데, 독초를 약초로 오인하거나 체질에 맞지 않는 한약재를 먹을 경우 역효과를 볼 수 있다.
대중에게 잘 알려진 한약재 중 감초(甘草)는 한의학에서 다른 약재의 약리작용을 순화하는 역할을 해 한약처방에 들어가지 않는 경우가 거의 없다. 어디든 빠지는 법이 없다는 ‘약방의 감초’라는 속담도 여기에서 나왔다.
동의보감은 감초가 온갖 약의 독을 없애주고 모든 약을 조화시킨다는 의미로 ‘국로’라고 명명했다. 국로는 ‘나라의 어르신’, ‘어진 재상’이라는 뜻으로 모든 약과 어울린다는 의미다.
박 원장은 “감초를 생것 그대로 쓰면 항염효과를 볼 수 있고, 복통이나 근육통 완화에도 효과적”이라며 “구운 감초는 성질이 따뜻해 입맛이 없거나 소화기능이 떨어진 환자에게 적합하다”고 설명했다.
감초에 포함된 ‘이소리퀴리틴(isoliquiritin)’ 성분은 유방암을 예방하고 폐경기 여성의 갱년기 증상을 완화하는 데 도움된다. 하지만 가임기 여성이 과다 복용할 경우 난소의 성장과 발달에 악영향을 줘 생식력이 떨어질 수 있다.
고혈압약을 복용하는 환자가 감초를 먹으면 약효가 떨어질 수 있다. 감초의 단맛을 내는 ‘글리시리진(glycyrrhizin)’이라는 성분은 인체에서 ‘스트레스호르몬’으로 불리는 코티졸 호르몬의 분비를 촉진한다. 코티졸이 분비되면 항염·항암 작용을 하지만 혈압이 올라가 고혈압약의 효과를 감소시키게 된다. 일반적으로 글리시리진은 암과 종양의 발생을 억제하고, 콜레스테롤을 감소시켜 동맥경화를 개선하며, 간 보호효과 등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고혈압과 부종을 일으키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또 감초를 과용할 경우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 분비가 감소하면서 성욕감퇴 등 성기능장애가 나타날 수 있다고 보고되고 있다.
글리시리진은 이밖에 소변을 통한 칼륨 배출을 촉진해 근육경련을 초래하거나 심장박동을 불규칙하게 만들 수 있다.
감초만큼 대중에게 익숙한 칡은 동의보감에서 칡즙이 술독을 풀어주고 갈증을 멈추게 한다고 기록돼 있다. 칡뿌리인 갈근에 함유된 ‘퓨에라린(puerarin)’ 성분은 체내 알코올 분해를 촉진한다.
박 원장은 “칡은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이 석류보다 많아 갱년기 및 생리통에 효과적이며 혈액순환 개선, 혈당 조절, 중금속 배출, 변비 개선, 피부미용 등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며 “달걀과 궁합이 잘 맞아 함께 복용하면 단백질과 무기질을 보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한의학적으로 몸이 냉하거나 기력이 약한 사람에겐 권장되지 않는다. 위장이 약한 사람, 간질환 환자, 임신 중이거나 임신을 계획 중인 여성도 섭취를 피하는 게 좋다. 한편 칡과 이름이 비슷한 등칡은 엄연히 다른 약초로 신장을 손상시키고 암을 유발할 수 있어 10년 전부터 국내 유통이 금지됐다.
구기자(枸杞子)는 기력 회복에 도움을 줘 ‘회춘 음식’으로 인기를 끌었다. 한방에서는 소양인의 음기를 보강하는 보약으로 처방한다. 직장인이나 수험생 등 평소 정신적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사람이 장기간 복용하면 피부에 윤기가 흐르고 심리적인 안정감을 갖는 데 도움된다.
하지만 소화기관이 좋지 않은 사람이 장기간 다량 복용하면 설사가 발생할 수 있다. 몸에 상처나 염증이 있는 사람도 섭취를 피하는 게 좋다. 또 구기자를 다량 복용하면 포도당과 아미노산 흡수가 촉진돼 몸무게가 늘어날 수 있어 다이어트 중인 여성은 주의해야 한다.
천궁(川芎)은 두통, 순환장애, 생리불순 등을 치유하는 데 도움된다. 휘발성 정유 성분이 1~2% 함유돼 특유의 냄새가 난다. 정유 성분은 중추신경계와 대뇌를 억제해 진정 작용을 한다. 혈액순환을 왕성하게 해주고 나쁜 피인 어혈을 제거해 통증을 가라앉히는 진통효과가 있다. 이밖에 여성의 월경불순·월경통·산후복통과 어지럼증 개선에 도움된다. 단 강한 휘발성과 어혈제거 효과 탓에 초기 임산부에겐 사용이 권장되지 않으며, 용량 조절에 실패할 경우 두통과 어지럼증이 심해질 수 있다.
당귀(當歸)는 ‘마땅히 돌아오기를 바란다’는 뜻으로 중국의 옛 풍습에 부인들이 싸움터에 나가는 남편의 품속에 당귀를 넣어 준 것에서 유래했다. 당시 사람들은 전쟁터에서 기력이 다했을 때 당귀를 먹으면 기운이 회복돼 돌아올 수 있다고 믿었다.
한의학에선 몸을 덥게 하고 통증을 억제하며 혈액순환을 도와 갱년기증상 등 부인과질환 치료에 쓰였다. 갱년기 여성 사이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백수오가 지난해 가짜 백수오 파동을 계기로 추락하면서 대신 인기를 누리고 있다. 관절염, 변비 등에 좋은 약재이기도 하다.
박 원장은 “당귀의 효능 중에는 자궁을 수축시키는 효능이 포함돼 임산부가 섭취할 경우 산모와 태아에게 악영향을 줄 수 있다”며 “소화기계가 약해 설사를 자주하는 환자도 섭취를 피하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녹용(鹿茸)은 사슴의 갓 자라난 뿔로 면역력을 강화시켜 잦은 감기나 잔병 치레를 막아준다. 뼈를 튼튼하게 해 성장에 도움을 주고, 위장기능을 강화해 소화를 촉진하고 식욕을 돋궈준다. 하지만 따뜻한 성질의 약재여서 열이 많은 환자에게는 좋지 않다. 과다 섭취시 설사, 두통, 구토, 소화불량, 가려움 등 부작용을 유발할 수 있다. 동맥경화, 고혈압, 신장염 환자는 섭취를 피하고 감기로 열이 날 때에도 먹지 않는 게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