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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후 운전공포증 해소법은 … 19금 블랙박스 영상, 트라우마 키워
  • 박정환 기자
  • 등록 2016-11-30 20:01:58
  • 수정 2016-12-02 18: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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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TSD 일종, 운전대만 잡아도 긴장되고 신경질적 반응 … 당분간 나홀로 운전 금물

주부 이모 씨(29·여)는 두 달 전 차를 몰고 시댁에 다녀오다 깜빡 졸아 앞차와 충돌하는 사고를 냈다. 이 사고로 차량 앞 범퍼가 크게 찌그러졌고 앞차 운전자와 동승자가 전치 4주의 부상을 입었다. 이 씨는 별다른 부상을 당하지 않았지만 사고 후 공포감 탓에 운전대를 잡을 수 없게 됐다. 최근 남편의 도움으로 운전을 시도해봤지만 자동차 소리만 들려도 불안하고 손이 떨리면서 식은땀이 흘러 포기해야 했다.

직장인 권모 씨(30)는 얼마 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다수의 사망자를 낸 교통사고 블랙박스 영상을 본 뒤 운전하기가 망설여졌다. 승용차가 대형차와 충돌하면서 종잇장처럼 구겨지는 모습에 큰 충격을 받았다. 마지못해 운전대를 잡아도 평소보다 긴장되고 틈만 나면 백미러와 후방거울을 쳐다보게 됐다. 반대편 차선에서 대형차가 오면 자신도 모르게 반대쪽으로 핸들을 살짝 돌리는 위험한 습관도 생겼다.

지난 5월 기준 국내 자동차 등록대수는 약 2130만대로 국민 2명 당 1명이 자동차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동차 수가 많아진 만큼 각종 교통사고 발생률도 높아지고 있다. 지난해 총 도로교통사고 건수는 23만2035건으로 하루 평균 635건의 사고가 발생했다.

운전자 중 대다수는 가벼운 접촉사고를 포함해 크고 작은 교통사고를 겪게 된다. 감정적 동요가 큰 여성이나 초보운전자라면 사고를 당한 뒤 아예 운전을 포기해 면허증을 장롱 안에 고이 모셔두는 경우가 많다. 운전 숙련자라도 사고를 경험하면 트라우마 탓에 당분간 운전대를 잡기가 쉽지 않다. 최근엔 직접 사고를 겪지 않더라도 인터넷이나 TV를 통해 블랙박스 사고영상을 본 뒤 교통사고 트라우마를 호소하는 사례도 상당히 많다.

사고 후 운전을 거부하거나 과도하게 긴장하는 운전공포증은 일종의 트라우마로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 증상으로 볼 수 있다. 교통사고를 겪어 PTSD가 왔다면 생각하고 싶지 않은 사고 장면이 뇌리를 맴돌거나 꿈에서 등장한다. 이어 일종의 회피반응으로 다시 자동차를 타지 않으려고 하는 것 같은 심리적 거부 반응이 나타난다.

교통사고 당시와 유사한 상황에 놓이는 것을 극도로 경계하고 사고를 연상시키는 말이나 환경을 회피하게 된다. 점차 마음의 문을 닫고 대화하기를 꺼리거나 감정이 없는 사람처럼 멍한 채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심할 경우 과도한 각성 상태가 돼 자동차소리나 경적소리 등 사소한 것에 소스라치게 놀라고 가슴이 두근거리면서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게 된다.

서신영 차의과학대 교수는 “똑같은 사고를 당한 경우라도 사람에 따라서 외상후스트레스장애에 걸리기도 하고 가벼운 정서적 후유증만 경험하기도 한다”며 “사람마다 경험과 성격에 차이가 있고 스트레스에 대한 반응 양상과 대처 방법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어린이가 부모와 함께 차를 타고가다 교통사고를 당하면 정신적인 피해가 더 심각하다. 어린이는 자기표현이 서툴러 제대로 의사소통하기 힘들어 PTSD가 와도 진단이 쉽지 않다. 교통사고처럼 갑작스러운 충격 이후 아이가 초조하고 예민해져 작은 일에 지나치게 짜증을 내거나, 숙면을 취하지 못하고 악몽을 꾸거나, 자동차를 무서워하면서 타려 하지 않는 경우 PTSD를 의심해봐야 한다.
특히 장난감 자동차가 서로 부딪히는 놀이를 반복적으로 하거나, 사고 후 처리과정을 재현하는 듯한 놀이를 한다면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의 상담을 받을 필요가 있다.

직접 사고를 겪지 않더라도 19금 공포영화를 능가하는 블랙박스 사고 영상 등을 보고 트라우마를 겪는 사람도 많다. 지난 7월 영동고속도로 상행선 봉평터널 앞에서 발생한 관광버스 연쇄 추돌사고로 꽃다운 20대 여성 4명이 순식간에 목숨을 잃었다. 당시 촬영된 블랙박스 영상엔 사망자들이 타고 있던 K5 승용차가 버스기사의 졸음운전 탓에 속도를 줄이지 못한 관광버스에 부딪히며 심하게 파손되는 장면이 그대로 담겼다. 영상은 뉴스나 SNS 등을 통해 급속도로 퍼져나갔고 이를 본 시청자들은 ‘아무리 방어운전을 해도 뒤에서 덮치는 차를 어떻게 피하냐’며 큰 충격을 받았다.

블랙박스 영상은 정확한 사고 원인을 파악할 수 있어 억울한 희생자가 나오지 않도록 한다는 점에선 꼭 필요하다. 하지만 따로 삭제하지 않으면 몇 년이고 그대로 인터넷에 노출돼 있는 데다 끔찍한 사고장면이 담긴 영상을 연령 제한 없이 누구나 마우스 클릭 한번으로 볼 수 있다. 충격적인 영상을 반복적으로 시청하다보면 무덤덤해지고 안전불감증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정부가 블랙박스나 CCTV 사고영상 열람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세우고 지도·감독을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이 나오고 있다.

운전공포증을 극복하려면 운전할 때 호흡을 크게 삼키고 수시로 창문을 열어 신선한 공기를 마셔주도록 한다. 서 교수는 “트라우마가 해소될 때까지 혼자 운전하거나 혼자 차에 머무는 것을 피하는 게 좋다”며 “가급적 자신이 믿는 사람을 옆에 동석시킨 뒤 운전하는 모습을 관찰하게 하고 칭찬을 유도하도록 한다”고 조언했다. 운전에 대한 두려움이 패닉 상태까지 이어진다면 혼자 해결하려 하지 말고 전문적 치료를 받아야 한다.

사고 후 외상후스트레스장애를 최소화하려면 타인과의 상담을 통해 자신의 감정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게 바람직하다. 슬픔이나 불안 같은 감정이 정상적이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곧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하도록 한다. 교통사고 관련 뉴스나 방송을 보는 시간을 줄이고 일상적인 활동에 집중하는 게 좋다.

바쁘고 급격한 변화가 많은 현대인의 삶에는 뜻하지 않은 사건과 사고로 받는 트라우마나 상처가 너무 많지만 정신과에 대한 편견이 여전히 남아 있어 제때 치료받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나이가 어리거나 다른 질환을 동반한 경우라면 증세가 더 나빠질 수 있어 조기에 적절한 치료를 받는 게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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