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 비만인구, 미국보다 높다? … 한국인 체중 비해 복부비만률 높아 기준 완화시 당뇨병 환자 급증할 것
퍼스널트레이닝 센터를 운영하는 한모 씨(27·여)의 들키고 싶지 않은 비밀 중 하나. 인바디를 잴 때마다 ‘비만’ 판정을 받는다는 점이다. 165㎝에 70㎏, 근육량이 많아 겉보기엔 늘씬하고 탄탄한 몸매이지만 BMI 기준 25.71로 비만 판정을 받았다.
몸살감기로 병원을 찾아 몸무게를 잰 뒤 ‘비만하니 비만치료를 받으라’는 클리닉 실장의 말에 “매일 운동해서 건강검진 결과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해도 간호사는 절대 그렇지 않으니 무조건 치료하는 게 좋다는 말에 불쾌했던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사회적으로 살이 찌는 것을 무서워하는 분위기가 강한 데도 불구하고 지난 10년 간 한국 성인 비만율은 28.7%에서 32.4%로 증가했다. 2015년에는 한국 성인 고도비만율이 4.8%, 남성은 5.6%로 나타나며 ‘한국은 더 이상 비만 안전국이 아니다’는 경고등이 켜졌다.
이같은 결과가 나타난 배경에는 ‘각박한’ 비만기준 때문이라는 의견이 제기되며 ‘BMI논쟁’이 거세지는 상황이다. 심지어 한국이 ‘미국 비만인구를 뛰어넘을 수도 있다’는 당황스러운 수치가 나오기도 했다. 이는 실제로 한국인이 미국인에 비해 비만하다기보다 한국과 미국이 적용하는 ‘비만 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나타난 결과다.
비만은 대개 체질량지수(BMI, Body Mass Index)를 이용해 진단한다. 현재 세계비만 기준은 △25~29.9㎏/㎡이면 과체중 △30㎏/㎡ 이상을 비만으로 정의하고 있다. 반면 아시아태평양 비만 기준은 △BMI 23~24.9㎏/㎡이면 과체중 △25~29.9㎏/㎡이면 비만 △30㎏/㎡ 이상이면 고도비만으로 본다. 아시아인은 인종적으로 체중이 적은 상태에서도 당뇨병 등 만성질환에 쉽게 노출된다 해서 기준이 낮아졌다. 즉 현재 세계비만 기준이 30㎏/㎡ 이상인 반면 한국은 25㎏/㎡ 이상이다.
서홍관 국립암센터 암예방검진센터 교수는 지금의 국내 비만 기준이 재검토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는 “미국 국민건강영양조사에 의하면 성인 남자 35.5%, 여자 33.4%가 비만이나 놀랍게도 우리나라에서 비만 기준을 25 이상으로 사용하면 성인 남자의 38.7%, 성인 여자의 28.1%가 비만으로 나와 남성 비만율은 미국보다 높다”고 말했다. 이어 “BMI25 이상을 비만으로 규정할 경우 건강한 국민들 일부가 비만 환자가 돼 불필요한 진료, 과도한 걱정과 자기비하를 겪어야 하는 만큼 기준이 완화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비만클리닉 등을 ‘미용 목적’으로 환자들은 대부분 BMI 25 안팎의 정상체중과 과체중을 왔다갔다 하는 정도의 체격을 가진 사람들이다. 서울의 한 미용클리닉에 근무하는 상담실장 A모 씨는 “병원에 진짜 뚱뚱한 사람은 오히려 소수”라며 “평범하거나 약간 통통한 정도인 사람들이 대부분이지만 이들은 자신이 ‘뚱뚱하다’며 극도로 걱정한다”고 말했다.
BMI 개정을 주장하는 전문가들은 이처럼 비만 기준이 너무 까다로워 비만에 대한 공포감을 조장하고, 과잉진료를 양산할 가능성이 크다는 근거를 대고 있다. 기준이 상향되면 사망률이나 질병발생률이 낮아지는 것은 물론 ‘경도비만’ 인구가 불필요하게 부정적 이미지를 갖거나 스트레스 받을 가능성이 현저히 줄어들 것이란 입장이다. 무리한 다이어트에 대한 과도한 집착도 줄일 수 있다고 본다.
사실 BMI는 건강과 체중 관계를 의학적으로 연구한 결과의 산물이 아니다. ‘비만 히스테릭’의 저자 이대택 국민대 체대 교수는 “BMI는 1800년대 중반 벨기에 천문학자·수학자였던 아돌프 케틀레가 사회물리학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개발한 것으로 의학·건강과는 별 연관성이 없는 지수였다”며 “19세기 보험업계와 수학자가 만든 지수가 21세기 세계인들을 웃고 울리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들 수치는 몸의 상태 변화를 살펴볼 수 있는 지표는 될 수 있겠지만 특정 범위를 설정해놓고 쫓아갈 목표는 될 수 없다”고 덧붙였다.
국내 BMI 기준은 지난해 10월부터 논란이 됐다. 여러 매체에서 한국인의 비만 기준이 서양보다 지나치게 낮은 탓에 겉보기엔 정상인 사람도 비만인이 되어버린다고 지적하면서부터다. BMI 25를 넘어도 건강하다는 연구도 뒤를 이었다. 2011년 서울대병원이 아시아인 114만명의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한국·중국·일본 등 동아시아인들은 BMI가 22.6∼27.5 사이일 경우 비만과 관련한 질병으로 사망할 가능성이 가장 낮았다.
실제로 비만 기준을 올리자는 주장은 현재 기준으로 ‘살짝 뚱뚱한 사람들이 되레 사망률이 낮다’는 연구결과에 근거하고 있다. 아시아 국가와 호주 등에서 1062만 명을 대상으로 5년간 체질량지수와 사망률과의 관계를 추적 조사한 연구에서 어느 나라나 사망률은 체질량지수 24~25 사이에서 가장 낮았다. 다만 체질량지수 27.5 이상부터는 눈에 띄게 사망률이증가했다.
대한비만학회는 이같은 주장을 근거로 BMI를 완화하자는 것은 ‘쓸데없는 논란’이라고 일축하고 있다. 일부 학자들이 논문을 통해 BMI 기준의 적절성에 대해 언급할 수 있지만, 이를 근거로 BMI 기준을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섣부르다는 입장이다.
기준 완화 반대론을 펴는 전문가들은 우리나라 비만 진단 기준이 세계 기준과 다른 것은 이유가 있다고 강조한다. 한국인 등 아시아인들은 BMI 25㎏/㎡ 이하에서도 당뇨병 및 심혈관계질환 위험이 증가하고 동일한 BMI에서 서양인보다 상대적으로 복부지방과 체지방률이 높은 편이어서 기준을 완화하면 건강관리를 소홀히 할 우려가 높다는 것이다.
김대중 아주대병원 내분비내과 교수는 “한국인은 정상 체중에 배만 나온 마른 비만 상태에서 당뇨병이 호발하는 만큼 비만 기준을 올렸다가는 경각심이 줄어 당뇨병 환자가 대거 늘어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다만 비만학회는 현재 체질량지수 23~25 사이를 과체중으로 분류하는 것을 없애는 방안을 심의 중이다. 아울러 체질량지수 25 이상은 운동과 식이 조절이 필요한 ‘생활습관형 비만’, 30 이상은 약물치료가 필요한 ‘의학적 비만’, 35 이상은 ‘병적 비만’으로 명명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