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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리 논란으로 본 ‘노브라가 어때서’
  • 정희원 기자
  • 등록 2016-09-05 09:27:42
  • 수정 2016-09-06 19: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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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슴, 개인의 신체 부위이지만 왜곡된 사회적 의미 담고 있어 … 푸시업브라 지고 브라렛 떠오른다

“브라(브래지어)를 왜 안해? 노출증 아냐?” 걸그룹 f(x) 출신 설리의 시원한 사진이 ‘노브라 논란’에 불을 지폈다. 설리는 종종 ‘노브라 차림’이라는 이유로 비난받았지만 최근 일부에서는 ‘이게 왜 비난받을 일인가’라는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가슴은 여성의 것이지만 여성을 뛰어넘는 ‘사회적 의미가 있는’ 신체 부위다. 문제는 그 의미가 조금 불편하다는 데 있다. 불과 얼마 전까지 보건복지부가 운영하는 ‘국가건강정보포털’에는 여성의 유방 사이즈, 유두 사이의 거리, 유륜의 직경 등을 그린 모식도와 “가슴은 남편에게 애정을 나눠주는 곳”, “제 2의 성기”라는 설명, 그리고 유방성형술에 대한 안내가 실려 있었다가 최근 바뀌었다.
 
최근 미국 맨부커상을 받은 한강의 소설 ‘채식주의자’ 주인공 영혜도 남편과 갈등을 겪게 만들고 남들에게 ‘유난스럽다’는 얘기를 들은 것은 단순히 브래지어를 외출할 때 착용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갑갑해서 착용하지 않은 것 뿐인데, 브래지어를 입지 않은 그녀의 행동은 큰 갈등을 낳는다.
 
옷 위로 도드라진 젖꼭지는 남자였다면 대수롭지 않게 여겨졌겠지만, 여자라는 이유로 당장 ‘호기심과 아연함, 약간의 주저가 어린 경멸’의 대상이 된다. 개인의 자유를 선택해도 결과적으로 영혜를 바라보는 타인의 시선과 수군거림을 받는다. 노브라가 그저 개인의 자유로만 해석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브래지어는 100여년간 여성의 가슴의 일부를 당연하다는 듯 차지해왔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푸시업브라’는 여성의 필수 아이템이었지만 이제 트렌드가 달라지고 있다. 인위적인 가슴 모양보다 자신의 가슴을 편안하게 드러내자는 게 대세다.
 
이번 유행은 ‘노브라’를 투쟁 수단으로 삼았던 1960년대 여성해방운동과는 조금 다르다. 오늘날 여성들은 정치적 이유가 아닌 개인의 안락함과 패션을 위해 노브라를 택한다. 이와 함께 얻는 ‘편안함’은 덤이다. 국내에서도 “옥죄는 브라 대신 브라렛(와이어 없이 편안함에 중점을 둔 란제리)을 착용한 뒤로 가슴 습진이 나았다”거나 “브래지어를 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훨씬 덜 덥다”며 “보통 브래지어 풀면 체했던 게 내려간다”는 등 ‘노브라’를 옹호하는 후기가 자주 보인다.
 
이같은 상황에서 ‘로망 속옷’으로 여겨지던 빅토리아 시크릿의 아성도 위협받는 분위기다. 빅토리아 시크릿의 모회사인 엘 브랜드의 주가는 올해 들어서만 30% 하락했다. 그동안 빅토리아 시크릿은 ‘가슴을 모아야 한다’, ‘섹시해져야 한다’, ‘힙업해야 한다’ 등 인위적인 볼륨을 속옷으로 만들어주겠다는 메시지를 전했지만 대세에 밀리고 있다는 의미다.
 
‘노브라’가 부담스러운 사람들은 브래지어를 버리고 브라렛를 택하고  브라렛을 택하는 분위기다. 빅토리아 시크릿도 결국 브라렛을 선보였다. 이 회사의 히트작이자 주력 상품이 가슴을 모아주는 ‘푸시업브라’인 점을 고려하면 ‘노브라 트렌드’는 세계 최대 속옷업체의 자존심까지 무너뜨리고 있는 셈이다.
 
노브라는 여성에게 득일까 실일까. 보통 브래지어가 가슴을 처지지 않게 해준다고 생각하는데 ‘의학적 근거가 없다’고 지적하는 의사도 꽤 있다. 2013년 4월 프랑스 브장송 대학의 장 드니 루이용 교수는 1997년부터 여성 330명의 브래지어 착용 습관과 신체 변화의 관계를 조사해 발표했다. 연구팀은 브래지어를 입은 여성의 가슴이 더 많이 처지고, 피부의 늘어짐을 유발하는 흡연과 임신 경험이 브래지어 착용 여부보다 가슴 모양에 더 많은 영향을 미친다는 결론을 냈다. 브래지어를 오래 착용한 여성들이 등과 어깨 통증을 호소해 득보다 실이 많다는 내용까지 첨언했다.
 
다만 이같은 결과는 연구가 더 필요하다는 비판이다. 가슴 모양은 가슴 피부가 얼마나 선천적으로 탄력이 있는지, 임신과 수유 경험이 얼마나 되는지 등 개인마다 다르다. 모유수유를 하고도 가슴이 금방 회복되는 사람도 있고, 60대인데 30대의 가슴 모양을 선천적으로 유지하는 사람도 있다. 제대로 연구를 하려면 한 사람을 유방 한쪽에만 브래지어를 착용하게 하고 몇 년 동안 관찰해야 하지만 이런 연구가 가능할지조차 의문이다.
 
기본적으로 가슴이 처지는 주원인은 ‘노화’다. 나이가 들면 유방 피부가 탄력을 잃어 가슴이 처진다. 폐경으로 여성호르몬과 프로게스테론이 감소해 유방이 퇴화하면서 처지기도 한다. 브래지어가 아무리 유방의 하중을 덜어준다고 해도, 나이가 들어서 처지는 것까지 막아주지는 못한다.
 
가슴을 처지게 만드는 다른 원인도 마찬가지다. 임신과 수유로 유선조직이 급속히 팽창했다 축소하면 그 사이에 있는 쿠퍼 인대가 늘어난다. 급격하게 다이어트를 하면 유방의 지방층이 과도하게 빠지면서 가슴이 처진다. 브래지어로는 어찌해볼 도리가 없다. 윤을식 고려대 안암병원 유방성형클리닉 교수는 “브래지어가 무거운 유방을 받쳐주면 도움이 되기는 하겠지만 과학적으로 밝혀진 바는 전혀 없다”고 말했다.
 
윤 교수는 브래지어가 가슴 모양을 예쁘게 해주는 것은 성장기에만 적용될 뿐이라고 설명했다. 하루 종일 착용해도 본래의 처진 유방 모양은 바뀌지 않고, 24시간 노브라로 생활한다 해도 유방은 전혀 늘어지지 않는다. 브래지어를 오래 착용하면 본래의 가슴 모양이 바뀐다는 과학적 근거도 없다.
 
그는 “17세 이하 성장기에는 브래지어가 가슴 모양 형성에 도움을 줄 수 있지만 그 후에는 물리적 압박이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다”며 “가슴 모양과 탄력은 선천적인 요소와 호르몬 분비, 노화, 심한 체중감소, 출산 횟수에 달려있다”고 말했다.
 
브래지어는 혈액순환과 임파액의 흐름을 막아 노브라로 생활하면 이같은 현상이 개선된다.
 
한 다큐멘터리에서는 여성의 모세혈관을 직접 촬영해 브래지어를 착용했을 때 혈류 흐름이 줄고 림프 기관이 많은 겨드랑이 부위가 등보다 7배나 더 압박된다는 실험결과를 보여주기도 했다. 그러나 이 실험은 브래지어가 몸을 조인다는 것만 증명했을 뿐, 유방암을 유발한다는 근거가 될 수는 없다. 신동진 SC301의원 원장은 “브래지어가 겨드랑이 부위의 림프기관을 누를 수는 있지만, 브래지어를 벗으면 금방 회복된다”고 말했다.
 
유방조직에 산소가 많이 공급되고 독성 노폐물이 잘 빠져야 돌연변이 세포가 생길 가능성이 적어진다. 박해린 강남차병원 외과 교수는 “찾아오는 유방 이상 환자들의 진한 브래지어 자국을 보고 놀라고 있다”며 “가급적 착용을 피하고, 최대한 혈액순환이 잘 되도록 느슨하게 착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모든 사람들이 브래지어를 벗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가슴이 커서 어깨가 아프거나, 운동할 때 흔들리는 가슴 때문에 통증을 느끼거나, 섹시한 분위기를 연출하기 위해 속옷을 입고 싶은 사람에게 브래지어는 필요하다. 그러나 누군가의 눈으로부터 가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느끼기에 불필요하고 답답할 때 브래지어를 벗을 권리는 존중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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