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초의 상징이었던 풍성한 수염이 지고 매끄러운 피부가 대세로 떠오르며 남성도 제모에 신경쓰는 추세다. 회사원 윤모 씨(35)는 최근 얼굴 제모를 잘못했다가 피부과 신세를 지고 있다. 안면부에 남들보다 털이 많이 자라는 탓에 면도를 해도 금세 수염이 올라와 오후에는 얼굴이 파르스름해질 정도다. 그는 우연히 여동생의 화장대에 놓인 제모크림을 보고 호기심에 써보기로 마음먹었다. ‘3분 안에 제모 해결’이라고 쓰인 문구가 마음을 사로잡았다.
윤 씨는 제모제로 매끄러워질 피부를 기대했지만 크림을 바르자마자 타는 듯한 고통에 곧바로 씻어냈다. 하지만 세안 후에도 피부가 녹아내리는 듯한 고통이 지속되며 얼굴이 붉게 변하자 병원을 찾았고 ‘피부손상’으로 진단받았다. 여동생은 “제모제를 얼굴에 바르는 사람이 어딨느냐”며 면박을 줬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기본적으로 제모는 ‘청결’이 우선돼야 한다. 제대로된 관리법을 숙지하지 못한 채 그루밍에 나섰다간 피부손상을 겪기 십상이다. 가장 기본적인 면도기조차 제대로 관리하지 않으면 모공을 통해 곰팡이, 박테리아균에 감염돼 모낭염이 발생할 우려가 높다.
최근엔 남성 사이에서도 얼굴뿐만 아니라 다리, 팔 등 보디제모에도 관심이 높아지며 크림·스프레이 형태의 제모제도 인기를 끌고 있다. 제모제는 넓은 부위의 털이라도 발라주는 것만으로도 손쉽게 털을 제거해주지만 화학성분으로 이뤄져 자칫 부종·홍반·가려움·피부염·화상 등 피부손상을 초래할 우려가 있어 주의해야 한다.
제모제의 주성분은 ‘치오글리콜산’으로 털을 구성하는 주요성분인 케라틴을 녹이는 효과를 낸다. 하지만 피부 외피층의 단백질 결합까지 녹여 염증이나 발진 등 피부염을 유발할 수 있다. 수소이온농도(pH) 10.5 이상의 강알칼리성 제모제는 민감한 피부에 쥐약이어서 권장시간보다 오래 피부에 방치하지 말아야 한다. 이처럼 자극적이다보니 제조사들은 민감한 얼굴에 사용하지 말라고 권고한다.
가장 안전한 방법은 영구제모다. 레이저 제모는 일정량 이상의 에너지로 멜라닌색소로 구성된 모낭 근처의 모근을 파괴해 제모 효과를 낸다. 다만 이는 ‘제대로 된 시술’을 받았을 때의 이야기다. 취업준비생 임모 씨(25)는 최근 턱수염을 제모하기 위해 레이저시술을 받았다가 피부에 수포가 올라와 낭패를 겪었다. 피부염으로 진단받고 치료 중이지만 다가올 면접시험에서 혹시라도 좋지 못한 인상을 줄까봐 걱정하고 있다.
레이저제모 시술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물집, 화상, 염증, 색소침착 등 부작용에 노출될 확률이 높다. 과도한 열에너지가 피부에 가해지면 염증이나 수포가 올라오고, 시술 후 햇빛에 과도하게 노출되면 시술 부위의 색소가 침착할 우려가 있다.
전문의들은 특히 가정용 레이저제모기기 사용 이후로 부작용 건수가 늘어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양원 건국대병원 피부과 교수는 “레이저제모는 멜라닌색소에 충분한 에너지가 가해져야 효과적이나 가정용 레이저제모기는 출력이 낮아 잠깐 사용해서는 효과를 보기 힘들다”며 “해당 기기로 병원 못잖은 제모 효과를 얻으려면 결국 오랜 시간 에너지를 조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사용 시간이 늘어날수록 피부에 가해지는 열에너지도 과도해질 수밖에 없으며, 자칫 지나치게 저렴한 기기는 출력 편차가 커 예기치 못한 부작용을 겪을 우려가 있다”고 덧붙였다. 웬만해서는 병원을 찾아 상황에 맞는 치료를 받는 게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이 높다는 의미다.
가장 흔하게 나타나는 부작용은 가려움증, 화상, 피부 붉어짐 등이다. 이 교수는 “레이저 제모 자체로 화상을 입는 가능성은 과거보다 크게 줄었지만 지나치게 레이저를 쏘인 경우 비슷한 증상을 겪을 수 있다”며 “제모를 위한 레이저 시술은 타깃인 모낭이 피부 깊숙한 곳에 있으므로 화상 등을 입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이 원장은 “가벼운 부작용으로는 시술 부위가 따끔거리는 정도이지만 물집이 잡히거나 수포가 올라왔다면 방치하지 말고 병원을 찾아 적절한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