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가습기살균제 사망사건에 대한 정부의 소극적 늑장 대응으로 국민 여론이 악화되면서 주무부처인 환경부가 위기에 봉착했다. 현재 환경부는 가습기살균제 사건 외에도 폭스바겐과 닛산의 배출가스 저감장치 조작사건과 미세먼지 문제에 대한 근본 대책 부재로 여론의 질타를 받고 있다. 이에 야권·시민사회단체를 중심으로 윤성규 환경부 장관의 퇴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환경부는 가습기살균제 사고가 터진 2011년 소관 부처가 아니라며 책임을 회피했고, 2012년 관련 업무가 산업통상자원부에서 환경부로 이관된 뒤에도 소극적인 대응으로 일관했다. 같은 해 환경단체가 환경보건법을 적용해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를 환경성질환으로 지정하고 지원해주자고 제안했지만 거부했다가 2014년 3월에야 뒤늦게 피해자 지원에 나섰다. 하지만 피해 인정 범위는 폐질환으로 한정했고, 지원도 의료비와 장례비로 제한했다. 가습기살균제 피해 인과관계가 높은 1·2단계 판정자 221명 중 신청자 203명에게 37억5000만원이 지원한 게 전부다. 생계비 지원 요구는 묵살하다 최근에야 적극 검토하겠다고 태도를 바꿨다.
올초 검찰 수사로 여론이 들끓자 4차신고 접수를 시작해 뒤늦게 피해인정 범위를 폐 이외 질환으로, 지원은 생활비 등으로 확대·추진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이어 추가 대책 마련을 위한 태스크포스팀(TF)을 꾸렸지만 사건원인 규명, 피해자 지원 등에서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고 지지부진하게 운영됐다.
환경부는 가습기 균제 사망사건의 원인으로 지목된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에 대해 1997년 ‘유독물질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고시해 대규모 사망 사태의 빌미를 제공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당시 유공(현 SK케미칼)이 제출한 제조신고서에 PHMG가 카펫에 뿌리는 용도로만 신청하자 흡입독성시험을 면제(생략)해줬고 유독물이 아니라는 면죄부를 발행했다. 이후 2001년부터 옥시레킷벤키저가 이 물질을 활용해 가습기살균제를 제조했지만 아무런 규제를 받지 않았다. 사망자와 피해자가 속출하자 환경부는 “카펫에 사용하는 PHMG의 용도를 변경할 때 유해성 심사를 받아야 하는 규정이 당시엔 없었다”고 해명하기 급급했다.
환경부가 2005년 옥시 가습기살균제의 유해물질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이 가정용 제품에 쓰였다는 사실을 보고받고도 아무 조치를 하지 않았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소속 송기호 변호사는 환경부에 정보공개를 청구해 확보한 2005년 ‘가정용 바이오사이드(biocide·농업용 외 살균제) 제품의 관리방안’ 용역보고서를 근거로 “환경부가 경고 보고서를 무시하고 법령상 권한인 유해성 평가에 착수하지 않은 배경을 조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외부기관이 연구해 2005년 9월 환경부에 제출한 보고서엔 “PHMG는 국내 유해화학물질관리법상 신규 화학물질이며 가정용 제품 내에 포함돼 소비자에게 직접적인 노출이 우려됨에도 불구하고 제조나 수입 이전에 신규화학물질 유해성 심사를 받지 않은 성분”이란 내용이 적시됐다. 이에 대해 송 변호사는 “이같은 내용은 환경부가 최소 2005년부터 PHMG가 가정에서 사용된다는 점을 알고 있었다는 증거”라며 “PHMG의 가정용 제품 사용 사실을 몰랐으며 당시 가습기 살균제 참사를 막을 수 없었다고 한 환경부의 기존 해명이 거짓”이라고 주장했다.
상황이 이런데도 윤성규 장관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등 제한된 장소에서만 입장을 밝히고 있다. 보건복지부 등 다른 부처 장관들이 주요 현안은 직접 나서 브리핑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회의 등을 이유로 전화를 받지 않는 담당 공무원을 기자가 항의 방문하는 일이 발생하자 뒤늦게 가습기살균제 관련 담당 부서에 소통창구를 마련했다.
관계 부처에서도 가습기살균제 대처가 너무 소극적이고 무능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한 정부 관계자는 “결국 환경부의 소극 대응과 수장이 자기 목소리를 제때 못 낸 점 등이 일을 키웠다”며 “여론이 악화되기 전 선제적으로 대응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또다른 정부 관계자는 “2011년 당시 가습기살균제 문제를 다룰 수 있는 법이 없었지만 2012년 2월 질병관리본부가 가습기살균제의 인과관계를 확인한 이후에는 선제적으로 피해자를 구제하고 가해기업를 대상으로 사태 해결을 촉구했어야 했다”며 “지난 5년 동안 조용히 해결되기를 바라며 덮고 있었던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어 “일을 크게 만들거나 위에서 시키지 않는 일을 만들지 않는다 윤 장관의 스타일도 문제를 키운 주요인”이라고 지적했다.
윤 장관은 취임 초부터 까다로운 현안에 대해서는 신중한 모습을 보였다. 지난해 이슈가 된 탄소배출권거래제(온실가스 배출 권리를 사고 팔 수 있도록 한 제도), 설악산 케이블카 등 이슈에도 ‘침묵’으로 일관하며 직접 나서 사건을 마무리하지 않았다. 가습기살균제 사건과 미세먼지 저감 대책에서도 책임 있는 발언은 찾아볼 수 없다. 박근혜 정권 최장수 장관인 윤 장관이 소신있게 일을 처리하기 어렵다는 게 정부 관계자들의 평가다.
환경부는 기업체의 이익보다는 국민의 안전을 우선시해야 하는 부처다. 전 정권에서 이뤄진 4대강 사업 강행과 이로 인한 수질오염 논란은 물론 미세먼지 저감대책, 이번 가습기살균제 사건과 관련해 막중한 환경보호 책무를 무시하고 청와대와 기업의 눈치만 보아온 환경부는 ‘영혼이 없는 공무원’이란 말을 들어도 아무런 할 말이 없게 됐다. 환경보호에 관한 한 전문성을 가지고 소신 있게 일할 공무원을 찾는 것은 대통령으로 권력이 집중된 한국에서는 아직 요원한 일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