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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자살, 집 밖에서 많은 이유 … 충동성 강하고 술·가난 영향 커
  • 박정환 기자
  • 등록 2016-06-07 06:03:10
  • 수정 2020-09-13 18:5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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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살자 32.2%, 우울증치료 미뤄 상태 악화 … 감정 억압되고 표현 없어 치료 늦어

한국인의 자살 유형은 크게 우울증 미치료군, 경제문제 동반군, 문제음주군 등 세 가지로 분류된다. 한국인은 우울증 병세가 악화돼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우울한 기분을 말이나 표정으로 표현하는 정도가 미국이나 유럽 등 선진국보다 덜하다. 반면 우울감과 함께 불면증, 식욕저하, 불안, 체중감소, 건강염려증 등이 동반되는 경우가 많다. 이로 인해 단순한 우울증이 자살 같은 최악의 상황으로 악화될 위험이 높다.

지난 3월 보건복지부 중앙심리부검센터가 자살 사망자 121명의 유가족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국내 우울증 환자 중 자살을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는 중이거나 최근 시도한 적이 있다고 답한 비율은 6.9%로 미국인(3.8%)의 2배 가까이 높았다. 또 전체 한국 성인의 약 14%는 자살을 심각하게 고려한 적이 있으며, 성인 7명 중 1명은 1년에 한 차례 이상 자살충동을 느끼는 것으로 조사됐다. 

한국인의 자살은 우울증 미(未)치료, 경제적 빈곤, 음주 문제 등 3가지 유형으로 분류된다. 중앙심리부검센터의 설문조사 결과 우울증을 치료받지 못한 사람의 자살이 39명(32.2%)으로 가장 많았다. 자살자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기 전 한 달간 가장 많이 찾은 기관은 ‘정신건강의학과가 아닌 병원’(31명·복수 응답)이었다. 정신과를 찾은 사람은 이보다 적은 24명이었다. 3명은 한의원을 다닌 것으로 조사됐다. 사망 직전까지 꾸준히 약물치료를 받은 비율은 15.0%에 불과했다.

함병주 고려대 안암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의료기관, 정신보건기관, 상담센터 등 정신보건서비스를 이용하는 비율은 학력, 나이, 결혼여부 등에 따라 다르다”며 “특히 고연령층, 사별한 성인, 저학력층 등 정신질환 취약 계층에서 정신보건서비스 이용하지 않는 비율이 오히려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똑같이 자살충동을 느껴도 65세 이상은 19~34세에 비해 정신보건서비스를 이용하지 않은 비율이 약 5배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학 재학 이상의 학력자에 비해 중졸~고졸 이하의 학력을 가진 성인이 약 2배 이상 높았다. 또 배우자와 사별한 사람은 약 3배, 경제활동자는 비경제활동자에 비해 1.6배, 임금근로자는 실업자에 비해 약 2배 정신보건서비스 미이용 비율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함 교수는 “정신보건서비스를 이용하지 않는 비율이 높은 그룹들은 자살 위험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며 “자살 생각은 실제 자살 시도로 이어질 수 있는 중요한 위험요인이어서 자살 관련 생각이나 충동이 생길 경우 조기에 정신과적 치료를 받는 게 자살 예방에 도움된다”고 강조했다.

원래 정신건강 문제가 있던 사람이 경제적 곤란과 그에 따른 가족 갈등을 겪으면서 극단적 선택을 하는 사례도 많다. 심리부검센터가 사망 당시 자살자의 월평균 소득을 조사한 결과 ‘50만원 이하’가 55명(45.5%)으로 가장 많았다. 200만원 이하가 3분의 2가량인 67.8%(82명)였다. 200만∼250만원은 16명(13.2%), 300만원 이상은 10명(8.3%)이었다.

음주로 인한 자살도 주된 세 유형 가운데 하나다. 121명 중 16.5%(20명)가 술로 인해 자살에 이르렀다. 이들은 성장기에 부모의 음주로 인한 폭력에 노출됐던 경험이 있었다. 또 충동적 기질이 있어 삶 전반에서 문제성 음주를 지속하는 패턴을 보였다. 술 문제는 자살자의 가족에서도 발견됐다. 가족 중 한 사람이라도 과다 음주, 주폭 등 알코올 문제를 가진 비율이 53.7%에 달했다.

음주와 자살의 연관성은 한국인 우울증의 특징에서 비롯된다. 아시아인의 경우 ‘멜랑콜리아형 우울증(major depression with melancholic features)’을 보이거나 충동·분노를 나타낼 경우 일반 우울증보다 자살 위험이 약 2배 증가한다. 특히 한국인은 같은 멜랑콜리아형 우울증인 다른 아시아 민족보다 자살 위험이 2배 높다. 멜랑콜리아형 우울증은 음주를 동반한다. 우울증 탓에 잠이 안 올때 술의 힘을 빌어 잠을 청하는 경우가 많고 이는 우울증 증상을 악화시키는 주원인이다.

전홍진 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멜랑콜리아형 우울증은 심각한 우울증의 여러가지 유형 중 한 형태로 즐거운 감정을 느끼지 못하고 심한 식욕감퇴와 체중 감소가 동반된다”며 “안절부절 못하거나 행동이 느려지며 새벽에 잠자리에서 일찍 깨고 아침에 모든 증상이 더 심해지는 특징을 나타낸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런 형태의 우울증은 한국처럼 사계절이 뚜렷한 지역에서 더 많이 발생한다”며 “한국인이 멜랑콜리아형 우울증을 보이는 경우 다른 나라의 일반 우울증 환자보다 최대 4배 이상 자살 위험이 증가할 수 있어 가급적 빨리 병원을 찾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한국인 자살의 또 하나 특징은 집 밖에서 많이 발생한다는 점이다. 이는 계획적인 자살보다 우발적인 경향이 큰 것을 의미한다. 이용주 동덕여대 대학원 보건학 교수팀의 연구결과 한국의 경우 집 밖에서 목숨을 끊은 사람의 비율이 70.1%에 달했다. 반면 벨기에는 34.2%, 프랑스 35.3%, 뉴질랜드 37.9%, 미국 41.3%, 캐나다 43.8%, 체코 44.9%, 멕시코는 46.3%로 한국의 절반 수준에 그쳤다.

집 밖은 자살을 암시하는 행동을 시도하다 다른 사람에게 발각될 확률이 집 안보다 훨씬 크다. 즉 자살을 만류하는 외부인이 개입할 여지도 많다. 자살 행동도 투신 등 충동적인 방식으로 나타난다. 반면 집 안은 다른 사람의 눈에 띌 확률이 적고 혼자 있는 경우가 많아 계획적인 자살이 일어난다. 이런 경우 목숨을 끊겠다는 의지가 더 큰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우울증이나 자살징후 등을 외부에 알리지 않고 혼자 고민하다 상태가 악화되는 것도 한국인 자살의 특징이다. 유은정의좋은의원의 유 원장(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은 “한국인은 감정이 억압돼 있고 표현을 잘 하지 않아 자살징후가 나타날 정도가 돼야 우울증을 알아차리고 병원을 찾는 경우가 많다”며 “우울증을 조기에 진단 및 치료할 수 있도록 사회적인 편견을 해소하고 우울증 전조증상을 세심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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