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갱년기여성에 질출혈 유도 … 어린이용 성장식품은 주요성분 함량 적어
인삼(人蔘)은 예부터 ‘신비의 영약’으로 한국을 비롯한 중국, 일본 등에서 건강증진을 위한 약재로 널리 사용됐다. 지금도 ‘국민보약’으로 대접받고 있다. 최근에는 인삼을 포제한 ‘홍삼’(紅蔘)이 건강기능식품 업계에서 인기다. 포제란 약성을 변화시킬 목적으로 약재를 물이나 술과 함께 끓이거나 찌는 등 변형을 가한 것이다. 인삼을 찌는 과정에서 열분해로 인해 구조 변화가 일어나며 각종 효능은 배가되고 부작용이 줄어들게 된다.
홍삼은 건강기능식품으로 분류되지만 소비자들은 효능에 대해 약 이상으로 기대한다. 홍삼은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면역력 증강, 피로해소, 기억력 증진, 혈행개선, 항산화기능 강화 등 다섯 가지 기능을 인정받았다. 홍삼을 만드는 과정에서 인삼이 가진 독성이 제거돼 부작용이 없다고 알려져 있다. 특히 신경독성을 유발하는 원인물질인 덴키신(dencichine) 함량이 줄어 관련 부작용도 인삼에 비해 적다.
인삼이나 홍삼에 함유된 사포닌, 폴리아세틸렌, 산성다당체 성분 등은 암세포 증식을 막아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암 환자의 체중감소와 식욕감퇴 현상을 줄여준다.
미국 자연치유의 대가로 꼽히는 앤드류 와일(Andrew Weil) 박사는 자신이 쓴 ‘자연치유’란 책에서 “인삼은 식욕과 소화력을 증강시키고 피부와 근육을 매끄럽게 해주며 고갈된 성에너지를 회복시킨다”고 밝혔다.
하지만 홍삼을 비롯한 대부분 건강기능식품은 효능 뒤에 부작용을 갖고 있다. 잘 써야 보약이고 잘못 쓰면 독약이 될 수 있다. 지난 10일 대한한의사협회는 홍삼 등 건강기능식품을 잘못 먹으면 오히려 건강을 해칠 수 있다고 경고하면서 한의사와 상담 후 섭취할 것을 권고했다. 홍삼 회사들의 강력한 마케팅 드라이브로 한의원을 찾는 환자가 줄어들자 스스로 국민보약으로 일컬어지는 인삼의 형제 격인 홍삼을 공박하기에 이른 것이다.
한의사협회에 따르면 홍삼은 갱년기 여성에게 도움이 되는 식품으로 알려져 있지만 오남용할 경우 치명적 부작용을 유발할 수 있다. 홍삼에는 여성호르몬이 함유되진 않았지만 주성분인 진세노사이드가 여성호르몬 ‘에스트라디올(estradiol, 여성 성호르몬으로 에스트로겐 중 가장 강력하고 대표적인 호르몬)’과 유사한 구조를 갖고 있어 에스트로겐 수용체에 작용해 에스트로겐과 유사한 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
따라서 갱년기 여성이나 여성호르몬과 관련된 부인과 질환을 가진 사람은 홍삼 장기복용으로 생리과다, 부정출혈, 유방통 등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에스트로겐 의존성이 있는 자궁근종과 자궁내막증 등의 질환이 있는 경우에는 증상이 악화될 수 있다. 식약처는 이미 출혈 위험을 높이는 약물과 홍삼을 동시에 복용할 경우 질 출혈이나 코피를 유발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2009년 KT&G의 연구비 지원을 받아 동국대 연구팀이 보고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태음인 체질에게 1개월 이상 소량의 홍삼을 먹였더니 혈압이 오르는 현상이 나타났다. 인삼은 평소 열이 많은 사람이 먹으면 안되지만 홍삼은 어떤 체질에게나 좋다고 주장했던 홍삼제조사들의 주장과 배치되는 결과가 나온 것이다. 게다가 국내 대표 홍삼 제조·판매사인 KT&G의 지원을 받은 연구에서 이같은 결과가 나와 당시 화제가 되기도 했다.
김달래 한의원 원장(전 경희대 한의대 교수)은 “평소 몸에 열이 많거나 혈압이 높은 사람은 자신의 체질을 제대로 파악해 홍삼을 복용하지 않는 게 좋다”며 “값비싼 홍삼을 무작정 주변 사람들에게 선물하는 것은 지양돼야 하며, 오랫동안 복용할 경우 반드시 한의사와 상의해야 한다”고 밝혔다.
한방에서는 한약을 조제할 때 주로 여러 약재로 혼합해 사용한다. 각 약재의 성질을 돕고 부작용을 제거하며 주약재의 효능을 늘리기 위해서다. 한 가지 약재만 복용하는 단양방은 일시적으로 효과가 있을 수 있지만 장기간 먹으면 오히려 위험할 수 있다. 홍삼 자체만으로도 두통, 불면, 가슴두근거림, 혈압상승 등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 식약처가 조사한 건강기능식품 부작용 사례 90건 중 10건이 홍삼과 관련된 것으로 고열, 변비, 메스꺼움, 두드러기, 설사도 포함돼 있다.
일부에서는 홍삼과 인삼의 효과 차이가 크지 않다고 주장한다. 과거 청나라 시대 명의로 꼽힌 진수원은 “홍삼과 인삼의 효과 차이는 과대평가 됐으며, 인삼과 별다른 차이가 없으므로 주의해서 사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 연구에서도 인삼을 홍삼으로 가공하는 과정에서 진세노사이드의 변화가 약간 있지만 인삼과 홍삼의 성분이나 약리작용 간 유사한 부분이 많아 효능의 차이가 있는지 구분하기 어렵다고 결론을 내렸다.
홍삼은 통상적으로 소음인 체질 중 맥이 약하고 식욕이 떨어진 사람에게 효과를 발휘한다고 알려져 있다. 태양인 태음인, 소양인은 물론 건강한 소음인이 인삼을 장기 복용하면 오히려 발열, 상열, 안구건조증, 두드러기, 가슴답답함, 입마름, 불편, 두통, 안구충혈, 혀붉어짐, 집중력저하, 더위먹음 등의 증상이 나타날 수 있어 유념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사상체질론을 철석 같이 믿는 한의학자들은 이같은 체질론을 중시한다.
하지만 일부 과학자나 사상체질 만능론에 반대하는 한의학자들은 인삼은 오히려 냉성 또는 미온성 약재이기 때문에 이같은 부작용 우려는 과장된 걱정이나 억측에 불과할 수 있다고 반박한다. 따라서 체질론을 추종하는 한의학자들이 기력이 떨어지는 음체질의 아이에게만 선별적으로 사용할 것을 권하지만 인삼이 아주 뜨거운 열성 체질음식은 아니므로 무턱대고 금기시할 필요는 없다는 반론을 펴고 있다.
또 일부 인삼을 맹신하는 사람들은 어떤 체질이든 인삼을 장기 복용하면 인체가 적응한다고 호도하지만 이또한
과학적으로 입증된 게 아니고 일부 드라마틱한 사례를 일반화한 것이어서 비판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성장기 어린이에게 무분별하게 홍삼을 장기간 먹이는 것은 현명한 판단이 아니다. 성장기 어린이를 대상으로 판매되는 어린이용 홍삼은 일반 제품에 비해 홍삼 함유량이 적을 뿐만 아니라 어린이들이 쉽게 먹을 수 있도록 단맛을 첨가하는 경우가 많다. 부모들은 아이들이 잘 먹으니까 맛있는 홍삼을 선택하지만 의외로 효과가 적을 수 있음을 감안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