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부 서모 씨(37)는 초등학생 딸의 다리에 발진이 생긴 것을 발견하고 피부염을 의심해 동네 의원을 찾았다. 의사로부터 당장 원인을 알 수 없어 일단 지켜보자는 얘기를 들었지만 증상은 심해졌다. 결국 아이가 걷지도 못할 만큼 심한 다리통증을 호소하면서 복통과 구토가 반복되자 대학병원 응급실을 찾은 결과 ‘알레르기성 자반증(HS자반증, Henosch-Sonlein purpura, HS purpura)’이라는 낯선 병명을 진단받았다.
‘자반증’이란 물리적 충격이 없었는데도 염증이 생긴 혈관이 터져 피부에 피멍이 드는 상태를 말한다. 1620년에 출간된 한의학서인 ‘외과정종(外科正宗)’에는 병변의 모습이 포도송이를 닮았다고 의미로 ‘포도역(葡萄疫)’이란 병명으로 기록돼 있다.
자반증 중 알레르기성 자반증은 혈관염의 일종으로 3~10세 사이 소아에서 감기 등 바이러스 감염 이후 발생한다. 정확한 발병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특정 음식이나 환경에 영향을 받는다는 몇몇 연구결과가 보고돼 알레르기성이라는 명칭을 갖게 됐지만 임상근거는 부족한 상태다. 팔·다리·둔부에 발진, 자반(반점), 관절통 등이 주로 나타난다. 복통, 구토, 혈변 등 위장관 합병증이 동반되기도 한다.
이대용 중앙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알르레기성 자반증은 봄철 또는 늦가을 같은 환절기에 호흡기 감염 이후 소아에서 자주 발생하는 질환으로 제 때 진단 및 치료받으면 대부분 회복된다”며 “하지만 단순 피부발진으로 오인해 제대로 치료하지 못할 경우 장충첩증, 장천공, 췌장염 등을 초래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드문 확률로 염증이 신장을 침범해 신부전이나 당뇨병 등 합병증을 유발하기도 하지만 자연스럽게 개선되는 경우가 많다”고 덧붙였다.
전체 환자의 3분의 2 이상에서 관절통과 함께 복통, 구토, 설사 등 복부 증상이 동반된다. 이 중 약 30~40%는 위장관출혈, 40~50%는 혈뇨 및 단백뇨 등 신장 증상을 나타낸다.
외적으로 확인되는 증상 외에도 복부초음파검사, 내시경검사, 소변검사 등을 통해 합병증 여부를 진단할 수 있다. 합병증이 발생한 경우 스테로이드 등과 같은 면역조절치료로 회복을 도모한다.
비슷한 증세를 보이는 ‘특발성 혈소판 감소성 자반증(idiopathic thrombocytopenic purpura, ITP)’도 3~10세 아이에서 잘 나타나는 질환으로 혈소판이 감소하면서 피부·조직내 출혈 등이 발생한다. 팔·다리 발진 외에 육안으로 확인되는 증상이 없어 알레르기성 자반증보다 단순 피부발진으로 오해하기 쉽다.
발병 기간에 따라 급성과 만성으로 나뉜다. 급성은 2~5세 소아에서 감기 등 바이러스감염 질환에 걸린 뒤 갑자기 온몸에 점상 출혈반이 나타나는 증상이 6개월 미만 동안 지속되는 상태다. 만성은 증상이 12개월 이상 이어지는 경우를 의미한다.
잇몸이나 구강내 점막에서 경미한 출혈, 월경과다, 혈뇨 등이 나타난다. 망막내 출혈이 있는 경우 시력장애로 이어질 수 있다. 가장 위험한 합병증은 두개강내 출혈로 발생률은 낮지만 신경계장애를 일으켜 심각한 후유증을 남긴다.
혈액검사상 백혈구 및 적혈구 수치는 정상인 상태에서 혈소판 수치만 감소하면 이 질환을 의심해볼 수 있다. 혈소판 파괴는 주로 지라(비장)에서 일어나며 드물게 간에서도 발생할 수 있다. 혈소판 수치가 저하된 상태에서는 아이가 넘어지거나 피부를 세게 긁지 않도록 유의해 출혈을 예방해야 한다.
최영배 중앙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특발성 혈소판 감소성 자반증은 저절로 회복되는 경우가 많지만 혈소판 수치가 2만~3만/㎕ 이하인 환자는 출혈 위험이 커 면역글로불린요법이나 스테로이드요법을 실시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소아의 경우 중추신경계에 출혈이 생기면 사망할 수 있어 주의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혈소판 감소증이 심해 두강내 출혈 등이 있는 경우 긴급히 혈소판을 수혈해야 한다. 하지만 효과가 일시적이고 반복 수혈에 따른 부작용 우려가 있다.
스테로이드요법은 면역작용을 억제해 혈소판 파괴를 줄이고 골수 생성을 촉진하는 데 도움된다. 체중 1㎏당 1㎎의 고용량 스테로이드를 4~6주간 투여 후 서서히 감량한다. 초기 치료효과는 높지만 투여 용량을 줄인 뒤 재발하는 경우가 많아 완치 비율은 30% 정도에 머무른다.
면역글로불린요법은 혈소판·혈소판항체 복합체를 탐식하는 대식세포에 자가혈소판항체 대신 항체 작용을 하는 단백질을 부착해 혈소판 파괴를 막는다. 투여 후 1주일 이내에 혈소판 수가 증가하지만 효과가 지속되지 않고 혈소판이 다시 감소하는 경우가 흔하다.
스테로이드치료나 면역글로불린요법이 듣지 않는 환자에게는 비장절제술을 실시한다. 이 치료법은 혈소판이 주로 파괴되는 장소인 비장을 절제해 혈소판 감소를 막는다. 수술 7일 이내에 혈소판 수가 회복되지만, 부비장(비장 외 다른 부위에 남아 있는 비장조직, accessory spleen)이 있거나 간에서 혈소판이 파괴되는 환자에게는 효과를 보지 못할 때도 있다. 비장절제 후에는 세균감염에 취약해지므로 예방접종 등 철저한 관리가 필요하다.
최영배 교수는 “아이의 몸에 발생하는 발진이나 자반은 특별한 문제가 없는 경우가 많지만 종류나 원인이 다양하고 간혹 심각한 합병증을 알리는 신호가 될 수 있다”며 “특이한 양상을 나타내거나 다른 전신증상이 동반될 경우 바로 전문의를 찾아 진단 및 치료받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