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오랜 시간 함께하고, 사랑이 넘치는 연인이라도 막상 결혼을 앞두고 불안감을 느끼기 마련이다. 사랑은 넘치지만 현실의 벽을 무시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실제로 ‘결혼에 대한 환상이 깨진 미혼 남녀들의 결혼 의지가 50% 미만’이라는 충격적인 통계 결과도 있다.
갈등 없는 커플은 찾아보기 힘들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들은 ‘싸우지 않는다면 그것도 문제’라고 지적한다. 오히려 둘 사이의 트러블을 잘 풀어내면 전보다 더 깊은 관계를 만들 수 있다고 조언한다. 싸움으로 부딪쳐본 연인은 평소에는 몰랐던 상대방의 진심을 알게 되고, 서로 더 이해하게 되며, 자연스럽게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낼 수 있다는 것이다.
이제는 ‘사랑’이라는 명목 아래 모든 것이 용서되는 시절은 지났다. 박한선 성안드레아병원 정신과 전문의는 “결혼을 앞두고 불안을 느끼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며 “이런 불안은 교제 기간이나 사랑의 깊이와 크게 관련이 없으며, 결혼을 앞두면 그동안 사랑했던 경험보다 ‘미래에 대한 불투명한 전망’이 더 위협적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인간은 무의식적으로 자신은 물론 앞으로 태어날 자손의 미래까지 염두에 두는 만큼 계산적으로 입장이 돌별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덧붙였다.
몇 년씩이나 교제를 이어왔다면 사랑과 신뢰가 충만한 게 명백하지만, 결혼을 앞두고 어떤 대상에게 성적인 매력을 느끼는 것과 최적의 배우자로서의 자질을 평가하는 것은 조금 다른 문제다.
초기엔 교제를 지속하며 상대방의 다양한 자질을 평가하고, 매력 있는 대상으로 보이기 위해 노력을 기울인다. 이같은 과정이 반복되며 상대의 충실성을 확인하고 변하지 않는 가치를 확인하며 결혼이라는 현실에 가까워진다.
그러다 결혼을 앞두면 출산 시기, 가족 규모, 거주 형식, 결혼생활에 대한 각자 친족의 개입 정도, 경제문제, 가사분담 분배 등 상대적인 손익 등을 고려할 수밖에 없다. 처음 남녀가 사랑에 빠졌을 때 이같은 요소보다 외모, 목소리, 태도, 성격 등을 판단하는 것과 차이가 난다.
박한선 전문의는 “결혼을 앞두고 생기는 불안은 상당 부분 자녀의 출산과 양육에 관한 것이고 상대 시댁·처가 문제, 적절한 역할분담 정도에 대한 고민이 합쳐진다”며 “이야기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해결될 수 있고, 어려운 부분은 조금씩 양보해가며 더 깊은 사랑을 느낄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무엇보다 불안감을 안고 결혼하는 것보다 서로 솔직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만약 객관적인 판단이 필요하다면 예비부부 상담이나 커플상담을 고려하는 것도 좋다.
유은정의좋은의원의 유 원장(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결혼에 앞서 ‘이 사람과 결혼해도 될까요?’ 같은 질문보다 앞서 생각해야 할 것은 ‘우리가 결혼하면 어떤 문제가 생길 수 있을지, 이를 어떻게 대처할 수 있을지’ 여부”라며 “결혼 전 ‘알 수 없는 미래’에서 비롯되는 신랑신부의 스트레스는 생각보다 크다”고 강조했다.
이어 “결혼식 전후, 신혼 초기관계 형성과 갈등해결이 나머지 결혼생활을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며 “결혼 2년 이내의 이혼율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처럼 결혼식 전후, 신혼 초기에 일어날 수 있는 예비부부들의 갈등영역을 예상하고 이를 미리 막고 싶다면 결혼 전 예비학교와 ‘프리페어·엔리치 프로그램(Prepare·Enrich program)’을 고려해볼 수 있다”고 소개했다.
유은정 원장은 이혼을 예방하고 싶다면 결혼 전후의 갈등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때 프리페어 프로그램으로 미리 부부의 성격을 예측, 실질적인 해답을 제공할 수 있다는 것. 이 프로그램은 데이비드 올슨(David Olson) 박사가 개발, 커플관계의 22가지 영역을 정밀진단한 뒤 이혼율을 85%까지 예측할 수 있는 세계 최고의 결혼 만족도 검사법이다.
유 원장은 “이 검사법은 결혼의 성공과 실패를 결정하는 게 아니라 가족, 돈, 시간, 자녀, 성, 직업 등 결혼식 전후 발생할 수 있는 커플의 다양한 관계영역을 실질적으로 분석하고 결혼 초기에 겪게 되는 갈등을 사전에 최대한 예방할 수 있도록 고안돼 있다”고 소개했다. 그는 “결혼식을 준비하며 싸우는 것은 당연하고, 결혼식장을 잡아놓고도 파혼을 맞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며 “결혼은 기쁜 일인 만큼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나가기 위한 ‘좋은 스트레스’로 바뀌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박한선 전문의는 “결혼 전 불안인 메리지블루(Marriage Blue)는 예비신부의 3분의 1이 겪을 만큼 여성에서 흔하다”며 “결혼은 남녀 모두의 중요한 인생 대사이지만 여성이 감당해야 할 무게가 더 무거운 것을 배제할 수 없는 게 현실인 만큼 예비신랑이 이를 이해해줄 수 있는 미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결혼 전 예비부부는 서로의 속마음을 진솔히 이야기하고, 자신의 고집만을 주장하지 않으며, 서로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는 마음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