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조상들은 조화와 통일을 강조하는 음양오행(陰陽五行) 원리를 중요시했다. 옷, 가구뿐만 아니라 음식에도 음양오행을 적용했다. 음양오행에서 붉은색·노란색은 양을 뜻하고, 푸른색·검은색·흰색은 음을 의미한다. 인체에 비유하면 붉은색은 심장과 관계가 있고, 노랑색은 비장, 흰색은 폐, 검은색은 신장, 푸른색은 간의 건강과 영향이 있다. 이렇듯 선조들은 음식 한 그릇에도 먹는 사람의 건강과 체질을 고려해 해가 되지 않도록 배려했다.
‘탕평채’(蕩平菜)는 음양오행이 조화를 이룬 대표적인 음식 중 하나다. 녹두녹말로 묵을 쑤어 만든 청포묵에 소고기, 미나리, 숙주, 홍고추, 백지단, 김 등이 들어가 영양소도 고르고 오색의 고명이 화려하게 어우러진다. 초간장으로 새콤달콤한 맛을 더해 봄철 잃었던 입맛을 찾아주는 영양식이다.
탕평채는 본래 ‘춘만가식’(春滿可食)으로 불렸으며 5~6월에 먹는 절기 음식이다. 녹두묵을 이용해 만드는데 정성이 많이 들지만 맛 자체는 뛰어나지 않다. 탕평채를 맛있게 만드는 솜씨라면 어느 음식이나 잘 만드는 자격이 있다고 할 수 있다.
한정식 전문점에서 탕평채가 본격적으로 선보이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 이후다. 초기에는 경기도 토속음식으로 소개됐지만 지금은 전국적인 음식이 됐다.
탕평채란 이름으로 어느 쪽에도 치우침 없이 고르다는 뜻을 지닌 ‘탕탕평평(蕩蕩平平)’이란 말에서 유래했다. 조선시대 21대 왕인 영조 때 탕평책을 논하는 자리의 음식상에 처음으로 등장했다.
1940년 6월 홍선표 조선식찬연구소장이 출판한 ‘조선요리학’이란 책에서는 탕평채의 연원을 영조 임금에게 둔다. “과거 조상들은 묵을 기름에 부쳐 먹을 줄 알았지만 영조 시기에 노소론을 폐지하자는 잔치에 묵에 다른 나물을 섞어 탕평채라 불렀다”고 적었다.
당시 조선시대는 서로 다른 사상으로 당파 간 정쟁이 끊이지 않는 시기였다. 영조는 왕에 즉위하자마자 소론을 제거하고 노론 출신의 인재를 뽑아 쓰는 편당(偏黨) 정치를 실시해 정국은 더욱 불안했다. 이에 당파 간 대립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정책은 강력한 왕권으로 각 당파에서 고르게 인재를 등용하는 길이라고 생각해 실시한 게 ‘탕평책’이다.
탕평채에는 색마다 숨겨진 의미가 있다. 푸른색의 미나리는 동인을, 붉은색의 쇠고기볶음은 남인, 주재료인 흰색의 청포묵은 서인, 검은색의 석이버섯이나 김가루는 북인을 상징한다. 주재료를 청포묵으로 사용한 것은 서인의 집권기였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탕평채의 오색이 음양오행의 원리와 당파를 대표하는 뜻도 있지만 영양소가 조화롭게 어우러진 것처럼 모두가 조화롭기 바라는 영조의 마음도 담겨져 있다.
일부에서는 탕평채가 사색당파를 상징한다는 근거가 부족하고 오히려 탕평채란 이름에서 탕평책이 생겨났다고 주장한다. 조선 후기의 학자 조재삼(趙在三)이 지은 ‘송남잡지’(松南雜識)에는 영조 시절 좌의정 송인명이 탕평채를 보고 탕평사업을 추진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즉 영조가 탕평책의 의미를 담아 만들라고 지시했다는 유래설과 반대되는 입장이다.
탕평채에 들어가는 청포묵은 얇고 가늘게 썰어야 한다. 소고기도 묵과 마찬가지로 썰어 갖은 양념을 해 볶으면 된다. 계란은 얇게 부쳐야 한다. 큰 그릇에 숙주, 소고기, 미나리, 파, 마늘 등을 넣고 간을 맞춘 뒤 초간장을 부으면 완성된다.
탕평채의 주재료인 녹두는 주성분이 전분(55%)이고, 단백질(21%)과 지방(1%) 등이 함유돼 있다. 단백질을 구성하는 로이신(루신), 라이신, 발린 등 필수아미노산이 풍부하다. 지방도 대부분 불포화지방산이다. 예부터 녹두묵은 해독작용이 탁월해 간 또는 신장에 축적된 해로운 물질을 배설 및 해독시키며 피로회복에 도움이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민간에서는 피곤할 때 녹두 달인 물을 마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