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락막 신생혈관 생성, 혈장 단백질·지질 누출로 황반 시세포 파괴돼
‘황반변성’(Macular Degeneration)은 눈의 망막 중심에 위치한 황반에 손상이 생겨 시력이 급격히 떨어지는 병이다. ‘황반’은 눈의 수정체를 통과한 빛의 상이 맺히는 망막 중에서도 시세포와 시신경이 집중된 곳으로 시력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황반변성은 습성과 건성으로 나뉜다. ‘습성 황반변성’(wMD, wet Macular Degeneration)은 망막에 산소와 영양분을 공급하는 맥락막의 혈관층에서 자란 신생혈관이 뻗어나가 황반 내 시세포와 시신경을 파괴한다. 진단 후 제때 치료하지 않으면 2년 내실명에 이를 수 있는 무시무시한 병이다. ‘건성 황반변성’(dMD, dry Macular Degeneration)은 단순히 망막 시세포들이 위축되는 병이다. 시력손실 가능성이 낮아 전문치료제가 따로 없지만 관리에 주의해야 한다. 세계적으로 건성 황반변성환자가 습성보다 9배 더 많은데 건성환자의 약 7%가 5년 내 습성으로 증상이 악화된다고 알려져 있다.
심각한 시력저하를 유발하는 대표적인 황반변성엔 두 가지가 있다. 연령관련(노인성) 황반변성의 일종인 ‘습성 연령관련 황반변성’(wAMD, wet Age-related Macular Degeneration)과 당뇨병 합병증으로 발생하는 ‘당뇨병성 황반부종’(DME, Diabetic Macular Edema)이다. 실제로 실명을 일으키는 3대 안질환으로 황반변성·당뇨망막병증·녹내장이 꼽힌다. 당뇨병성 황반부종(DME)은 당뇨망막병증(diabetic retinopathy)에 속하기도 한다. 황반변성은 60세 이상 노인에게서 주로 발병하는데 이를 ‘연령관련 황반변성’(AMD, Age-related Macular Degeneration)이라고 구체적으로 지칭한다.
당뇨병성 황반부종(DME)은 당뇨망막병증 환자의 중심시력 저하를 일으키는 가장 큰 원인이다. 10년 이상 당뇨병을 앓고 있는 환자의 20~40% 정도가 걸린다. 당뇨병으로 인한 모세혈관 합병증으로 망막혈관의 투과성이 증가해 혈액의 혈장 단백질· 지질이 망막조직 내로 누출돼 발생한다. 이들 물질이 황반에 고여 망막 두께가 증가하게 되고 신경연결에 손상을 줘 시력을 감소시킨다.
황반변성에 걸리면 주변 시야는 괜찮은데 중심부가 흐리고 찌그러져 보인다. 특히 습성 환자는 중심부의 시야가 까맣게 가려져 사물을 제대로 볼 수 없다. 또 한쪽 눈에만 발생한 경우 다른 한 눈은 정상이므로 이 증상을 인지하기 못할 수 있다. 황반변성은 치료하기 어렵고 완치가 힘들어 정기적인 안과검진으로 초기에 발견하는 게 중요하다. 황반변성의 주된 원인은 노화이며 흡연·가족력 등이 발생률을 높일 수 있다고 추정된다. 최근 스마트폰 사용량과 자외선 노출량이 증가함에 따라 60세 이하의 젊은 황반변성 환자도 증가하고 있다.
한국망막학회가 최근 5년간(2009~2013)의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를 분석한 결과 2013년 기준 황반변성환자는 14만540명으로 전체 인구 대비 유병률은 약 1%이다. 환자 10명 중 8명이 60대 이상의 노인이다. 고령화가 진행되며 황반변성의 발생률이 높아지고 있지만 안과 진단기술의 발전과 수준높은 치료법의 도입으로 실명위험은 낮아지고 있다. 노인성 황반변성의 경우 지속적인 치료를 통해 환자의 86.1%가 시력이 호전되거나 유지되는 결과를 얻었다.
‘항체주사’가 개발되기 전까진 ‘레이저광응고술(laser photocoagulation)’이 황반변성의 표준 치료법이었다. 레이저광응고술은 황반의 시세포를 파괴하는 신생혈관에 강한 레이저를 쏘아서 이를 파괴하는 방법이다. 주변 정상적인 망막까지 같이 파괴하는 경우가 많아 사용이 자제되고 있다.
이런 단점을 보완한 ‘비쥬다인 광역학치료(visudyne Photodynamic Therapy, vPDT)’는 베르테포르핀(verteporfin) 성분을 광감작제로 주사한 후 세기가 약한 레이저를 신생혈관에 조사해 이것만 선택적으로 제거한다. 시력을 유지하는 데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나아가 요즘 치료법의 주류를 이루는 게 ‘혈관내피세포성장인자’(VEGF, Vascular Endothelial Growth Factor) 항체주사다. 맥락막 신생혈관을 만드는 혈관내피세포성장인자를 억제하는 항체로서 안구의 유리체내에 주사한다. 이 항체를 항혈관내피세포성장인자(anti-VEGF)라 하며 지금까지 개발된 치료법 중에 시력개선 효과가 가장 크고 생체물질(항체)이라 부작용이 적은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요즘 병원에선 시력개선과 망막손상 최소화를 목적으로 혈관내피세포성장인자(VEGF) 항체주사를 1차 치료제로 많이 사용한다. 치료효과가 기대 이하일 경우에는 레이저요법을 병행하고 있다. 습성 황반변성 환자중 동양인이 서양인에 비해 항체주사만으로 치료하기 까다로운 유형이 더 많다고 알려져 있다.
황반변성치료의 새 시대를 연 ‘루센티스’(Lucentis, 제조사 노바티스, 성분명 라니비주맙, ranibizumab)는 습성 연령관련황반변성(wAMD)을 대상으로 2007년 7월 국내에 첫 출시됐다. 이후 당뇨병성 황반부종(DME), 망막중심 정맥폐쇄성 황반부종(CRVO, Central Retinal Vein Occlusion), 병적근시성 맥락막 신생혈관(mCNV, Myopic Choroidal Neovascularization)으로 인한 시력손상에 추가 적응증을 획득했다.
루센티스는 다른 항VEFG에 비해 부작용이 적고 약물의 효능·안전성을 입증하는 임상데이터도 월등히 풍부하다. 관련 논문은 유럽망막전문의학회(EURETINA, European Society of Retina Specialists), 미국 국립보건원(NIH, National Institutes of Health) 및 안과학회(AAO, American Academy of Ophthalmology), 국제시력안과연구협회(ARVO, Association for Research in Vision and Ophthalmology) 등 권위있는 학술지에 여러 건 등재됐다.
황반변성은 1개월 여마다 지속적으로 안구주사를 맞아야 병의 진행을 막을 수 있는데 루센티스 1회 투여 시 약값이 100만~120만원으로 비싼 게 단점이다. 국내에선 양쪽 눈을 합쳐 14회(2014년 11월부터 10회에서 14회로 확대)까진 건강보험 급여가 지원돼 매회10만~20만원으로 안구주사를 맞을 수 있지만 그 이후부턴 환자가 치료비 전액을 부담해야 한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내외 의료진은 루센티스가 비싸서 부담스럽거나 효과가 잘 적용되지 않는 환자에게 항암제 ‘아바스틴’(Avastin, 제조사 로슈, 성분명 베바시주맙, bevacizumab)을 오프라벨(off label)로 치료해왔다. 2011년 5월 루센티스와 성분이 비슷한 아바스틴이 황반변성에도 치료효과가 있다는 미국의 연구결과가 발표된 이후부터다. 항암제로 승인받은 이 약의 한 병 용량을 조금씩 나눠 환자 20~30명에 처방하면 1회 약값이 20만원 정도로 환자의 가격부담을 덜어줄 수 있다. 미국에서도 아반티스는 도스당(dose, 약물 용량의 기본 단위) 50달러인 반면 루센티스는 도스당 1950달러로 가격이 비싸 국내와 사정이 비슷하다. 황반변성에 대해 루센티스와 비슷한 효과를 보이지만 순환계출혈·울혈성심부전·정맥혈전증·위장장애·뇌졸중 등 부작용 발생 가능성은 더 높다.
그러나 시력과 관련한 안질환은 다른 중병에 비해 약물처방 시 생명에 치명적인 부작용이 발생할 가능성이 낮기 때문에 안전보다는 가격이 더 중요시되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2014년 8월 “항암제 아바스틴이 보험에 등재돼 대체의약품이 있는 황반변성에 사용할 수 없다”고 공표했지만 의사와 환자의 강력한 반발로 2주만에 정책을 철회했을 정도다. 안과의사들은 아바스틴의 황반변성 치료효과에 대해 공식적인 임상시험을 해볼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내기도 했다. 로슈 측은 항암제로 디자인된 아바스틴보다 황반변성의 기존 치료제인 루센티스가 더 적절하다는 연구결과를 인정했다. 막대한 비용을 들여 황반변성 추가 적응증을 허가받기 위한 임상시험을 실시할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2013년 7월 바이엘은 ‘아일리아’(Eylea, 성분명 애플리버셉트, aflibercept)를 출시했다. 황반변성 전문치료제 분야에서 사실상 독주하고 있던 루센티스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루센티스의 보험급여는 작년 기준 94만1098원이고 아일리아는 85만1788원이다. 지난해 상반기 국내 매출이 79억원으로 출시 2년만에 5배 이상 급증했다. 아일리아는 반감기가 2시간으로 짧은 루센티스보다 체내에 오래 머물며 VEGF를 억제해 투여주기가 1주~1개월 가량 더 길다. 반감기가 긴 만큼 신체의 여러 장기에 미치는 영향도 커서 내안구염 등 부작용 발병률이 루센티스보다 더 높다고 추정된다.
아일리아는 치료효과가 루센티스와 동등하면서 주사투여 주기는 더 길어 편리함을 추구하는 젊은 환자사이에서 선호되고 있다. 일부 환자에게는 기존 치료제보다 효과가 더 뛰어나다고도 알려져 있다. 지난해 존 웰스(John A. Wells) 미국 팔메토 안센터(Palmetto Retina Center) 박사는 시력저하가 심한 당뇨병성 황반부종(DME)의 경우 아일리아가 루센티스나 아바스틴에 비해 시력 개선효과가 더 우수하다는 연구결과를 미국 의학전문지 NEJM(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에 발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