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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의 ‘적’ 환경호르몬 … 당뇨병·성기능 감퇴에 불임까지
  • 박정환 기자
  • 등록 2016-04-07 17:10:13
  • 수정 2016-04-12 18:5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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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방암·전립선암·불임·성조숙증 위험 급증 … 모유수유 통해 태아에 악영향

일상생활에서 자주 쓰는 생필품에서 환경호르몬이 검출됐다는 소식은 하루가 멀다하고 전해진다. 지난달에는 필통과 교복 등 학생용품에서 기준치의 200배가 넘는 환경호르몬이 검출돼 리콜 조치됐으며, 환경호르몬이 범벅된 욕실메트가 13만장이나 유통되는 사건도 발생했다.
 
급속도로 성장한 한국사회에서 환경 문제는 언제나 뒷전으로 밀렸지만 약 10~15년 전부터 환경호르몬 등 환경 관련 이슈가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내분비계교란물질(endocrine disruptors), 즉 환경호르몬은 동물이나 사람의 체내에 들어가 내분비계기능을 방해하거나 혼란시키는 화학물질이다. 환경호르몬이라는 명칭은 1997년 5월 일본NHK에서 방송된 ‘사이언스 아이’라는 TV 프로그램에서 처음 등장했다. 프로그램 디렉터인 이구치타이 센 요코하마시립대 이학부 교수와 아카야마후지오 자치의과대 조교수는 외인성 내분비교란 화학물질보다 시청자가 이해하기 쉬운 이름이 없을까 생각하던 중 이같은 명칭을 결정했다.

1996년 미국에서 발간된 ‘잃어버린 미래(Our Stolen Future)’라는 책은 환경호르몬을 오존층 파괴, 지구온난화와 함께 지구 생태계 전체에 위협을 미치는 3대 환경문제로 언급해 전세계적인 반향을 일으켰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환경호르몬은 유방암 및 전립선암, 불임, 당뇨병, 성조숙증, 비만, 자가면역질환, 천식, 심장질환, 뇌졸중,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기타 학습장애, 알츠하이머, 파킨슨병 등을 유발할 수 있다.

다이옥신, 폴리염화바이페닐(PCB) 등 환경호르몬에 장기간 노출되면 당뇨병 위험이 2배 이상 높아진다. 환경호르몬이 지방조직 등에 침투하면 잔류성 유기화학물질이 서서히 방출돼 인슐린저항성이 커지고, 이는 제2형 당뇨병의 발생원인이 된다. 화석연료에서 방출되는 화학물질은 연평균 2000여개에 달한다. 현대인은 이들 물질에 사실상 거의 무방비 상태로 노출돼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환경호르몬 종류로는 다이옥신, 살충제(DDT), 트리페닐주석(TPT), 비스페놀A, 프탈레이트(phthalate) 등이 있다. 다이옥신은 염소를 이용해 펄프를 표백한 공장 폐액에서 처음 검출됐고 이후 종이나 화장지 등에서도 자주 발견되고 있다. 식품의 경우 고기, 유제품, 어패류 등을 통해 인체에 축적될 때가 많다. 이밖에 생활쓰레기 및 유해폐기물 소각, 하수오염, 제철 및 제강산업, 자동차 배기가스, 종이, 판지, 종이펄프 등도 다이옥신의 발생원인으로 추측된다.
이 물질은 간암, 폐암, 인두암 등을 유발하고 기형이나 유산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또 갑상선호르몬 과잉 분비를 유도해 구개열 같은 기형을 유발하고 정소를 위축시켜 생식능력에도 영향을 준다. 최근엔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과 프로게스테론 농도를 변화시켜 여성의 생식력에도 악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확인됐다.

비스페놀A(BPA)는 합성수지 원료·콤팩트디스크(CD)·식품저장용 캔 내부 코팅재료 등으로 쓰이는 물질로 내분비계의 정상적인 기능을 방해한다.
미국 국립보건연구소 산하 국립독극물프로그램(NTP)이 2008년 4월 16일 제출한 보고서에 따르면 미량의 비스페놀을 주입한 실험용 쥐에서 전립선종양·유방암·비뇨체계이상·성조숙증 등이 발견됐다. 유아의 경우 소량만 노출돼도 전립선이나 유선조직에 영향을 받게 되고 결국 암으로까지 발전할 수 있다. 최근엔 농약이나 공업제품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자주 접하는 플라스틱에서도 비스페놀A가 녹아 나오는 것으로 밝혀졌다.

프탈레이트는 플라스틱이 쉽게 휘고 탄력성을 갖게 하는 성질 때문에 합성수지 가소제(첨가제)로 널리 쓰이는 화학물질이다. 장난감·화장품·의료기기 등 현대인의 생활용품에 들어가지 않은 제품이 없을 정도다. 남성호르몬에 대한 반대작용을 나타내 남자아이의 생식기관 발달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 최근에는 인슐린·혈당·갑상선호르몬 등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를 유발하고 두뇌발달도 저해한다. 김붕년 교수는 “프탈레이트 대사물인 DEHP(Di ethyl hexyl phthalate)가 높은 아동일수록 우전두엽과 측두엽의 피질 두께가 더 얇은 것으로 확인됐다”며 “우전두엽과 측두엽이 약화되면 공격성, 과잉행동, 불복종, 짜증, 비행 등 밖으로 드러나는 행동 및 정서상의 문제를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설명했다.

유·소아가 먹는 모유는 환경호르몬 축적의 빌미가 될 수 있다. 최경호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최근 연구결과 모유를 먹은 신생아 중 8%는 하루섭취제한량을 초과하는 DEHP를 섭취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산모가 모유 내 DEHP 등 프탈레이트 함량을 대폭 낮추려면 플라스틱 재질 용기 사용을 가급적 삼가고 랩 등 1회용 식품포장과 전자레인지를 이용한 조리를 줄이는 게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환경호르몬은 폐기물소각장, 화학공장, 음식물 잔류농약, 산업시설 등에서 배출된 뒤 대기·수질·토양 등 환경을 오염시킨다. 이후 물고기나 축산물 등 생물체에 축적되고, 최종적으로 사람이 소비하는 음식물을 통해 인체에 들어온다. 음식을 포장할 때 사용하는 랩, 비닐, 플라스틱, 캔 등으로 유입되기도 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체내에 축적되면 가짜 호르몬으로 작용해 정자 감소, 불임 증가, 생식계 이상, 행동변화, 암 등을 초래한다. 뇌신경계와 아토피나 암 등 면역계 이상도 일으킨다.

플라스틱 소재 용기를 데우거나, 페트병에 담긴 물을 마시거나, 쿠킹랩을 사용하거나, 통조림음식을 먹는 행동이 유해한지는 전문가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환경호르몬이 얼마나 축적됐을 때 위험한지’가 과학적으로 명확히 입증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확실히 밝혀진 게 없기 때문에 예방 차원에서 더욱 조심해야 한다”는게 의료계 대부분의 입장이다.

환경호르몬 노출을 최소화하려면 가급적 유기농산물을 먹고, PVC(폴리염화비닐) 소재 플라스틱 용기 사용을 줄이는 게 좋다. 플라스틱 용기에 뜨겁고 기름기가 있는 음식을 담으면 환경호르몬 물질이 나올 수 있는 데다가 전자레인지 사용으로 유해물질 분출이 심화되므로 주의해야 한다. 가급적 음식물을 유리그릇 등에 담아 가스불이나 전열기로 직접 데워 먹는 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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