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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말도 귀에 안들어온다 … 건강염려증, 낮은 자존감이 원인
  • 박정환 기자
  • 등록 2016-04-04 10:13:30
  • 수정 2016-04-07 19: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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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인 35.1%만 건강상태 좋다 여겨 … 환자 자처해 ‘사회적 책임’ 회피 경향도

회사원 구모 씨(31·여)는 평소와 달리 소화가 잘 되지 않고 속쓰림 증상이 나타나 집 근처 내과에서 내시경검사를 받았지만 아무 이상이 없으니 스트레스만 잘 관리하면 된다는 진단을 받았다. 큰 병원에 가면 혹시 다른 진단이 나올 수 있다는 생각에 대학병원을 찾았지만 결과는 같았다. 인근 한의원에서도 같은 답변이 돌아왔지만 여전히 검사 결과가 석연치 않다고 생각해 안절부절 못하고 있다.

건강염려증(Hypochondriasis)은 하나 또는 여러 개의 신체적인 징후나 증상에 대해 잘못된 해석을 내려 자신이 심각한 병에 걸렸다고 여기는 장애의 일종으로 정식 병명은 ‘건강불안장애(Health Anxiety Disorder)’다. 국내 유병률은 1~5%로 병원을 찾는 전체 환자의 4~6%, 많게는 15%가 건강염려증으로 진단된다.

지난 1월 장용식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의 ‘한국인의 건강상태와 의료기관 이용’ 보고서에 따르면 ‘OECD 건강통계’에 따르면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스스로 건강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가장 많았다. 하지만 실제 기대수명은 OECD 상위권에 속했다. 만 15세 이상 한국인의 35.1%만 자신의 건강 상태가 ‘좋다’고 생각했으며 이는 OECD 평균인 69.2%의 절반에 불과하다.

사회·경제·문화적으로 안전하거나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는 심리적 요인이 작용하면서 자신에 건강을 과소평가하는 사람이 증가하는 것으로 추측된다. 검증되지 않은 의학·건강 정보가 미디어 등을 통해 과다 유포되는 것도 그릇된 신체관(body image)과 자기왜곡을 일으키는 요인이다.

건강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의사의 설명을 들었는데도 질환을 의심해 여러 병원을 전전하거나, 이로 인해 사회생활이나 직장생활에 지장을 받거나, 이같은 증상이 6개월 이상 지속될 땐 이 질환을 의심해볼 수 있다.

김병주 교수는 “건강염려증은 아직 뚜렷하게 밝혀진 것은 없지만 유전적·생물학적·심리적 요인 등 다양한 원인으로 나타날 수 있다”며 “최근엔 일상생활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해소하지 못하고 사소한 신체적 증상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이어 “겉으로는 대범한 성격에 사회성도 좋은 사람조차 스트레스를 극복하지 못하고 건강문제로 악화시키는 사례가 증가하는 추세”라고 덧붙였다.

건강염려증 환자는 주로 특정한 신체기관에 질병이 있다고 강력히 주장하며 다양한 증세를 나름대로 의학적 용어를 통해 설명하려 한다. 이 때문에 질병 관련 정보를 여러 채널을 통해 검색하고, 여러 병원을 돌아다니며 검사받기도 한다. 의사의 진단에 오류가 있다고 생각해 건강식품을 먹거나 민간요법을 이용할 때도 있다. 심한 경우 망상 수준으로 악화되고, 우울증이 동반될 수 있다.

스스로 적절한 치료나 보호를 받고 못한다고 생각하거나, 걸렸다고 믿는 질병이 자주 바뀌기도 한다. 정신과 치료에 쉽게 동의하지 않기 때문에 다른 진료과를 전전하며 시간과 돈을 낭비한다. 병원을 방문할 때에는 가급적 가족을 동반하는 게 바람직하다.

이같은 증상은 낮은 자존감, 부적절한 자기감(자신에 대해 가지는 느낌), 인지장애에 대한 방어의 결과로 볼 수 있다. 환자는 죄책감과 자기비하로 초래된 신체적 고통을 심리적 속죄의 수단으로 활용하기도 한다. 환자 역할을 스스로 자처함으로써 여러 곤란한 상황을 모면하고, 사회적 책임과 의무로부터 도피하려 한다. 과도한 자기애적인 성향과도 깊게 연관된다.

대체로 감각역치(자극에 대한 반응을 일으키는 데 필요한 최소한도)나 인내성이 낮아 약한 신체감각을 고통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을 보인다. 과거에 경험한 상실감이나 분노를 부적절한 방식으로 표현하거나, 죄책감 혹은 자존심 손상에 의한 적대감을 증상으로 드러낸다고도 해석할 수 있다.

건강염려증 환자가 처음 병원을 찾으면 의사는 환자가 불안해하는 질환에 대해 건강검진을 실시하고 인지행동적 치료와 스트레스관리 훈련을 병행한다. 이 과정을 거치면 환자의 70% 이상이 호전된다. 또 대부분 우울증을 호소하기 때문에 항우울제나 항불안제 등의 치료제를 처방하기도 한다.
다양한 심리적 원인이 존재하는 환자는 1대1 맞춤형 상담치료로 정확한 발병원인을 파악한다.

상담을 통해 의사와 환자가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면 건강염려증으로 인한 ‘닥터쇼핑’을 막는 데 효과적이다. 김병주 교수는 “건강염려증의 가장 안 좋은 예후가 닥터쇼핑”이라며 “건강에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것을 병원 측이 확인해 줘도 이를 믿지 못해 불필요한 검사나 치료를 받음으로써 오히려 건강을 해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이어 “의사는 환자에게 적절한 검사와 질환에 대한 정보를 꾸준히 제공하고 심리적인 안정을 취할 수 있도록 서로 신뢰감 형성에 힘을 쏟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건강염려증을 예방하려면 어릴 때부터 건강에 대한 자신감을 심어주는 게 중요하다. 아이의 작은 병이나 가벼운 증상에 대해 부모가 지나친 관심을 보이거나 걱정하는 것은 금물이다. 대범한 태도를 갖게 하고 공부나 일에 몰두하거나 운동을 하는 등 취미를 가지면 병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는 데 도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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