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사 3년차 직장인 권모 씨(32)는 얼마전부터 정상적인 업무가 힘들 정도로 심한 소화불량을 겪고 있다. 처음엔 업무스트레스로 인한 일시적인 증상으로 여겼지만 점차 명치와 가슴 부근이 꽉 막힌 느낌이 들고 속이 쓰리기 시작했다. 대변을 봐도 속이 시원하지 않았고 구역질이 나기도 했다. 소화제를 먹어도 증상이 개선되지 않자 병원을 찾은 결과 위궤양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잦은 야근과 회식으로 현대인의 ‘속’이 멍들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증상이 소화불량이다. 주로 상복부 중앙에 소화장애가 나타나는 것으로 속쓰림, 조기 포만감, 만복감, 상복부 팽만감, 구역(또는 오심) 등 여러 증상이 동반된다. 위·간·식도·소장·대장·췌장·담낭 등 관련된 신체기관이 많아 정확히 어떤 부위에 문제가 발생했는지, 어떤 기저질환에 의해 발병했는지 파악하기 쉽지 않다. 소화불량이 3개월 이상 지속되거나 복통 등 다른 증상이 동반될 경우 병원을 찾아 정확히 진단받을 필요가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조사 결과 2013년 기준 소화불량과 속쓰림으로 79만명이 진료받았으며, 환자 10명 중 6명이 여성이었다. 연령대별로는 70대가 17%로 가장 많았으며 50대 16.4%, 40대가 13.6%로 뒤를 이었다.
만성 소화불량의 원인으로는 기능성 소화불량, 위염, 위궤양, 담낭염 등이 있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거나 우울함을 느낄 때 소화가 잘 되지 않고 변비나 설사가 반복된다면 기능성 위장장애일 확률이 높다. 이 질환은 식도, 위, 대장 등 소화기관에 질환이 없는데도 스트레스에 의해 소화기 관련 증상이 나타나는 것으로 국내 인구의 10%에서 발병한다.
함기백 차의과학대 분당차병원 소화기내과 교수는 “내시경·초음파·생화학적검사로도 위암, 위염, 십이지장궤양 등 기질적인 원인이 발견되지 않고 3개월 이상 위장장애 증상이 지속되면 기능성 위장장애로 진단한다”며 “발병원인은 명확히 밝혀지지 않지만 스트레스 등 심리적·정서적 요인이 크게 작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설명했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교감신경이 활성화되면서 신체가 긴장 상태로 변한다. 이런 경우 입과 식도에서는 점액 분비가 잘 되지 않고 위장의 운동기능이 떨어져 위산, 소화효소 분비가 줄어든다. 이로 인해 전체적인 소화기능이 떨어지고 소화불량 증세가 나타난다.
가슴이 답답하고, 속이 더부룩하며, 복부팽만감이 느껴진다. 위산 역류, 조기 포만감, 구토, 속쓰림 같은 증상이 동반되고 이로 인해 식욕이 떨어지기도 한다.
끼니를 거르면 다음 식사 시간에 폭식할 가능성이 커지고, 이는 소화불량을 일으키는 주요 원인 중 하나다. 또 식사를 걸러 공복이 길어지면 위산으로 인해 위장질환이 나타날 수 있
위염과 위궤양도 만성 소화불량을 유발하는 주원인이다. 위벽은 다섯개의 층으로 이뤄져 있으며, 첫 번째가 위산으로부터 위벽을 보호하는 ‘위점막층’이다. 위염은 이 부위가 손상돼 염증이 생긴 상태에서 위산이 닿아 아프고 쓰린 질환이다.
음식을 많이 또는 급하게 먹거나, 매우 매운 음식을 자주 먹으면 위장에 염증이 생길 위험이 높아진다. 또 헬리코박터 파일로리균(Helicobacter pylori) 감염 또는 진통제·소염제·아스피린 같은 약물이 원인이 되기도 한다. 심한 정신적 스트레스, 흡연, 음주도 위질환 발병률을 높인다.
위염 중 가장 많은 만성 위축성 위염은 위점막이 위축돼 얇아지면서 염증이 생기는 것으로 40대 이후에 자주 발생한다. 증상이 심한 환자 중 10% 가량이 위암으로 악화되며, 보통 16~24년이 소요된다.
발생 부위와 기전에 따라 만성위염을 A형과 B형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A형은 자가면역성 기전에 의해 발생하며, 위 체부를 주로 침범한다. B형은 헬리코박터균과 관련되며 주로 위 전정부를 침범한다. 한국인의 대부분은 B형이다.
위궤양은 위의 두 번째 층인 ‘점막하층’까지 손상된 상태로 점막에 5㎜이상 패인 듯한 형태의 상처가 생긴다. 위염이 심해지면 위궤양이 될 수 있다. 타는 듯한 상복부 통증이 느껴지면서 공복 때보다 음식을 먹은 뒤 증상이 심해진다. 체중감소, 구역질, 구토 등이 동반되거나 출혈, 천공, 협착 등 합병증이 생기기도 한다. 체중이 감소하면서 위궤양이 발견되면 악성궤양인지를 반드시 감별·진단해야 한다. 궤양이 심해져 구멍이 뚫리면 급성복통이 나타나기도 한다.
잦은 진통제 복용은 위궤양 발병률을 높일 수 있다. 위점막 세포층의 재생과 기능을 조절하는 ‘프로스타글란딘’이라는 물질의 생성 과정이 진통제에 의해 차단되면 점막이 손상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흡연은 위장 점막세포의 재생과 점막하조직의 혈액순환 등에 문제를 일으켜 궤양을 유발한다
소화불량 치료법은 발생 원인에 따라 대증요법, 약물치료, 수술 등으로 나뉜다. 가벼운 기능성 소화장애인 경우 신경안정제나 항우울제를 처방한다. 소화불량증이 심하고 헬리코박터균의 위장관 감염이 있는 환자는 헬리코박터균의 제균치료를 실시한다. 약물 외에도 생활습관 및 식이요법 개선이 소화불량 치료의 핵심이다.
소화불량의 원인이 위염과 위궤양인 경우 위 산도(酸度)를 떨어뜨리는 약제, 위장 점막보호제 등을 많이 사용한다. 위산이 과다분비되는 환자에게는 위의 산도를 떨어뜨리는 제산제나 H2 수용체길항제 등이 가장 많이 처방된다.
위장관 운동이 저하된 상태라면 이를 활성화하는 ‘돔페리돈(Domperidone)’, ‘이토프라이드(Itopride)’, ‘레보프라이드(levosulpiride)’ 등 약물을 사용한다.
함 교수는 “위염, 위궤양, 위암 등을 예방하려면 헬리코박터 파일로리균을 죽이는 것 못잖게 세균 감염에 따른 염증을 없애는 게 중요하다”며 “김치·마늘·홍삼·요구르트 등은 헬리코박터 파일로리균에 의한 염증을 억제하는 데 효과적인 음식”이라고 설명했다.
콩·양배추 등 식이섬유가 풍부한 식품은 소화불량 증상을 악화시킬 수 있다. 식이섬유는 위에서 분해되지 않아 장내세균이 발효·소화시키는 과정에서 메탄가스가 발생해 더부룩한 증상을 유발한다. 요즘 광고되는 양배추의 경우 위점막을 보호하는 효과가 있어 위염 완화에 도움되지만 소화불량에는 효과가 없거나 오히려 가스 탓에 증상이 악화될 수 있다.
일반적으로 거부룩한 속에는 지방 함량이 높은 식품, 기름에 튀긴 음식, 유제품, 밀가루음식, 고섬유질 식품 등이 좋지 않다. 반면 쌀과 생강은 유익하다. 속쓰림에는 귤과 커피, 녹차 등 카페인음료가 나쁘다.
소화불량과 명치통증이 동반될 땐 담석증을 의심해볼 수 있다. 담석증은 담낭이나 담관(담도)에 돌이 생기는 병이다. 실제 돌은 아니며 담즙(쓸개즙)의 성분이 딱딱하게 굳어 덩어리가 된 것을 의미한다. 성분에 따라 크게 콜레스테롤 담석과 색소성 담석으로 구분한다. 콜레스테롤 담석은 다시 순수 콜레스테롤석과 혼합석으로 구분된다. 색소성 담석은 흑색석 및 갈색석 등으로 나눌 수 있다.
담석증이 소화불량의 원인일 땐 수술이 필요하다. 최근 개복수술보다 복강경 담낭절제술이 확실한 이점을 보이고 있어 현재는 복강경수술이 주로 시행된다. 복강경수술은 복부를 크게 절개하지 않고 배꼽이나 명치 부위에 1㎝가량의 구멍을 3∼4개 뚫은 뒤 배 안을 들여다보는 카메라인 복강경과 수술기구를 삽입해 병변을 제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