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가 내리는 대나무밭에 가보면 여기저기 올라온 죽순을 흔하게 볼 수 있다. 일이 한꺼번에 많이 벌어지는 것을 뜻하는 사자성어인 ‘우후죽순’(雨後竹筍)은 이같은 죽순의 특성을 빗대서 만들어진 말이다. 막 자란 죽순으로 조리한 음식은 특유의 향미 덕분에 봄철 최상의 요리로 꼽힌다. 한국, 일본, 중국 등 동아시아 전역에서 귀하게 대접하는 식재료다.
죽순(bamboo sprout, 竹筍)은 대나무의 땅 속 줄기 마디에서 돋아나는 어린 순이다. 성장한 대나무에서 볼 수 있는 형질을 모두 갖추고 있다. 하지만 아무 대나무밭에서나 죽순을 얻을 수 있는 건 아니다. 대나무가 땅 넓이에 맞게 일정한 수로 자라야 죽순도 올라 온다. 대나무 수가 너무 많거나 적으면 죽순이 제대로 나지 않는다. 나더라도 품질이 떨어진다.
죽순은 일반적으로 4~6월에 나지만 채취 기간이 30일 가량에 불과하다. 봄에 비가 자주 온다면 채취 기간이 더 줄어들 수 있다. 죽순은 땅 위에 올라오기 직전에 수확한 게 가장 달다. 시간이 지나면 아린 맛이 늘어난다. 옥살산(oxalic acid)과 호모겐티신산(homogentisic acid) 등이 원인으로 꼽힌다. 죽순의 아린 맛이 심할 경우 먹기 어렵고 몸에도 좋지 않아 삼가는 게 좋다.
담양죽순영농조합법인 관계자는 “죽순은 대나무의 생장 과정의 초기단계 생산물로 적절한 재배관리만 이뤄진다면 별도의 농약처리 과정을 거치지 않아도 잘 자란다”며 “길이 20~30㎝로 껍질까지 그대로인 원형의 모습을 채취해서 판매하는 것을 생죽순으로 부른다”고 밝혔다. 이어 “생죽순은 죽순이 나오는 시기인 4월 중순부터 시중에 유통된다”며 “죽순은 성장 시기가 끝나면 바로 대나무의 형태를 갖추므로 미리 수확한 죽순을 삶아 진공포장해 1년 내내 판매한다”고 덧붙였다.
대나무 중에서도 굵은 죽순대(맹종죽)의 죽순이 크고 맛이 좋아 식재료로 많이 쓰인다. 죽순은 고유의 향이 있지만 강하지 않아 다른 음식과 잘 어울린다. 국, 찜, 볶음, 전 등 다양한 요리에 활용할 수 있다. 죽순에는 ‘시아노겐’(cyanogen)이란 성분이 있어 생으로 먹지 말아야 한다. 물에 한번 삶아 독성을 없앤 뒤 섭취하는 게 좋다.
죽순은 수분이 주성분이다. 단백질, 당질, 섬유질, 칼슘, 인, 칼륨 등이 함유돼 있다. 글루타민산 등 아미노산과 당류, 유기산, 아테닐산 등이 어울려 죽순 특유의 맛을 낸다. 죽순 속 섬유질은 장의 연동운동을 도와주며 칼륨은 체내 나트륨 배출을 유도하고 혈중 콜레스테롤을 저하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
죽순의 식이섬유는 소고기, 돼지고기 등의 기름맛이 올라오는 것을 잡아줘 육류와 함께 먹으면 좋다. 된장찌개에 죽순을 넣으면 된장의 텁텁한 맛이 없어지고 맑은 맛이 난다. 향이 강한 마늘, 양파, 미나리, 고추장 등은 죽순 본연의 맛을 가려 가급적 함께 조리하지 않아야 한다.
생죽순을 구하기 힘들다면 통조림 형태의 죽순을 선택해도 좋다. 통조림 죽순에는 흰 앙금이 생기는데 이는 죽순의 수산, 전분, 아미노산 등이 티록신과 결합해 생긴 것이다. 씻어 먹으면 영양적으로 문제가 없다. 죽순 특유의 아삭거리는 식감이 싫다면 죽순 장아찌로 먹으면 도움이 된다.
죽순은 껍질을 벗긴 뒤 칼집을 내 구워 먹어야 진미를 느낄 수 있다. 부드러우면서 씹히는 맛이 좋아 웬만한 육류보다 낫다. 한국에서는 주로 익힌 뒤 회처럼 무친다. 과거 죽순으로 김치를 담가 먹기도 했다. 죽순김치는 배추김치보다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중국인들은 죽순의 아린 맛을 없애기 위해 끓인 기름에 튀긴다. 일본인들은 우동이나 라멘에 넣어 먹는다. 서양에서는 통조림으로 만들지만 한국인의 입맛에는 맞지 않는 게 대부분이다.
죽순은 성질이 차갑다. 몸에 열이 많은 사람이 가래와 어지럼증이 심할 때 먹으면 증상이 완화된다. 마음을 안정시키는 성분이 있어 정신적 스트레스가 심한 사람에게 추천된다. 하지만 평소 설사를 자주하거나 몸이 차 걱정인 사람은 과다 섭취를 피해야 한다.
죽순을 구입할 때엔 껍질에 솜털이 많이 나 있고 끝 부분에 노란빛이 돌며 통통한 모양새를 갖춘 것을 선택하는 게 좋다. 같은 부피일 때 상대적으로 무거우며 뿌리에 반점이 적은 게 상품이다. 크기가 클수록 식감이 질기며, 뿌리에 붉은 반점이 있거나 황색 또는 청색을 띠는 것은 오래 보관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