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생 강모 씨(32)는 큰 일교차와 과도한 업무스트레스 탓에 며칠 전부터 감기 몸살을 앓았다. 매번 있는 일이라 가볍게 생각했지만 증상은 나아지지 않았고 뜻밖에 허리통증이 찾아왔다. 점차 밤에 잠을 잘 수 없을 정도로 통증이 심해지자 병원을 찾았더니 척추결핵(결핵성 척추염)이라는 진단이 나왔다. 단순한 감기인 줄 알았는데 결핵이라는 의사의 소견을 들은 김 씨는 큰 충격을 받았다.
결핵은 결핵균에 의해 유발되는 만성 감염증으로 대부분 폐에 염증이 생기는 폐결핵을 떠올리지만 인체 어디에서나 발병할 수 있는 전신질환이다.
전체 결핵의 10~15%가 폐가 아닌 다른 곳에서 발병한다. 발생 부위가 림프절이면 림프절결핵, 척추이면 척추결핵으로 불린다. 결핵균에 감염되면 10% 가량만 결핵균이 발병하고 나머지는 잠복결핵감염 상태로 평생 살아간다.
척추결핵은 폐외결핵의 약 10%, 전체 결핵의 약 2% 정도를 차지하며 폐결핵 다음으로 환자가 많다. 척추는 많은 혈액이 통과하는 부위여서 혈액내 결핵균이 정착할 확률이 상대적으로 높기 때문이다. 폐외결핵은 폐에서 증식하던 결핵균이 혈액이나 림프액을 타고 몸 속의 다른 부위로 이동해 발생하는 질환이다.
척추결핵은 만성염증 질환이다. 최근 실내 중심의 생활패턴에 따른 운동부족 및 체력 저하, 불규칙한 식습관, 업무스트레스 등이 면역력을 떨어뜨려 젊은층에서 환자가 증가하는 추세다. 호흡기를 통해 들어온 결핵균이 폐나 주변 임파절에 숨어 있다가 척추관절에 파고 들면 염증이 생기고 허리 및 등 통증, 식욕부진, 미열, 전신피로, 식은땀, 체중감소, 저림, 방사통(신경조직을 따라 사방으로 퍼지는 통증) 등이 동반된다.
몸에 열이 있고 피로감이 드는 증상이 감기와 비슷해 진단 및 치료가 늦는 경우가 많다. 치료 시기를 놓치면 증상이 악화돼 척추가 변형되면서 등이 굽거나, 뼈가 괴사되면서 뼈 주변에 고름이 차기도 한다.
정국진 교수는 “척추결핵은 증상이 서서히 진행되고 허리통증 외에는 별다른 증세가 없기 때문에 갑자기 심한 통증을 느껴 내원했을 때에는 이미 악화된 상태일 확률이 높다”며 “결핵균이 척추 추간판(디스크)과 뼈를 녹여 파괴하면 척추뼈가 서로 맞닿으면서 척추신경이 눌려 하반신이 마비될 수 있다”고 말했다.
X-레이, 자기공명영상(MRI), 혈액검사 등으로 진단한다. 척추결핵 환자의 혈액을 검사하면 백혈구 수와 적혈구 침강속도(ESR)이 증가한 소견을 보인다. 컴퓨터단층촬영(CT)이나 MRI는 병변 주변 연부조직의 변화, 농양 유무, 결핵균의 척수 침범 여부 등을 파악하는 데 도움된다.
CT보다 MRI가 병으로 인한 조직변화 범위와 진행 정도를 확인하는 데 유리해 임상 현장에서 선호된다. 영상검사로 조직의 병적인 변화가 확인되면 바늘을 찔러 넣어 조직을 채취하는 침생검이나 흡인수술적 방법으로 조직을 채취한다.
예전에는 결핵을 ‘불치의 병’으로 여겨 치료를 포기했지만 의학이 발전하면서 최근엔 오히려 너무 안이하게 대처하다 상태가 악화되는 경우가 적잖다. 척추결핵 초기에는 항결핵제를 이용한 약물치료를 9~12개월간 실시해 결핵균을 제거한다. 항결핵제는 폐결핵에 사용하는 것과 다르지 않으며 치료 성공률은 70% 이상이다. 폐결핵보다 더 오랜 기간 동안 약을 투여하는 게 권장된다.
다만 다량의 약제를 장기간 복용해야 하고 복용 시 소화장애, 복통 등 부작용이 생겨 복용을 환자 임의로 중단하는 사례가 많다. 이런 경우 약물치료에 내성이 생겨 효과가 적고 부작용이 많은 2차약을 장기 투여해야 하므로 환자의 부담이 가중된다.
정국진 교수는 “척추결핵은 조기에 발견하면 약물요법 등으로 쉽게 치료할 수 있어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다”며 “하지만 초기 치료를 놓쳐 염증이 심해지거나, 척추가 변형되거나, 디스크와 척추 뼈의 괴사가 발생해 하반신 마비가 시작된 경우라면 하루 빨리 수술받는 게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질환 초기가 지나면 척추뼈는 물론 주변 조직에도 고름주머니가 생긴 경우가 많아 허리나 등이 아닌 가슴과 배쪽에서 수술이 이뤄진다. 수술 부위가 앞 쪽이면 등 쪽보다 수술 난이도가 높으므로 집도의의 임상 경험이 예후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결핵은 제3군 법정 전염병으로 최근 환자가 대폭 줄었지만 미국 등 선진국에 비하면 여전히 발병률이 높은 편이다. 현재 국내에서 약 17만명이 결핵을 앓고 있고 매년 3만명 이상의 신규 환자가 발생한다. 특이한 점은 국내의 경우 20~30대에서 발생률이 현저히 높다는 사실이다. 다른 선진국의 경우 60~70대 노년층의 발생률이 높은 반면 한국은 전체 환자의 37.8%가 20~30대로 후진국형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는 PC방이나 멀티방 등 밀폐장소를 이용하는 젊은층이 늘면서 감염률도 높아진 것으로 주정된다.
척추결핵을 비롯한 결핵균 감염을 예방하려면 평소 충분한 영양섭취와 정기적인 운동으로 면역력을 높이는 게 중요하다. 자외선 살균효과로 탁 트인 외부 공간에는 결핵균이 없으므로 실내 공기를 자주 환기시킨다. 결핵약 복용 후 2주 이내인 환자와는 접촉을 피하도록 한다.
결핵 예방주사인 BCG(Bacillus Calmette-Guérin)는 생후 한 달 만에 맞는 것으로 작은 흉터를 남길 뿐 부작용은 적다. 결핵 발병률이 비교적 높은 국내 사정 상 반드시 접종해야 한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BCG를 접종할 경우 결핵을 53~74%까지 예방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