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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산부에게 ‘전쟁같은’ 명절 … 가족간 배려 절실
  • 정종호 기자
  • 등록 2016-02-05 19:08:22
  • 수정 2016-02-10 11:5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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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과도한 명절노동, 산모에겐 심리·신체적 부담 가중 … ‘쉬겠다’는 간큰 며느리 적어 배려하는 ‘센스’ 필요

임산부에게 명절 음식 준비는 심리적·신체적으로 부담이 될 수 있어 가족들의 도움이 절실하다.

임산부 양모 씨(30)는 시어머니의 전화를 받고 한숨을 푹 내쉬었다. ‘전 부칠 준비를 해오라’는 통보 전화에 벌써부터 걱정이 앞선다. 결혼 3년차, 아이부터 어른까지 대가족이 먹을 음식을 만드는 데 익숙해질 법도 하지만 임신한 탓인지 예민해진다.

시어머니는 지난해 임신한 아랫 동서에게 “임신했다고 유난 떠는 거 아니다, 나 때는 애 가졌을 때 농사도 짓는 게 기본이었다”는 말로 못을 박았다. 만삭의 몸으로 음식을 만드는 동서를 내버려두고 소파에서 TV만 보는 얄미운 도련님의 모습이 올해는 자신의 차례일 것이라는 생각에 벌써부터 속이 답답하다.

배가 무겁고 예민한 임산부에게 명절은 그리 즐겁지만은 않다. 어른들 중에는 ‘임신이 유세’냐며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경우가 있지만 조심해서 나쁠 게 없다. 임신해도 명절 준비에서는 ‘열외’가 없다.

임산부에게 가장 바람직한 것은 임신한 해에는 남편과 둘만의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최근엔 임신 기간 연휴를 활용해 태교여행을 떠나는 산모도 있다. 하지만 시부모 앞에서 감히 연휴를  ‘남편과 둘이 보내겠다’는 말을 꺼낼 수 있는 ‘간 큰 며느리’는 거의 없다.

실제로 한 임신·육아 포털사이트가 2012년 1037명의 임산부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임산부들이 시부모님에게 가장 바라는 점은 ‘임신한 몸으로 오지 않아도 된다’는 배려가 39%로 가장 높았다. 이어 뱃속 아이와 임산부를 위한 따뜻한 말 한마디와 관심이 25%를 차지해 어른들의 배려가 절실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함께 임산부들이 명절 기간 시댁 방문에서 가장 걱정되는 것은 역시 ‘상 차리기’(38%)였다.

명절의 고통은 ‘장거리운전’에서부터 시작된다. 정체된 교통은 운전자와 임산부 모두를 괴롭게 만든다. 임산부에게 장거리 이동은 피로와 스트레스를 주는 위험요소가 될 수 있어 되도록 쉬는 게 바람직하다.

홍수정 호산여성병원 산부인과 원장은 “장거리운전 시 오랜 시간 한 곳에 앉아 있으면 자궁이 수축돼 혈액순환이 악영향을 받을 우려가 있다”며 “꼭 이동해야 한다면 장시간 앉아만 있어야 하는 자가용보다는 내부에서 움직이거나 화장실을 편하게 다닐 수 있는 기차 등을 활용하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자가용을 타고 이동할 때에는 휴게실에 자주 들러 휴식하는 게 바람직하다.

목적지에 도착해서 장을 볼 경우 임신 초기엔 사람이 많은 마트나 시장은 피해야 한다. 초기엔 유산 위험이 높고, 바이러스성 질환에 걸리면 태아가 위험할 수 있다. 임신 중기에 점점 배가 불러오면 짐을 들어 올리는 것조차 쉽지 않다. 물건을 들어 올릴 때에는 복압을 낮추기 위해 한쪽 무릎을 구부려 천천히 일어서는 동작을 취한다. 선 채로 허리를 구부려 물건을 들면 복압이 높아져 태아에게 악영향을 끼칠 우려가 있다. 임신 후기엔 배가 많이 불러와 몸의 중심을 바로잡기 힘든 만큼 장보기나 짐 나르기를 지양하는 게 좋다.

본격적인 ‘명절’의 꽃은 음식 장만이다. 먹는 사람은 즐겁지만 만드는 사람은 다소 지칠 수 있다. 임산부에게 명절 음식 준비는 심리적·신체적으로 부담이 된다. 홍 원장은 “가벼운 집안일 적당한 운동이 되기 때문에 임산부와 태아의 건강에 도움을 줄 수 있지만, 명절처럼 장시간 앉거나 서서 이뤄지는 가사일은 큰 무리를 줄 수 있다”며 “일을 할 때에는 식탁에 앉아서, 짬짬이 휴식하며 일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임신 초기엔 입덧 과정 때문에 명절 음식을 준비하는 것 자체가 고역일 수 있다. 신랑과 가족들에게 입덧의 고통을 어필해 상황을 설명하는 게 좋다. 하지만 임산부는 자신의 힘든 마음을 말하는 것 자체를 부담스러워하기 마련이다. 아직까지 한국 사회에서 시댁은 아무리 편하다 한들 가장 어렵고 힘든 자리다. 

이때 가족 구성원들이 ‘유세를 부리는 것 아니냐’, ‘너만 쉬면 되겠느냐’, ‘아무리 그래도 같이 일해야지’ 같은 고까운 시선을 보내지 말아야 한다. 이해하고 배려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입덧이 잦아든 중기라면 함께 음식 만들기에 나서도 좋다. 하지만 오래 일어선 채로 조리하는 것은 피하고 앉아서 조리도구를 가까운 곳에 두고 일하는 게 바람직하다. 앉아서 일하더라도 장시간 요리하면 다리가 붓거나 저릴 수 있다. 잠들기 전 따뜻하게 샤워한 뒤 장거리 운전으로 피곤한 남편과 음식 장만에 지친 아내가 서로의 다리에 오일마사지를 해주며 돈독한 시간을 보내면 훌륭하다. 

임산부는 스트레스를 받아 자기도 모르게 과식하는 것을 주의해야 한다. 가뜩이나 힘든 몸을 이끌고 일하는데 어른들의 잔소리, 방관하는 남편, 얄밉게 해놓은 음식을 쏙쏙 집어가는 가족들은 말 그대로 ‘열 뻗치기 쉬운’ 상황을 만들어 임산부의 과식을 유발한다. 

상한 기분을 풀겠다고 너무 많이 먹어버리면 위가 비정상적으로 팽창, 음식을 제대로 분쇄하지 못하고 소화장애가 일어날 우려가 있다. 튀김, 전류 등 기름기가 많은 명절음식은 소화되는 시간이 길고 위산식도역류를 조장할 수 있다.

명절음식을 치우는 과정도 임산부에겐 고역이다. 설거지 자체는 괜찮지만 임신 초기 높은 선반에 무거운 그릇을 무리하게 올리는 행동 등은 피해야 한다. 임신 5개월이 넘었다면 부른 배가 싱크대에 부딪혀 불편해질 시기다. 배가 무거워지며 몸의 중심이 앞으로 이동해 요통이 생기는데 오래 서 있으면 요통이 악화되고 배 뭉침까지 유발될 수 있다. 임산부 혼자 대가족의 그릇을 치우기엔 역부족이다. 무리하면 조산할 위험이 있기 때문에 주변의 도움을 요청하는 게 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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