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에서 시작된 지카바이러스 공포가 동남아시아로 확산되면서 바이러스 전파 차단 여부에 전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브라질 정부는 임신부들에게 오는 8월 열리는 리우데자네이루 하계 올림픽 방문을 포기하라고 권고하기도 했다. 국내에도 전파될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방역당국이 대책 마련에 나섰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지난 1일 브라질 등 중남미 지역을 중심으로 확산하는 지카바이러스에 대해 국제 보건비상사태(PHEIC)를 선포하고 바이러스 퇴치를 위한 전면전에 돌입했다. 마거릿 찬 WHO 사무총장은 “모기를 통해 전파되는 지카바이러스가 신생아 출산에 소두증 등을 유발하는지 결정적인 증거는 아직 없지만 위협 수준이 매우 심각하다”며 “여행이나 교역에 대한 금지는 필요하지 않지만 국제적인 신속한 공동대응이 요구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역대 최악으로 평가받는 이번 엘니뇨(적도 해수면 온도 상승) 현상과 맞물려 바이러스가 폭발적으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기온이 1도 오르면 모기의 서식 고도는 170m 높아지고 북반구의 경우 번식 가능지역도 북쪽으로 200㎞나 확대된다. 실제로 중남미 여행 경험이 없는 태국과 인도네시아 남성에서 지카바이러스가 발견돼 두려움이 증폭되고 있다.
지카바이러스는 뎅기열을 유발하는 바이러스와 같은 계열로 열대지방에 서식하는 ‘이집트숲모기(Aedes Aegypti)’를 매개로 확산된다. 감염되면 3~7일간의 잠복기를 거친 뒤 발열, 발진, 관절통, 눈 충혈 같은 증상이 며칠 또는 1주일간 계속된다. 하지만 치명적인 합병증을 유발한 경우는 드물고 사망 사례도 보고된 바 없다. 즉 신체 건강한 성인이 감염될 경우 대부분은 ‘감기가 심하게 왔다’거나 ‘요즘 피곤했는지 몸살이 왔네’ 정도로 지나간다.
아직 국내에는 감염 사례가 없다. 최근 2개월 사이에 보고된 지역은 지난 1일 기준으로 가이아나, 과들루프, 과테말라, 도미니카공화국, 마르티니크, 멕시코, 바베이도스, 베네수엘라, 볼리비아, 브라질, 세인트마틴섬, 수리남, 아이티, 에콰도르, 엘살바도르, 온두라스, 콜롬비아, 파나마, 파라과이, 푸에르토리코, 프랑스령 기아나, 미국령 버진아일랜드, 니카라과, 네덜란드령 퀴라소(중남미 지역), 태국(아시아 지역), 카보베르데(아프리카 지역) 등 21개국이다.
이 바이러스는 직·간접적으로 신생아의 소두증을 유발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소두증은 얼굴이 아닌 뇌가 발육부전 탓에 작아지는 병으로 소뇌증(小腦症)이라는 표현이 정확하다는 의견도 있다. 임신부가 지카바이러스 모기에 물리면 바이러스가 엄마피를 통해 태아에게 들어간다. 어느 임신 단계에서 어떤 임신부에게 왜 그런 현상이 나타나는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신경세포를 공격해 호흡부전이나 근육마비가 일어나는 증후군도 유발할 수 있다.
지카바이러스는 백신이 없으므로 모기에 물리지 않는 게 최선의 예방책이다. 모기는 주로 해질녘이나 동틀 무렵에 활동하기 때문에 이 시간대에는 외출을 삼가는 게 좋다. 모기는 낮에도 활동하며 어두운 색깔의 옷을 좋아하기 때문에 흰옷 등 밝은 계통 옷을 입는다. 대체로 벽에 붙어 지내는 데다 비행거리가 짧으므로 벽에서 떨어질수록 모기에 덜 물린다.
김양현 고려대 안암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지카바이러스, 뎅기열, 말라리아 등 모기에 의해 전염되는 질병이 많은 만큼 모기가 많이 모일 수 있는 장소나 밤 시간대에 이동하는 것을 피하는 게 좋다”며 “여행 전 미리 보건소나 여행자클리닉이 개설된 의료기관을 찾아 백신을 접종하거나 예방약을 처방받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정렬 제일병원 한국마더세이프전문상담센터장은 “최근 해당 국가를 방문했거나 여행 2주 이내에 열, 발진, 관절통, 결막염 중 2가지 이상이 발현되거나 태아초음파에서 소두증이나 두개 내 석회화를 진단받은 경우 검사를 받아보는 게 좋다”며 “바이러스 전염지역을 여행하지 않았던 임신부는 검사 대상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태아의 지카바이러스 감염이 의심되는 경우 양수검사로 양수 내에 존재하는 지카바이러스 RNA를 확인함으로써 태아의 감염 여부를 진단할 수 있다. 최근 태아초음파로 소두증을 진단받은 임신부 2명의 경우 혈액에서는 지카바이러스 RNA가 검출되지 않았지만 양수에서는 RNA가 확인됐다.
한 센터장은 “임신하지 않은 여성은 지카바이러스에 감염되더라도 1주일 정도가 지나면 혈액에서 바이러스가 제거되기 때문에 이후 태아 감염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한편 질병관리본부는 2일 ‘상황평가 및 주요 대책 점검회의’를 열고 임신부 보호대책을 논의했다. 정은경 질병관리본부 직무대리는 “지카바이러스를 옮기는 모기로부터 개인을 보호하는 게 중요하다”며 “다만 유행국가로의 여행이나 교역을 제한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질본 긴급상황실 안에 지카바이러스 대책팀을 구성하고 법정감염병 지정에 따른 신고기준을 마련했다”며 “지카바이러스를 어떤 경보단계로 관리할지 위기평가회의를 가질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