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복지부가 의료의 질과 환자의 안전 수준을 높이기 위해 시행 중인 ‘의료기관 인증제도’에 허점이 많다는 지적이 끊이질 않고 있다. 의료 관련 지식이 부족한 환자는 ‘의료기관인증 또는 JCI 재인증 획득’, ‘응급의료평가 최우수 기관’, ‘심평원 적정성 평가 1등급 병원’ 등 정부기관으로부터 인증받은 병원을 선택한다. 하지만 각종 평가에서 최우수 성적을 받아온 병원에서 안전사고가 끊이질 않아 환자들이 불안에 떨고 있다.
인증평가사업을 위탁 수행하는 의료기관평가인증원 인증에 자율적으로 참여한 병원은 100% 인증을 통과했다. 하지만 이 중 80%에서 최근 2년 반 사이 의료사고가 발생해 환자가 분쟁조정을 신청한 것으로 확인됐다.
2011년 도입된 의료기관 인증평가는 상급종합병원, 종합병원, 병원 등을 대상으로 환자안전, 진료의 품질 및 적정성, 의약품 및 감염 관리, 운영 관리 등의 항목을 진단한다. 요양병원과 정신병원은 2013년부터 의무적으로 참여하고 있으며, 상급종합병원·종합병원·치과병원 등은 자율참여 방식으로 운영된다.
인증평가에서 우수한 점수를 받은 병원은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음을 의미하지만 실상은 다르다.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 조사결과 2012∼2015년 7월 동안 자율평가를 거쳐 인증받은 병원 297곳 중 238곳(80.1%)에서 의료사고가 발생했다. 의료사고 관련 분쟁조정 신청이 50건 이상 접수된 병원은 3곳이었고, 의료사고가 57건이나 발생한 상급병원도 있었다.
반면 환자의 조정신청을 받아들인 병원은 45곳에 불과했다. 수차례 조정신청을 받았으나 단 한 차례도 조정에 참여하지 않고 거부한 병원도 72곳에 달했다.
최동익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분쟁조정신청에는 의료기관 인증을 받기 전 신청된 건도 포함될 수 있지만 향후엔 의료사고 발생 건수와 처리 결과 등에 대한 충분한 검토가 의료기관 인증 과정에 반영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한반도를 공포에 떨게 만들었던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확진자와 관련해 감염이 발생한 14개 병원(인증평가 대상이 아닌 의원급 제외) 중 9곳이 보건복지부 인증병원이었다.
의료기관 인증을 자율에 맡기다보니 참여율이 저조한 것도 문제다. 지난해 평가인증을 신청한 1789개 기관 중 인증평가를 의무적으로 받아야 하는 요양병원과 정신병원을 제외하면 자율참여 기관은 305개 기관(14.3%)에 불과했다.
병원들도 의료기관 인증제에 무조건 만족하는 것은 아니다. 한 대학병원 관계자는 “병상수가 많은 상급종합병원의 경우 의료기관 인증을 받는 데 최소 몇 천만원에서 몇 억원까지 소요된다”며 “병원들이 인증에 소요되는 비용을 전액 부담해야 하기 때문에 경영난에 허덕이는 상황에서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인증제에 참여하는 병원들이 늘면서 의료기관평가인증원 수입은 2011년 48억3000만원에서 2014년 89억2000만원으로 두 배 가까이 늘었다. 의료기관평가인증원은 사실상 대한병원협회의 영향권 아래에 있다. 이 재원은 병협의 쌈짓돈이 되고 만다는 게 의료계의 불만이다.
일단 신청만 하면 무조건 인증해주는 허울뿐인 제도라는 주장도 비등하다. 한 병원 관계자는 “자율 신청한 병원들이 100% 인증을 받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며 “수박 겉핥기식의 병원 인증평가가 병원의 행정업무 과다, 국가예산 낭비, 병원 경영난 가중 등을 초래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의료의 질과 환자안전 수준을 끌어올릴 수 있는 더욱 강화된 기준을 마련하고 의료사고 발생률이나 병원감염률 등 다양한 평가지표를 개발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보건의료노조 관계자는 “의료기관평가인증이 환자의 안전과 의료 질 향상, 인력충원으로 연결되도록 하기 위해 인증원을 보건복지부 산하 기구로 전환하고, 실질적인 인력충원을 유도할 수 있도록 인센티브제를 도입할 것을 정부에 요구하고 있다”며 “아울러 환자안전과 의료 질 관련 평가결과를 공개하도록 하고, 편법과 1회성 인증제도의 허점을 개선하기 위해 수시조사·불시조사·현장신고제도 활성화 등의 보완조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인증평가원 관계자는 “인증 기준은 500여개 항목으로 구성돼 있으며 기준 자체는 국제의료질관리학회(ISQUA)가 권고하는 것과 동일하다”며 “2011년 제도가 처음 시행됐고 아직 시작 단계여서 보완할 게 많은 게 사실”이라고 인정했다. 이어 “100% 인증률과 관련해서는 원인을 철저한 조사한 뒤 인증 기준을 강화할 방침”이라고 해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