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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다운 죽음’ 웰다잉법 통과 … 호스피스·장례사업 변화 이끌까
  • 박정환 기자
  • 등록 2016-01-20 11:10:42
  • 수정 2016-01-22 10:5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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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호스피스병상 1000여개 불과, 2.5배 늘려야 … 인력교육사업·추모공원 건립 활성화 예상

전문가들은 호스피스 분야를 활성화하려면 현재 1000여개에 불과한 전용 병상을 2500여개 이상으로 늘려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회복이 불가능한 환자에 연명의료를 중단하는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법률안(웰다잉법)’ 이 지난 8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새 법안은 공포 후 2년간의 유예기간을 거쳐 2018년부터 시행된다. 연명의료를 중단한 의사가 살인방조죄로 처벌됐던 1997년 12월 ‘보라매병원 사건’ 이후 18년 만에 합법적 대안이 마련된 셈이다.

연명의료는 임종을 앞둔 환자에게 시행하는 심폐소생술, 혈액투석, 항암제 투여, 인공호흡기 착용 등으로 의학적 시술로 치료효과 없이 임종 과정의 기간만을 늘린다. 새 법안은 연명의료의 종류를 대통령령으로 정하게 돼 있다.

웰다잉법은 회생 가능성이 없고, 급속도로 증상이 악화돼 사망이 임박한 상태이며, 회복되지 않는 환자를 대상으로 연명의료를 중단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연명의료 중단을 원하는 환자는 말기 및 임종 단계에서 주치의와 함께 연명의료를 받지 않겠다는 내용의 연명의료계획서(POLST)를 작성하면 된다. 당장 건강에 문제가 없는 만 19세 이상 성인도 ‘회복 불가능한 상태가 됐을 때 연명의료 중단을 희망한다’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AD)를 작성해 이를 주치의에게 확인받으면 법적 효과를 인정받을 수 있다.

환자 자신의 연명의료계획서가 없어도 가족과 의료진의 판단 아래 연명의료 중단이 가능하다. 환자 가족 전원이 연명의료를 받지 않겠다는 뜻을 전달하고 의사 2명이 확인한다.

가족이 없는 환자는 의료기관의 내·외부 전문가 5명 이상으로 구성되는 ‘의료기관 윤리위원회’가 만장일치로 결정하면 연명의료를 끊을 수 있다. 윤리위원회는 종교계, 법조계, 윤리학계, 시민단체 등의 추천을 받은 비 의료인 위원을 2명 이상 포함해야 한다.
연명의료를 중단하더라도 환자에게 영양, 수분, 산소 공급은 계속된다. 의사가 중단 대상이 아닌 환자에게 중단 결정을 내렸거나 환자 가족이 거짓진술을 하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웰다잉법 통과로 가장 큰 수혜를 입을 것으로 예상되는 분야는 호스피스다. 한 장기요양병원 관계자는 “웰다잉법은 요양병원을 호스피스완화의료전문기관에 포함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며 “현재 말기암환자 등 호스피스 완화의료가 필요한 환자의 수는 꾸준히 늘고 있지만 이를 수용할 만한 요양시설이나 인력은 턱없이 부족한 상황에서 새 법안 통과로 요양병원 운영이 한결 수월해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최정수 박사팀이 14일 공개한 ‘호스피스 완화의료 활성화 방안’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호스피스 전문 의료기관을 한 번이라도 이용한 말기암 환자는 2008년 5046명(7.3%)에서 2014년 현재 1만559명(13.8%)으로 증가했다. 하지만 이 수치는 영국(95%), 미국(43%) 등 선진국에 비해 낮은 수치다.
현재 전국의 60개 호스피스기관이 보유하고 있는 병상은 1000여개에 불과하며, 이는 전체 말기암 환자의 10~15%만이 이용할 수 있는 수준이다. 호스피스 활성화를 위해선 최소 2500병상까지는 늘려야 한다는 게 의학계의 중론이다.

김요은 한국병원경영연구원 연구위원은 ‘국내 호스피스 완화의료제도 문제점과 개선 방안’을 통해 “호스피스완화의료서비스의 적정 공급을 유도하기 위해서는 현재 의료기관 당 5000만원 수준에 머물러있는 지원금을 증액하고, 신규 진입 의료기관이 갖춰야 하는 장비·시설·인력에 대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윤영호 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최근 들어 웰다잉에 대한 인식이 증가하면서 호스피스 및 연명의료 결정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된 것으로 본다”며 “매년 27만명의 환자가 병실에서 죽음을 맞고 130만명의 환자 가족이 고통받고 있는 현 상황을 타개하려면 암 이외의 다른 질환으로 호스피스 지원을 확대하고, 사전연명의료의향서와 연명의료계획서를 제도화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또다른 대학병원 교수는 “그동안 무의미한 연명치료가 계속되면서 말기암 환자가 병원에서 죽음을 맞는 일이 잦았고, 수익난에 시달리던 병원들은 장례식장 운영 등에 치중하는 모순적인 행태가 계속돼 왔다”며 “병원은 환자가 생을 마감하는 장소가 아닌 치료를 받고 회복하는 장소가 돼야 하며, 요양병원 등 호스피스완화의료기관이 환자가 편안하게 생을 마감하는 안식처의 역학을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호스피스 외에도 민간 장례사업, 추모공원 건립사업, 호스피스 인력 교육사업 분야가 웰다잉법의 수혜를 입을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종교계와 장애인단체 등에서는 연명의료 중단이 장애인·노숙자·빈민 등 사회적 취약층에 집중될 수 있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사회적 기반이 튼튼하게 마련되지 않으면 이른바 ‘죽음의 계급화’가 발생한다는 주장이다
이같은 점을 감안해 연명치료중단제도화특별위원회는 2013년 권고안을 통해 호스피스완화치료제도 확립, 시설 확충, 임종 과정 환자에 대한 경제적 지원 등을 선결조건으로 제시한 바 있다.

한국장애학회는 “이번 연명의료결정법에는 임종과정 환자에 대한 경제적 지원 조항은 빠져있다”며 “법안과 함께 제출된 비용추계서에도 호스피스완화의료 전문기관 지정 등에 대한 예산이 단 한 푼도 책정돼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상속이나 치료비 부담 등 경제적 이유로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는 “가족이 입원료가 비싼 중환자실에 한 달 이상 입원해 있다면 경제적 부담 탓에 이기적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다”며 “유산이나 치료비 등 경제적인 이유만으로 환자의 의사는 배제한 채 가족들끼리 연명치료 중단을 합의하는 사례가 지금도 비일비재하다”고 말했다. 이어 “환자 본인과 의사가 직접 연명의료 계획서를 작성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제3의 공식기관에서 이를 심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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