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인류는 먹을 게 부족하다보니 움직이는 동물은 모두 먹었다. 정착생활이 시작되면서 토끼·사슴·노루·말 등 야생에서 주로 활동하는 동물들에 대한 식용은 점차 줄었다. 하지만 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등 뻔한 외식메뉴를 지겨워하는 사람들이 최근 이런 류의 등 색다른 고기를 찾아먹으면서 ‘미각의 권태’에서 벗어나보려 애쓴다.
토끼는 8개월 전후의 것을 식용으로 한다. 토끼고기로 쓰이는 집토끼는 기원전 750년경 유럽 남부지방에서 굴토끼를 가축화한 것이다. 로마인에 의해 중세시대 말엽부터 유럽 전역으로 퍼졌다. 국내에는 삼국시대부터 기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토끼고기는 미오글로빈(myoglobin, 근세포 속 헤모글로빈과 비슷한 헴단백질로 근육을 붉게 염색하는 물질) 함량이 소의 25분의 1에 불과해 닭고기와 비슷한 담홍색을 띤다. 단백질이 풍부하고 지방이 적어 담백하다. 닭의 지방이나 껍질과 섞어 조리하면 닭고기의 맛이 난다. 식감이 좋지 않지만 결착력과 보수성(保水性)이 좋아 소시지 등 식육 가공 결착육으로 쓰인다. 국내에서 사육되는 품종은 벨기언 헤어(Belgian Hare)로 조숙 다산성이며 체중이 4㎏ 가량 나간다.
북한에서는 여름철 복날 삼계탕 대신 토끼고기를 즐긴다. 토끼고기 안에 밤, 대추, 검은콩, 황기 등을 넣고 삶는 ‘토끼곰’을 먹는다. 1970년대 북한의 이른바 ‘꼬마 계획’ 이후 대중화된 보양식이다. 꼬마계획은 사회주의 국가건설 번영에 기여한다는 명목으로 어린이에게 폐철, 토끼가죽 등을 강요하는 외화벌이용 체제 운동이다. 북한 주민들은 매년 정해진 양의 토끼가죽을 바치기 위해 토끼를 길렀다. 토끼는 크게 신경쓰지 않아도 잘 자라고, 사육 비용도 저렴하다. 부위별로 조리해 먹는 한국과 달리 북한에서는 토끼를 통째로 삶는다. 고기를 발라 먹은 뒤에도 뼈를 우려내 사골 국물처럼 먹는다.
지난해 10월 중국 국가 주석 자격으로 10년 만에 영국을 방문한 시진핑(習近平)은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으로부터 사슴고기와 영국산 와인을 저녁식사로 대접받았다. 예부터 사슴은 동서양 가리지 않고 사냥감으로 선호됐다. 구석기시대부터 식용됐다. 사슴고기는 베니즌(venison)으로도 불린다. 미오글로빈 함량이 높아 육색이 붉으며, 지방이 적어 모든 부위가 살코기다. 사슴고기를 지나치게 익히면 퍽퍽해진다. 끓는 물에 반만 익혀 다시 구워야 사슴고기 맛을 살릴 수 있다.
사슴고기는 정력을 강화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오장(간·심장·비장·폐·심장) 기능을 강화하고 허약한 체질을 정상으로 돌리는 데 효과적이다. 모유가 분비되지 제대로 나오지 않는 수유부들이 사슴고기를 먹으면 모유 분비가 촉진되고 영양흡수를 촉진한다. 중국 맹선(孟詵)이 편찬한 의서 ‘식료본초’(食療本草)에 따르면 ‘사슴고기는 9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 먹는 게 좋으며 다른 시기에는 냉통(冷痛)에 걸리기 쉽다’고 적혀져 있다.
조선시대 식탐이 많은 임금 중 하나였던 연산군은 노루고기를 즐겼다. 반정으로 연산군 뒤를 이은 중종과 그의 아들인 명종도 노루고기를 좋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동의보감에서는 ‘노루고기는 성질이 따뜻하고 맛은 달며 독이 없다. 허약(虛弱)하면서 야윈 것을 보(補)하고 오장(五臟)을 튼실하게 하며 기력(氣力)을 더해주고 혈맥(血脈)을 조화롭게 해준다’고 적혀져 있다.
노루고기는 들짐승 중 가장 맛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주로 육포로 조리됐으며 봄과 여름에 잡히는 것을 으뜸으로 쳤다. 일본에서도 노루육포를 사이보시(さいぼし)로 부르며 육포 중 최상품으로 친다. 노루뼈로 곰국을 끓이면 진액이 소뼈보다 진하게 우러나온다. 과거 노루고기로 만든 전골은 한겨울철 보양식으로 인기가 좋았다.
노루는 한반도 전역의 산림지대에서 주로 서식한다. 다른 동물과 달리 음지에서 주로 활동한다. 이는 겨울철 노루 피하에서 자란 유충이 양지 바른 곳에서 활발히 움직여 노루가 가려움을 견디지 못하고 음지로 다시 돌아가기 때문이다. 과거 노루는 활발히 사냥됐지만 한동안 포획이 전면 금지됐다. 2013년 제주도 의회가 노루로 인해 농작물 피해를 본 농민에 한해 포획 허가를 내주면서 2016년 6월 30일까지 올무·총기를 사용한 노루 사냥 규제가 일부 풀리기도 했지만 상업적 유통은 허용되지 않고 있다.
1227년 한반도를 휩쓸었던 몽골인들은 제주도에 전투용 말을 대량 사육하기 시작했다. 이 시기부터 국내에선 말고기를 본격적으로 먹었다. 당시 제주도인은 약 3만명이었으며 말은 이와 맞먹는 2만~3만필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과거에는 늙은 말을 식용해 오늘날 먹는 것보다 육질이 질기고 지방도 적었다. 따라서 육포로 주로 만들어 먹었다. 옛 문헌에서는 제주 조랑말로 만든 ‘마건포’가 매년 섣달 임금에게 올리는 진상품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1401년 조선 왕실은 말고기 육포를 진상품으로 올리지 말라는 금지령을 내렸다. 이는 말고기가 보양식으로 좋다는 소문이 돌면서 권세가들이 즐겨 먹어 군마로 사용할 말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중세시대 초기 교황의 칙령으로 서양에서 말고기 식용이 금지되고, 아시아에서도 전쟁의 승패를 가르는 전략물자를 먹는 게 혐오스러운 일로 치부되면서 말고기를 먹지 않았다. 하지만 프랑스 대혁명 이후 서양에서 말고기 요리가 선보이면서 큰 인기를 얻었다. 대부분 유럽 국가에서는 말고기를 소고기보다 상급육으로 대접한다. 동의보감에는 ‘말고기는 신경통, 관절염, 빈혈 등 치료에 좋으며 귀울림을 완화하는 데 효험이 있다’고 적혀져 있다. 말고기는 천고마비의 계절 가을에 먹는 게 가장 좋다. 말은 채식성 동물로 소보다 부드러운 육질과 풍부한 영양소를 함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