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진나라 31대 왕이자 중국 최초 황제인 진시황은 불로장생(不老長生, 영원히 늙지 않고 오래 삶)을 쫓았다. 몸에 좋은 것만 먹었던 그는 약 50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현재 평균 수명과 비교하면 이른 나이지만 당시 평균 수명이 40세 전후에 불과했던 것을 고려할때 장수한 축에 속한다.
장수에 대한 진시황의 관심이 지대하자 신하들은 왕의 눈에 들기 위해 중국 전역으로 불로초를 찾아 다녔다. 이중 진시황의 가장 큰 총애를 받았던 서복은 바다 건너 제주도까지 건너왔다. 그는 제주도에서 ‘황칠’(黃漆)을 구해 진시황에게 진상했다. 과거 진시황이 황칠을 먹었다는 사실이 중국에 알려지면서 제주도를 방문한 중국 관광객에게 황칠은 인기 특산물로 사랑받고 있다.
황칠은 산형화목 두릅나무과에 속하는 난대성 상록교목(常綠喬木)으로 한반도 남해안 일부와 제주도에서 주로 자생한다. 키는 15m 가량 자라며 입은 표면에 털이 없고 매끈하다. 열매는 타원형으로 검은색을 띤다. 개화기는 6~8월으로 결실기는 10월이다. 15년 이상 자라야 약효가 발휘돼 대량생산이 어려운 게 특징이다.
황칠나무의 학명은 ‘나무인삼’이란 뜻의 ‘Dendropanax morbifera’다. 황칠이란 이름은 황칠나무 껍질에 상처를 내면 노란색의 액체가 옻나무의 옻칠처럼 나온다고 해 붙여졌다. 이같은 이유로 일부에서는 황칠나무를 노란옻나무로 부르기도 한다. 잎이 마치 오리발을 닮았다고 압각목 또는 압장시라고도 칭한다. 황금색 닭발을 의미하는 금계지(金鷄趾)라고도 한다.
중국의 역사가들은 황칠을 한반도 서·남해안에서만 나는 ‘신비의 도료’라고 적고 있다. 중국 ‘영파사지(英坡寺誌)’, ‘책부원구(冊府元龜)’ 등 각종 역사책에는 진시황이 ‘불로초’라 믿으며 해동국에서 가져온 나무가 황칠이라고 기록돼 있다. 황칠액은 통일신라 해상왕 장보고의 교역상품 중 최상품이었다.
황칠은 본래 기물에 금색을 씌우기 위해 이용됐다. 갑옷, 무기, 책상, 비녀 등에 이르기까지 황칠을 발랐다. 선비들은 황칠을 지니고 있으면 대망을 이룰 수 있다고 믿어 행랑주머니에 지니고 다녔다.
황칠나무 수액은 한그루 당 한 컵 가량 밖에 나오지 않는다. 과거 농민들은 농번기에 조공으로 바치기 위해 나무를 자르고 수액을 내느라 어려움을 겪었다. 이에 일부에서는 나무를 베어버리는 등 인위적으로 황칠나무 제거에 나섰다. 게다가 15년 이상 나무가 자라야 상품성 있는 황칠을 채취할 수 있는 조건 때문에 황칠은 사람들 사이에서 잊혀져 갔다. 지역 주민들은 황칠나무를 제대로 몰라 땔감이나 부목용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최근 들어 황칠의 효능이 밝혀지고 재배가 가능해지면서 점차 대중화되고 있다.
한규황 고려황칠 대표는 “과거 황칠나무는 내관들에 의해 궁중비전으로 전수되며 왕실의 건강식품으로 쓰였다”며 “중국에 과도하게 조공되며 개체 수가 줄었고 최근 20년간 노력으로 황칠나무 복원에 성공하면서 약성에 대한 소문이 퍼지고 있다”고 말했다.
황칠은 우려낸 물을 차나 요리에 사용하거나 분말 형태로 갈아 다른 약재와 혼합하여 복용할 수 있다. 귀하기로 소문난 황칠 진액은 단 한 방울만으로도 그 효과가 매우 강하고 빠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국 명나라 이시진이 지은 ‘본초강목’에서는 황칠의 안식향은 심신을 편하게 하고 각종 역기를 억제시키며 남성에게는 신장 강화, 여성에게는 생리불순 치료 등에 효과적이다고 적어놨다.
황칠에 함유된 폴리아세틸렌은 면역세포의 생육을 촉진시켜 각종 질병 및 질환을 야기하는 원인에 대항한다. 조기 면역체계 및 생체방어체계를 강화시킨다. 황칠나무는 따뜻한 성질을 지녀 몸이 차고 소화기능이 약한 사람에게 도움이 된다. 반면 열이 많은 체질이거나 임산부는 섭취에 주의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