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음주 문화에 관대한 한국인은 경조사를 가리지 않고 술을 들이킨다. 특히 매년 이맘때가 되면 연이은 송년회 탓에 간이 쉴 틈이 없다. 1주일에 2~3회씩 술자리를 갖다보면 하루종일 속이 더부룩하고 숙취도 점점 심해진다.
적당량의 알코올 섭취는 긴장감을 해소시키고 기분을 호전시킨다. 식욕을 북돋아 주고 피로감을 없애며 자신감을 가져다주기도 한다. 하지만 과도한 음주는 암, 심혈관질환, 당뇨병 등 각종 만성질환의 발병 위험을 높인다. 강희택 연세대 강남세브란스병원 가정의학과 교수팀의 연구결과 국내 남성 4명 중 1명은 고위험 음주군이며, 이들은 정상인보다 당뇨병 발병률이 1.5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술을 1급 발암물질로 지정하고 많이 마실수록 암 발생 위험이 높아진다고 경고했다. 국제암연구소(IARC)도 술의 주성분인 ‘알코올’과 부산물인 ‘아세트알데히드’를 1급 발암물질로 지정했다.
술의 주성분인 알코올의 10~20%는 위, 나머지 대부분은 소장에서 흡수된다. 흡수된 알코올은 간으로 운반되고 이후 간은 유해물질인 알코올을 분해된다. 이 과정에서 아세트알데히드라는 대사산물이 생긴다. 아세트알데히드는 간에 손상을 입힐 뿐만 아니라 숙취를 유발한다. 또 DNA 복제를 방해하거나 직접 파괴하고, 이 과정에서 생긴 돌연변이 세포의 일부는 죽지 않고 끊임없이 분열해 암세포로 변한다. 김미나 차의과학대 강남차병원 소화기내과 교수는 “사람마다 알코올분해능력에 차이가 있으므로 주량이 다르고 숙취 정도의 차이를 보인다”며 “술 마시는 횟수가 늘어나는 연말에는 특히 과음은 금물”라이고 말했다.
술과 암 발병률과의 상관관계는 이미 많은 실험을 통해 입증돼왔다. 실제 하루에 50g(대략 주종별 보통 잔으로 5잔) 정도의 알코올 섭취를 하는 사람이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보다 암 발생의 위험이 2~3배까지 증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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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은 과음으로 인한 피해를 가장 직접적으로 입는 신체 부위다. 실제로 술을 자주 마시는 한국인은 간암의 발생률과 사망률이 꽤 높은 편이다. 2013년 12월 WHO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국내 성별 간암 발생률의 경우 남성은 10만명당 36.7명, 여성에서 10만명당 10.5명으로 세계 6위를 기록했다.
간의 처리능력 이상의 술을 지속적으로 마시면 알코올성 지방간, 알코올성 간염이 생기고 심하면 간경변증으로 발전하기도 한다. 김미나 교수는 “알코올성 지방간이나 간염은 초기에는 아무런 증상이 없거나 피로감, 소화불량, 오른쪽 윗배의 불편감 등 경미한 증상에 그칠 때가 많다”며 “이로 인해 대부분 간이 나빠지는 지도 모르고 과음을 지속하다가 간경변증으로 악화되면 회복이 매우 어려워진다”고 설명했다.
과음으로 인한 알코올성 간염의 경우 황달, 신장기능 저하 등 단기 증상이 동반된다. 간 염증이 비가역적으로 진행되고 섬유화돼 간기능 손상, 출혈, 혼수, 간암 등 심각한 합병증이 동반되는 질환을 알코올성 간경변증이라고 한다.
또 위염이나 위궤양이 발생하거나 많은 양의 술을 마신 후 토할 때 위와 식도 사이의 점막이 찢어지면서 많은 양의 피를 토할 수 있다.
이자로도 불리는 췌장은 음식을 소화시키는 소화효소를 생성하고 분비시키며 혈액 내 혈당을 조절하는 인슐린과 혈당을 조절하는 글루카곤 등을 생성한다. 술을 과하게 마시면 췌장염을 일으킬 수 있다. 심한 복통, 오심, 구토 등의 증상이 동반되고 누우면 복통이 더 심해져 배를 움켜지고 새우처럼 구부리고 있게 된다.
급성 췌장염은 술이나 담석 등 원인이 사라지면 저절로 좋아지기도 한다. 금식과 충분한 수액을 공급해 통증을 조절하면 호전을 기대할 수 있다. 췌장조직이 썩는 괴사로 진행되면 췌장에 가성낭종 등 후유증은 물론 중요 장기의 기능부전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특히 중증 급성췌장염은 사망률이 10~15%에 달하는 위험한 질환으로, 합병증으로 이어지기 전 적절한 치료를 받아야 한다.
과음은 또 대장세포를 손상시켜 대장암을 일으킨다. 대한대장항문학회에 따르면 맥주를 한 달에 15ℓ 이상(하루에 알코올 30g 이상, 주종별 보통잔으로 3잔) 계속 마시는 사람은 대장암에 많이 걸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술을 마셨을 때 얼굴이 빨개지는 등 알코올 분해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은 대장암 발병 위험이 6배 가량 높다.
유방암과도 깊게 연관된다. 음주가 유방암의 위험인자인 여성호르몬 에스트로겐의 농도를 증가시키기 때문이다. 매일 맥주 한 잔을 마실 경우 유방암의 위험률이 3~4% 정도 높아지므로 매일 가볍게 술을 마시는 여성은 주의해야 한다.
음주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하려면 술을 마시기 전 간단한 식사를 하는 게 좋다. 빈 속에 술을 마시면 알코올이 바로 흡수돼 혈중 알코올 농도가 빨리 올라간다. 김미나 교수는 “치즈, 두부, 고기, 생선 등의 고단백질 음식과 술을 함께 섭취하면 간세포의 재생력이 높아지고 알코올대사 효소가 활성화되며, 비타민을 보충하는 효과를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어떤 술을 마시느냐도 중요하다. 술 종류에 따라 알코올의 흡수속도가 다르다. 위스키 등 증류주가 맥주 같은 발효주에 비해 흡수 속도가 빠르다. 똑같은 농도를 마시더라도 도수가 약한 술이 독한 술 보다 덜 해롭다. 탄산음료 및 이온음료와 섞거나 폭탄주를 자주 마실 경우 흡수 속도가 증가해 술이 빨리 취하게 된다.
숙취를 해소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수분 섭취다. 김 교수는 “수분은 알코올 대사 과정에서 생기는 탈수 증상을 개선해준다”며 “보리차나 생수만으로 충분하며 당분이 들어 있는 꿀물은 과음으로 인해 떨어진 혈당을 높이는 데 도움된다”고 조언했다.
당분과 비타민이 풍부한 과일도 숙취 해소에 효과적이다. 시판 중인 여러 숙취해소음료는 알코올대사에 간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영양 성분을 첨가된 것으로 특별한 작용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전통적인 숙취 해소 음식으로 알려진 콩나물국을 먹거나 종합비타민제를 복용하는 게 도움된다. 콩나물 뿌리엔 알코올 대사과정을 촉진하는 아스파라긴산이 풍부하게 함유돼 있고 비타민은 과음으로 인해 가라앉은 인체대사를 촉진시킨다.
남성들이 술을 깨기 위해 찾는 사우나는 체내의 수분과 전해질을 감소시켜 탈수 증상을 악화시키므로 가벼운 목욕만 하는 게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