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임모(30·여)씨는 지난 설 연휴 엄마의 달라진 모습에 놀랐다. 늘 상냥하던 엄마가 예민하고 감정기복이 심했다. 난방을 해도 추운 날에도 계속 ‘얼굴에 열이 심하게 오른다’며 반소매 티셔츠를 찾기도 했다. ‘엄마에게도 드디어 갱년기가 왔구나’라고 생각한 임씨는 엄마가 점점 더 갱년기 증상에 시달리자 고민스러웠다. 갱년기는 누구나 거쳐가는 인생의 단계라고 생각했지만 최근 갱년기 증상도 치료로 호전된다는 직장동료의 이야기를 들은 임씨는 이번 추석에 엄마에게 갱년기 검진을 선물할 생각이다.
한 설문조사 결과 국내 중년여성 중 70% 이상이 갱년기증상을 겪으며, 그 중 20% 정도는 ‘정도가 심하다’고 답했다. 갱년기 증상은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레 겪을 수밖에 없는 인생의 한 단계로 주로 40~50대 중후반에 시작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신용덕 호산여성병원 원장은 “여성은 중년을 지나며 폐경기를 맞아 난소나 자궁의 기능이 전반적으로 약해진다”며 “안면홍조·발한 등 혈관운동증상, 비뇨생식기계 위축, 성기능장애 등 사람에 따라 다양한 갱년기 증상이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명절을 맞아 예전과 달라진 엄마를 보고 ‘건강은 괜찮느냐’는 자녀의 말에 ‘자신은 건강하다’거나, 문제가 있어도 내색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실제로 대한폐경학회 올해 시행한 설문조사 결과 국내 40~60대 여성의 상당수는 ‘안면홍조, 야간발한 등 폐경증상을 치료가 필요한 질환’으로 인식하면서도, 10명중 7명은 치료를 위해 산부인과를 찾지 않는 것으로 조사됐다.
여성 대부분은 병원을 방문하는 대신 운동과 식이요법만으로도 폐경 증상을 완화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폐경치료의 필요성에 대한 인지가 실제행동에까지 영향을 미치지는 못하는 셈이다.
갱년기를 겪는 여성은 정서 및 신체 변화를 겪게 된다. 정서가 불안해지고 마음이 자주 변하는 양상을 보인다. 우울한 기분이 들었다가, 다시 기분이 좋아지거나, 피곤이 밀려오고 짜증을 내는 등 마음변화가 크게 일어나 자녀들도 옛날과 달라진 엄마의 모습에 놀랄 수 있다.
이뿐만 아니라 의욕상실, 신경과민, 긴장, 자신감 상실 등이 동반되기도 한다. 노화로 인한 당연한 증상이라고는 하지만 갑작스레 여성성을 상실했다는 마음에 ‘갱년기우울증’으로 이어질 우려도 있어 주변에서 신경 쓸 필요가 있다.
신체 변화도 겪게 된다. 신용덕 원장은 “이유 없이 얼굴이 확 달아오르거나 빨개지는 ‘안면홍조’가 유발된다”며 “난소 기능이 떨어지면서 에스트로겐 등 여성호르몬 생성이 줄고 월경이 멈추는 폐경을 맞는다”고 말했다.
이어 “이때 호르몬 분비가 줄어들면 뼈가 약해지고 구멍이 뚫리는 골다공증이 발병할 확률이 높아진다”며 “이와 함께 근육량이 급격히 줄면서 기초대사량이 떨어지고 뱃살이 늘어나기 쉽다”고 덧붙였다. 모두 급격한 호르몬 분비감소로 나타나게 되는 자연스러운 증상이다.
하지만 이들 증상은 무조건 참고 견뎌내야만 하는 게 아니다. 의사와 충분히 상담한 뒤 검진 결과를 바탕으로 적절한 약물치료를 시행하면 갱년기 증상을 완화해 활기찬 중년을 보낼 수 있다. 40~50대에 접어든 여성이 ‘갱년기 검진’을 고려해봐야 할 이유다.
갱년기 검진은 콜레스테롤 및 난소암 검사를 시행하는 혈액검사, 골밀도검사, 자궁암·유방암 체크 특수촬영 등을 시행한다. 이미 갱년기 증상이 나타난 이후라면 확실한 검사 결과를 위해 배란 유무 및 기초체온검사 등 다양한 검사를 활용하기도 한다. 평소 이유 없이 우울함이 밀려온다거나 전에 없이 몸이 화끈거리고 더운 증상이 지속되면 갱년기를 짐작하고 검진에 나설 필요가 있다.
신 원장은 “갱년기 검진을 활용하면 증상을 완화하는 것은 물론 다양한 여성질환을 예방할 수 있다”며 “무조건 피하기보다 정기적으로 시행하는 게 건강을 지키는 지름길”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무엇보다 여성암 등은 조기에 발견하면 치료가 용이하므로 일정 주기를 두고 검진에 나설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피할 수 없는 갱년기를 즐겁게 보내려면 마음의 준비를 하고 대비하는 게 최선이다. 엄마가 행복해야 가정도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