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사들이 2007년 실손의료보험을 만든 이후 2014년말 기준 3000만명이 가입했다. 보험사들은 의료계가 과잉진료를 해 보험료가 계속 상승하고 있다고 지적하지만 들여다보면 실상 과잉진료를 조장해온 것은 보험사란 시각이 지배적이다. 또 필요성이 높지만 급여가 인정되지 않아 국민들의 부담을 덜어주지 못하는 의료분야도 찾아보면 부지기수다. 필수적인 의료서비스가 비급여진료로 남으면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환자는 생각지도 못한 치료비를 부담해야 한다.
환자가 아파 병원에 가면 실손보험이 있는지 물어보는 경우가 많다. 특히 정형외과 중심병원일수록 이런 경향이 심한데 근골격계질환에는 근육 전문 저출력레이저치료나 초음파치료, 충격파치료를 권한다. 내과에서도 대부분 큰 이상이 없는 데도 링거액이나 비타민 및 아미노산 등 주사제를 맞길 권유한다. 환자들은 고가의 치료를 부담없이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마다할 이유가 없다. 보험사는 어차피 실손보험을 갱신형으로 만들어 보험료를 인상해 지출이 늘어난 만큼을 메우면 그만이다.
감사원은 국내 의료서비스 전반에 걸친 관리실태를 집중적으로 조사, 지난 4월 ‘의료서비스 관리실태’를 발표했다. 감사원은 보건복지부의 비급여 진료항목 관리가 소홀했다고 지적하면서 실손의료보험이 환자가 내야 하는 진료비가 과도하게 징수되는 등의 부작용을 양산하고 있다며 대책 마련을 요구했다.
정부의 보장성 강화 정책에 따라 2018년까지 24조원의 보험재정이 투입된다. 그 반사이익은 보험회사로 돌아간다. 보장성이 높아질수록 보험사는 그에 해당하는 만큼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아도 되므로 이익이 커지게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 건강보험 보장률은 62% 수준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80%대에 크게 못 미친다. 현재 건보 재정은 2011년 1조6000억원의 흑자를 기록한 이후 지난해까지 누적흑자금액이 12조8000억원을 기록했다. 올해가 지나면 이 규모는 18조원으로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오신환 국회 정무위원회 새누리당 의원은 지난 19일 실손보험이 보상하는 비급여 진료비에 대한 전문심사기구를 설립하고, 금융감독원·보험업계·의료계·공익대표 등 이해관계자가 참여하는 ‘실손의료보험정책조정협의회’를 통해 실손의료보험 관련 정책을 협의하도록 하는 내용의 ‘보험업법 일부 개정 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오신환 의원은 “국민건강보험의 요양급여 대상인 진료행위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적정성 등을 심사해 의료기관이 이를 적정하게 유지하도록 견제하지만, 실손의료보험의 대상인 비급여 진료행위에 대해서는 적정성을 심사·판단하는 체계가 없이 각 보험회사가 자체 심사하고 있다”며 “자동차손해배상 보장법에서 과잉 진료비 남발 등을 억제하기 위해 자동차보험진료수가의 심사·조정업무 등을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전문심사기관(현재 심평원)에서 심사하도록 규정한 것처럼 실손의료보험도 비급여 의료비의 적정성을 전문성을 갖춘 심사기관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하려는 것”이라고 법안 발의 배경을 밝혔다.
이전에도 실손보험 보상 의료비 심사를 심평원에 위탁하는 법적 근거 마련을 위한 입법 시도가 있었다. 2014년 6월 김춘진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실손보험 보상 진료비 심사의 심평원 위탁을 골자로 한 법안 발의를 검토하며 관련 토론회까지 주최해 여론을 수렴했다. 당시 대한의사협회·대한병원협회 등 의료단체는 물론 한국소비자원 등 시민사회계, 정치권 등에서도 반대 의견을 강하게 피력했다.
의사협회는 “실손보험사가 이득이 줄자 위탁심사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라며 “실손보험은 광고비·설계수당·판매관리비 등에 많은 지출을 해 실제 지급률은 40%에 불과한 상황에서 실손보험사의 이득이 줄고 있으니 더 많은 이득을 주는 방안을 마련하자는 것은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의협 측은 “건강보험 진료비에 대한 삭감률이 매우 높은 상황에서 실손보험 진료비까지 심평원에서 심사하게 되면 삭감률은 더욱 높아질 것이고, 삭감이 두려운 의사들은 소신 진료를 할 수 없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병원협회는 “민간보험회사는 실손보험사업 이전 단계에서 이미 건강보험체계의 실상을 충분히 인지했으면서도 이윤을 창출하기 위해 무리하게 사업을 전개했다”며 “손해를 감수하면서도 지속해서 가입자를 늘린 후 커진 가입자 규모를 근거로 공적 영역이라는 주장을 전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병협은 “민간보험사가 이윤창출을 위해 공공기관을 활용하거나 공적 보험체계를 위협하며 의사의 진료권과 국민의 의료선택권을 제한하고, 보험가입자와 의료계 간 갈등을 조장하는 어떤 시도도 계속돼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한국소비자원은 “실손보험까지 심사하게 된다면 결국 비급여 진료비의 삭감이나 규격화로 소비자 선택이 저하되고, 진료의 질이 저하될 가능성이 있다”며 우려했다.
금융당국은 실손의료보험료 산정 시 적용하는 위험률 조정한도를 2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정비한다. 현재 ±25%인 한도를 내년에는 ±30%, 2017년 ±35%로 완화한 뒤 2018년부터 자율화한다. 이에 따라 내년 보험료는 올해보다 최대 30%, 2017년에는 전년 대비 최대 35% 오를 수 있다.
서울 강남구의 한 정형외과 원장은 “대학병원 등에서 보험급여를 받지 못하는 치료법을 실손보험으로 어느 정도 보장받아 더 나은 진료를 받고 있는 게 현실”이라며 “이는 의학의 발달로 이어지기 마련인데 이를 막는 게 나은 선택은 아니라고 본다”고 말했다.
서울 강북구의 한 내과 원장은 “실손보험을 통해서 의사들이 큰 돈을 벌고 있는 것으로 비쳐지지만 실제 세금을 떼고 나면 남는 것도 없다”며 “국회가 나서서 보험사를 도와줄 게 아니라 국민을 위한 법안을 마련하는 게 옳은 일일 것”이라고 밝혔다.
전직 보험업계 종사자는 “실손보험의 갱신주기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보험사는 사업 초기 연도에는 손실을 입더라도 장기적으로 보면 보험료 인상을 통해 손해 본 것 이상으로 수익을 되가져갈 수 있는 구조”라며 “20년 뒤에도 지금처럼 보장을 받으려면 보험료 인상분을 감수하는데 그치지 않고 더 보장성이 나은 다른 상품으로 갈아타야 하는 게 실손보험의 허점”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