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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스포츠 우수 성적 만드는 숨은 조력자 … 비수술적 재활치료로 국가대표 관리
  • 정희원 기자
  • 등록 2015-11-11 09:42:41
  • 수정 2021-06-13 19:2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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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영무 솔병원 원장 … 스포츠의학 대중화 노력, 치료·예방·재활이 동시에 이뤄져야

나영무 솔병원 원장“선생님, 발이 아픈 것 같아요.” 피겨여왕 김연아 선수의 연락에 나영무 솔병원 원장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소치올림픽을 몇 달 앞둔 중요한 시기였다. 진단해보니 하이힐이 문제였다. 올림픽 출전을 홍보하느라 장시간 하이힐을 신은 게 화근이었다. 병원 전체에 비상이 걸렸다. 자칫 시합에 무리가 갈까봐 집중적으로 치료해야 했다. 꾸준히 재활치료를 받은 결과 김연아는 대회에 출전해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었다.

운동선수의 컨디션이야말로 시합의 결과를 좌우하는 핵심이다. 나영무 병원장은 1995년부터 스포츠선수들의 컨디션을 돌봐 최상의 결과를 이끌어내도록 도운 숨은 공신이다. 축구, 빙상, 골프, 야구, 체조 등 다양한 종목에서 엘리트 선수들의 주치의로 활동하고 있다.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선수들은 대개 나 원장과 인연을 맺고 있다. 그는 “아파도 뛸 수 있지만 아프지 않으면 훨씬 더 잘 뛸 수 있다”고 강조한다.

나 원장이 스포츠의학을 대중화시켜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1994년 무렵이다. 당시엔 재활의학·스포츠의학의 개념이 제대로 자리잡지 못한 상황이었다. 운동에 관심이 있는 그였기에 대중화에 나설 엄두라도 낼 수 있었다.

나 원장은 여러 종목의 스포츠를 즐기는 운동 마니아다. 당시 체력을 키우기 위해 합기도를 다니다가 연습 중 엉덩이근육이 찢어지는 부상을 입고 몇 년간 고생했다. 그는 당시 대체 무슨 병이길래 오랫동안 자신을 괴롭히는지 갑갑해 했다. 스포츠를 잘못하다간 오히려 몸을 망치겠구나하고 깨닫게 됐다. 이 무렵부터 스포츠재활에 집중했다. 팀닥터로 나선 이후엔 부상을 당해도 참고 뛰다 선수생명을 잃는 많은 선수들을 보고 스포츠재활에 매진키로 결심을 굳혔다.

스포츠선수들과의 첫 인연은 야구 종목에서 맺어졌다. 연세대 강남세브란스병원 재활의학과 조교수로 근무하던 1995년엔 병원이 LG트윈스와 협력 관계에 있었다. 팀닥터로 활동하며 자연스레 엘리트 선수들과 마주할 기회가 늘었다.

1996년엔 축구 국가대표팀에 합류해 2002년 한일월드컵을 비롯한 각종 국가대항 A매치에 100회 이상 출전해왔다. 청소년대표·올림픽대표·성인대표팀을 두루 거치며 15년간 대한축구협회로부터 비행기 티켓만 제공받고 무보수로 의료 자원봉사에 나섰다.

나영무 원장은 ‘팀닥터도 운동을 안 할 수는 없더라’고 회상했다. 그는 1999년 나이지리아 청소년선수권대회에 주치의로 나섰다 김은중 선수가 넘어진 직후 그라운드로 뛰어가다 발목이 접질리는 경험을 했다. 당시 인대가 찢어져 꽤 오래 고생했다.

주치의는 경기가 이어지는 동안 스코어는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가장 중요한 것은 선수들의 움직임이다. 가장 신속한 치료와 대응을 위해선 늘 달릴 자세가 돼 있어야 한다. 그는 “다행스럽게도 중학교 시절 잠시 육상선수를 했다”며 “100m 기록이 12초 정도였다”고 웃었다.

나영무 솔병원 원장(왼쪽)이 축구 국가대표 경기에서 부상 선수가 발생하자 경기장 안으로 뛰어가고 있다.나 원장은 “급박하고 치열한 그라운드에서 우리팀 선수가 쓰러졌을 때 심판이 닥터를 부르면 전속력으로 달려야 한다”며 “평소 운동하지 않으면 달리기조차 버거울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많은 엘리트 선수들을 치료하며 감독들과의 커뮤니케이션에 회의를 느끼기도 했다. 한국은 심할 정도로 선수들의 혹사를 방치한다. 대표팀 주치의는 선수가 부상을 입거나 컨디션에 문제가 생기면 감독에게 상황을 알려야 한다. ‘성적’이 달린 중요한 대회를 앞둔 경우 감독은 선수생명보다 당장의 성적이 중요하다며 복귀를 원하고, 의사는 선수생명을 생각해 반대한다.

나 원장은 선수들의 부상 부위를 촬영한 X-레이 검사결과를 볼 때마다 선수의 인생이 부상에 오롯이 담겨 있는 것을 느낀다. 그는 “선수들은 부상조차 ‘어쩔 수 없는 참아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결국 부상으로 선수생명이 끊어지는 안타까운 일이 반복된다”고 말했다.


부상 탓에 축구의 경우 청소년대표팀 선수 가운데 성인대표팀에 합류하는 사람은 50%를 넘지 않는다.  나 원장은 노래경연 프로그램인 ‘위대한 탄생2’에 출연한 축구선수 구자명의 방송을 보고 가슴이 무너져 내렸다. 그는 “구 선수는 2007년 청소년대표팀 때 인연을 맺었다”며 “2006년 수원컵 국제청소년클럽 축구대회 MVP를 받을 만큼 미래가 촉망되는 예비 스타였지만 결국 허리 부상으로 조기 은퇴하고 배달 일을 하며 지냈다더라”고 전했다. 이어 “지도자가 조금이라도 선수의 장래를 생각했다면 지금쯤 프로리그를 누비는 선수가 됐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나영무 솔병원 원장(가운데)이 부상을 입은 박주영 축구 국가대표(왼쪽)를 치료하고 컨디션을 점검하고 있다.국내 지도자들의 선수 관리방식에 적잖은 실망을 느끼던 그는 2002년 히딩크 감독을 만나며 한국과 확연히 다른 재활 방식에 놀랐다. 히딩크 감독은 주치의의 의견을 100% 존중했다. 히딩크는 한국 선수들이 부상을 그대로 참는 모습을 보고 ‘한국은 의료수준이 떨어지느냐’고 묻기도 했다.

당시 우리나라는 스타선수가 부상을 당했다면 3개월 후 무슨 일이 있어도 복귀해야 하는 게 보통이었다. 반면 외국은 이미 선수들에 대한 몸 관리를 우선시했다. 지도자가 의사의 진단을 무시하고 선수를 뛰게 했다가 선수생명에 지장을 초래할 경우, 선수가 감독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히딩크 감독을 시작으로 국내서도 선수의 부상을 관리해야 한다는 분위기로 바뀌고 있다. 나 원장은 “올림픽선수촌에서 같은 충격파 치료를 하더라도 외국 선수들은 앓는 소리를 내며 괴로워하지만 우리 선수는 꿋꿋하게 견딘다”며  “이제 한국 선수들도 무작정 참지만 말고 적시에 치료받는 현명한 선택을 하길 바란다”고 충고했다.

이젠 일반인들도 재활치료의 중요성을 느끼고 있다. 나영무 원장은  “주5일제가 시행된 이후 일반인 중 스포츠손상을 입는 경우가 급격히 늘었고, 우리 병원을 방문하는 환자 200명 중 40~50명 가량이 일반인”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스포츠의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지 않을 수 없다”고 설명했다. 1990년대 중반부터 본격화된 국내 스포츠의학은 이제 세계 수준의 80~90%에 도달할 정도로 발전했다.

보건복지부가 지정한 전문의는 아니지만 스포츠의학회는 ‘분과 전문의’라는 자체 인증제도를 만들어 시행하고 있다. 이 분과 전문의 자격을 얻기 위해 펠로우십을 신청하는 의사가 늘고 있다. 솔병원도 해마다 2명씩 받는다. 대부분 정형외과나 재활의학과 의사이며 최근 가정의학과에서도 지원하는 상황이다.

나영무 원장은 수술 없이 치료하는 방식을 선호하며 운동치료 등 고전적인 재활치료를 중시한다. 그는 환자가 걸어 들어오는 순간 어디가 아픈지, 병적인 또는 기능적인 문제로 아픈 것인지를 제대로 진단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쓸데없이 치료를 많이 받을 게 아니라 아픈 부위를 정확히 찾는 게 관건이라고 설명했다.

나 원장은 “아무리 병원에서 치료받아도 집에서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면 부상이 재발하기 마련”이라며 “증상이 재발하지 않고, 치료효과가 유지되도록 이끌어주는 것을 소홀히 해선 안 된다”고 조언했다. 가령 관절염이 있으면 계단을 내려가는 것에 주의하고, 척추가 아픈 사람은 머리를 감을 때 숙이지 말고 샤워장에서 서서 감는 게 좋다는 등 생활 속 어드바이스를 해주는 게 의사의 중요한 임무가 되는 것이다.

그는 제대로 된 재활 결과를 얻으려면 한 사람을 위해 서비스하는 사람들끼리 협력하는 이상적인 컬래버레이션을 이뤄야 한다고 강조했다. 2004년 국내 최초로 의사와 물리치료사·운동처방사·심리치료사·마사지사 등이 모여 개인에 맞는 처방을 선보이는 본격적인 스포츠 재활치료를 시작한 것도 나 원장이다. 여러 학문이 교류·융합되면서 학문이 발달하듯 스포츠의학에서도 다학제치료가 필요하다.

그는 ‘지식을 나누는 일’에도 열정적이다. 향후 재활 전문 단과대학 만드는 게 꿈이다. 의사들을 위한 스포츠의학 워크숍을 해마다 진행하고, 생활 속 재활을 담당해야 할 체육대 학생들을 위해 스포츠의학 강의를 하고 있다. 세종대·단국대·삼육대 체대에 출강한 경력도 있다. 

건강한 노화를 위해서는 체력이 뒤따라야 하고 결국 운동에 참여해야 한다. 나영무 원장은 “고령화가 진행되고 레저활동 인구가 늘면서 스포츠의학은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미래지향적 아이템”이라며 “결국 체력을 키우고 질병을 예방하기 위해 더 많은 투자가 이뤄질 것이고 스포츠의학도 스피디하게 발전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나영무(羅永武) 솔병원 대표원장 프로필

1987년  연세대 의대 의학학사               
1991년  연세대 대학원 의학석사                
1998년  연세대 대학원 의학박사                

1998~1999년 연세대 의과대학 재활의학교실 조교수         
1999~2003년 인제대 의대 일산백병원 재활의학과 부교수
2010년~현재  연세대 의대 재활의학교실 외래교수      
           
1997~2013년 대한축구협회 의무분과위원회 의무위원            
1999~2003년 대한축구협회 의무분과위원장 및 이사            
2000~2002년 2002 한일월드컵조직위원회 의무전문위원      
2006~2013년 대한축구협회 의무분과부위원장                   

2000년~현재 대한스포츠의학회 이사 
2013년~현재 KLPGA 공식지정병원/주치의                      
2014년~현재 대한빙상경기연맹 의무분과위원장/주치의         
2014년~현재  2018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회 의무전문위원    

1996~2001년 LG 트윈스 야구단 팀주치의                      
2010~2014년 김연아 피겨스케이팅 선수 주치의                  
2013년~현재 박세리 골프 선수 주치의                            
2013년~현재 손연재 리듬체조 선수 주치의                     
2014년~현재 넥센 히어로즈 야구단 팀주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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