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카범죄 5년새 6배 늘어 … 증상 일찍 시작될수록 예후 나빠, 원만한 대인관계 형성이 치료 근본
대학생 안모 씨(25)는 인터넷 공유사이트에서 필요한 자료를 찾던 중 ‘○○○ 몰카’라고 쓰여진 동영상 파일을 보게 됐다.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자꾸 무슨 내용일까 호기심이 생겼고 결국 동영상을 내려받은 뒤 재생했다. 확인 결과 누군가가 지하철역에서 여성의 다리 등을 몰래 촬영한 동영상이었다. 처음엔 별다른 느낌없었지만 볼수록 묘한 쾌감을 느꼈고 나중에 직접 ‘몰카’를 찍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경기 고양경찰서는 30일 자신이 근무하는 공공기관 건물 화장실에서 여성을 몰래 카메라로 찍은 혐의(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로 공익요원 이모 씨(21)를 불구속 입건했다. 이 씨는 지난달 21일 오후 5시 고양시의 한 공공기관 건물 화장실에서 여성의 모습을 화장실 칸막이 너머로 휴대전화로 몰래 찍은 혐의를 받고 있다.
서울 중부경찰서는 지난해 7월부터 올해 7월까지 카페에 여성 몰카사진을 유포한 박모 씨(25)와 카페 운영자 박모 씨 (22) 등 56명을 카메라 이용 촬영죄 등의 혐의로 수사 중이라고 지난달 28일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은 전국 각지의 길거리에서 휴대전화 등을 이용해 여성들의 하반신 또는 치마 속을 몰래 촬영한 뒤 카페 내 ‘직접 찍은 사진 게시판’에 유포한 혐의를 받고 있다.
최근 한국사회에서는 ‘몰카공화국’이라는 신조어가 등장할 정도로 스마트폰 등을 이용한 몰카 범죄가 급증하고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카메라 등 이용촬영(몰카)’ 범죄는 2010년에는 1134건, 2011년 1523건, 2012년 2400건, 2013년 4823건, 지난해 6623건으로 5년새 6배 가까이 늘었다. 특히 하루 평균 무려 18건의 몰카 범죄가 일어난 것으로 확인됐다.
몰카에 이용하는 도구도 갈수록 다양해지고 있다. 처음엔 스마트폰 내장 카메라가 주로 사용됐지만 최근엔 초소형카메라를 구두 앞쪽이나 안경, 펜 등에 설치해 범죄에 이용한다. 지난달 26일에 검거된 워터파크 여자 샤워실 몰카 사건은 스마트폰 케이스를 이용했다. 피의자는 스마트폰 케이스 측면에 초소형 카메라를 설치, 동영상을 찍었기 때문에 촬영 과정이 단순히 문자를 보내는 것처럼 보여 다른 사람의 시선을 피할 수 있었다.
이같은 몰카 범죄는 대부분 관음증(觀淫症, voyeurism, Peeping Tomism)에서 비롯된다. 관음증은 ‘절시증(竊視症,Scopophilia)’이라고도 불리는 ‘성적도착증(paraphilia)’의 하나로 나체 또는 성행위에 관련된 사람을 몰래 관찰하고 이와 관련된 행동과 환상에 사로잡히는 질환이다. 옷을 벗고 있거나 벗은 사람, 성행위 중인 사람을 몰래 관찰하는 행동을 보이며 이에 대한 환상을 갖는다. 심하면 반복적으로 강한 성적 흥분을 느끼게 되며 보통 자위행위를 동반한다.
김정현 분당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관음증 원인으로는 어렸을 때 경험한 충격적인 사건이나 경험과 관계가 있는 것으로 본다”며 “최근 몰카 범죄가 급증하는 것은 인터넷의 발달로 성적 흥분을 자극하는 동영상을 쉽게 접할 수 있고, 스마트폰 등의 보급률이 높아지며 몰카를 찍기 수월한 환경이 조성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타인을 배려하지 않고 자신만의 주관적인 만족을 우선시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만연하고, 과도한 스트레스로 인해 자기조절능력이 떨어지는 것도 원인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꼭 몰카가 아니더라도 인터넷 등에 떠도는 연예계 속설들, 이른바 ‘증권가 찌라시’도 남의 사생활을 훔쳐보길 원하는 대중적 관음증에서 비롯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일본어 ‘ちらし’에서 따온 찌라시라는 용어는 사설 정보 문건을 뜻한다. 서울 여의도 등지에서 활동하는 각 기업체나 증권사 등의 정보 담당자들이 정·재계 외부 동향을 파악하기 위해 작성하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출처를 확인하기는 어렵다. 연예계 스캔들과 관련, 사실인 경우도 더러 있지만 그렇지 않은 음란성 내용은 ‘받은 글’이란 제목으로 마치 사실처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배포된다.
미국 정신의학회(American Psychiatric Association)가 펴낸 정신장애 진단 통계편람(DSM-Ⅳ-TR)에 따르면 옷을 벗거나 성행위 중인 타인을 눈치 채지 못하게 관찰하는 것에 대한 공상, 성적 충동, 성적 행동이 6개월 이상 지속될 때 관음증으로 진단한다. 이같은 증상이 사회적·직업적으로 중대한 장해를 초래하는 경우도 해당된다.
일찍 증상이 시작될수록, 행위가 잦을수록, 행동에 대한 부끄러움이나 죄책감이 없을수록, 약물을 남용할수록 예후가 좋지 않다. 반대로 정상적인 성관계 경험이 있고 자발적으로 치료를 원하는 경우 예후가 좋아진다.
먼저 정신과적 상담이나 검사로 치매나 반사회적 성격장애 같은 기타 정신질환과 구분한다. 이어 정신치료적 요법을 실시해 이상 성행동의 근원을 치료한다. 보통 인지행동요법이나 그룹치료를 실시한다. 김 교수는 “몰카 범죄 등을 저지른 관음증 환자는 ’단순히 혼자 즐기는 것일 뿐 범죄는 아니다’, ‘초소형카메라 등을 사용해 검거될 위험이 없다’ 등 왜곡된 사고방식을 가진 경우가 많다”며 “인지요법은 피의자를 대상으로 범죄 상황을 설정한 뒤 경찰에 검거되거나, 이로 인해 직장에서 직장에서 해고되는 매우 부정적인 상황을 주입하는 과정을 반복한다”고 설명했다.
몰카 범죄 피의자들은 타인에 대한 공감능력이 떨어지거나 연애 등 사회적 관계에서 심각한 상처를 받은 경우가 많다. 따라서 사회적인 공감능력을 키워주고 정상적인 대인관계 및 사회적관계를 유지 및 형성할 수 있도록 훈련한다.
증상이 심각한 경우엔 인지행동요법 등 행동·심리치료와 약물치료를 병행한다. 약물치료엔 선택적 세로토닌재흡수억제제(SSRI) 등을 사용한다.
김 교수는 “현재 몰카를 포함한 성범죄자들은 벌금이나 징역형 등에 그칠 때가 많다”며 “법적 처벌을 강화하되 근본 원인인 그릇된 성의식을 개선할 수 있도록 선친국처럼 심리치료를 병행하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관음증이 단순히 개인의 성적 취향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용납하기 힘든 범죄로 이어질 수 있음을 사회구성원에게 인식시키고 청소년기부터 건전한 성의식을 가질 수 있도록 관련 교육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