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잠든 시간에 일어나 체조를 하고 신문을 읽으며 하루를 준비하는 아침형인간, 이른바 종달새족은 성공을 위한 필수조건으로 여겨진다. 유교문화권인 한국에서 부지런함은 가장 중요한 덕목 중 하나로 늦잠을 자거나 게으른 모습을 보였다간 어른들의 불호령이 떨어지기 일쑤였다.
위인전만 봐도 거의 다 아침형인간뿐이다. 공부나 일을 하느라 늦게 자는 경우는 많지만 늦잠을 잔다는 이야기는 찾아보기 힘들다.
올빼미족으로 불리는 저녁형인간은 사회생활에도 불리한 입장에 놓여있다. 해가 진 뒤에야 정신이 또렷해지고 일이 손에 잡히기 때문에 아침형인간을 선호하는 직장에서 적응하기 힘들다.
아침형과 저녁형의 수면과 생활 패턴은 상당부분 유전에 의해 결정된다. 영국 노섬브리아대 바클레이 박사 연구팀이 63쌍의 일란성 쌍생아와 674쌍의 이란성 쌍생아를 대상으로 아침형·저녁형 수면패턴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을 분석한 결과 유전적 영향이 수면패턴의 52%를 결정했다.
인간과 유전자지도가 70% 이상 비슷한 초파리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1만5000개 유전자 중 80여개가 수면에 관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유전자 ‘PER3’의 길이가 길면 아침형인간, 짧으면 저녁형인간이 될 확률이 높다. PER3는 체내 단백질 생산량을 조절하는 식으로 우리 몸에 시간을 알려주는 유전자다.
종달새족과 올빼미족의 건강 상태는 어떨까. 반전을 기대한 올빼미족은 아쉽겠지만 국내외 연구결과를 종합해보면 아침형인간이 전반적으로 더 건강한 것으로 나타난다. 이는 저녁형인간이 무조건 건강이 나쁜 게 아니라 야간에 왕성히 활동한 데다 학업이나 출근을 위해 일찍 일어나느라 잠이 부족해서 생긴 결과다. 즉 수면부족이 건강상의 문제로 나타나는 셈이다.
일반적으로 야행성 생활습관을 가진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비만 및 대사증후군 위험이 높다. 최근 고려대 안산병원이 47∼59세 성인 남녀 1620명을 아침형인간과 저녁형인간으로 나눈 뒤 체지방, 허리둘레, 골다공증 여부 등을 조사한 결과 저녁형인간은 체지방과 혈액 속 지방이 아침형인간보다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병원 김난희 내분비내과 교수는 “남성의 경우 저녁형인간은 아침형인간보다 비만한 비율이 3배, 노화에 따른 근육감소증 위험률은 4배 높다”며 “이밖에 당뇨병에 노출될 위험도 높은 것으로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여성의 경우 저녁형인간은 아침형인간보다 대사증후군 위험이 약 2배 높다. 대사증후군은 당뇨, 심장질환, 뇌졸중 등의 위험을 증가시킨다. 특히 올빼미족 여성은 허리둘레가 비만한 ‘올챙이 배’가 될 확률이 높다.
김 교수는 “저녁형인간은 아침형인간보다 건강이 나빠지는 명확한 이유는 아직 규명하지 못했다”며 “다만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습관이 수면의 질을 떨어뜨리고, 왕성한 야간 활동 탓에 야식을 즐겨 건강에 악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또 야간활동으로 가로등이나 TV에서 나오는 인공빛에 자주 노출되면 인슐린 작용이 떨어지면서 대사증후군 위험이 높아지는 것으로 예상된다.
아침잠을 얼마나 자느냐는 정서적인 부분에도 영향을 미친다. 김세주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에 따르면 올빼미족은 종달새족에 비해 우울증과 조울증 환자의 비율이 더 높다. 반면 종달새족은 명랑하고 쾌할한 기질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는 낮에 일하고 저녁에 쉬는 게 일반적인 현대사회의 구조에서 비롯된다. 올빼미족이 덜 행복하다고 느끼는 이유는 현대사회가 원하는 생활패턴이 불리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해가 진 뒤에야 업무효율이 향상한다고 하더라도 대부분의 회사는 아침회의 등으로 오전 일찍 일과가 시작한다. 이런 조직문화에 최대한 빨리 적응해야 하는데, 실패할 경우 자신감과 자존감이 낮아지며 행복지수가 떨어진다.
반대로 종달새족도 잦은 회식과 야근에 적응하지 못하면 피로감과 탈진 증상이 오면서 스스로 불행하다고 느끼게 될 확률이 높아진다.
올빼미족은 또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에 걸릴 위험이 크고 카페인과 알코올을 많이 섭취해 중독에 빠지는 경우도 많다.
올빼미족이라고 해서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니다. 스페인 마드리드대 연구팀이 2013년 청소년 1000명을 조사한 결과 저녁형인간이 아침형인간보다 귀납추리·문제해결 능력이 뛰어나고 지능지수(IQ)도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귀납추리는 창의적 아이디어와 연결되는 만큼 저녁형인간이 더 많은 돈을 벌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영국 런던정경대 연구팀도 저녁형인간이 더 똑똑하고 능률적이라는 연구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이 때문에 올빼미형 인간은 시인·발명가·예술가 등 창의적인 면이 필요한 직업, 종달새형 인간은 공무원이나 회계사 등 논리적인 면이 강한 직업이 잘 어울린다.
집중도는 종달새족은 오후 중반부에 접어들면 급격히 떨어지지만, 올빼미족은 상대적으로 하루 전반적인 집중도가 꾸준한 편이다.
하지만 학업성적은 대체로 기상시간이 빠른 종달새족이 좋은 편이다. 이는 대부분의 학교 수업 체계가 이른 아침에 시작하는 구조적인 원인에 따른 것이다. 케르크 호프 네덜란드 레이던대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종달새족은 초저녁에 깊은 잠을 자고 새벽으로 갈수록 수면의 깊이가 낮아진다. 반면 올빼미족은 수면호르몬인 멜라토닌이 종달새족보다 약 3시간 늦게 분비되기 때문에 자정이 지난 새벽이 지나서야 깊게 잠이 든다. 이로 인해 가장 깊은 잠을 자야 할 시간인 오전 6~7시에 억지로 눈을 떠 공부를 시작해야 한다.
결국 아침형과 저녁형 모두 장단점이 존재하기 때문에 무조건 어느 쪽이 옳다고 단정짓기는 어렵다. 오히려 스스로가 종달새족 또는 올빼미족이라는 사실을 의식해 무리하게 수면 패턴을 바꿀 경우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심해지고 수면의 질이 떨어진다. 수면 습관은 장시간에 걸쳐 조금씩 바꾸되, 인간에게 가장 적합한 수면시간은 약 7~8시간이므로 늦어도 오후 11시 이전엔 잠들면 다음날 최적의 컨디션을 유지할 수 있다.
이향운 이대목동병원 수면센터장은 “불면증으로 인한 생활리듬 변화는 성인 3명 중 1명이 경험할 정도로 흔한 증상”이라며 “이런 상태가 장기화되면 우울증 등 정신질환은 물론 소화기계 및 심혈관계질환까지 유발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수면의 질을 높이려면 침실 조명을 간접조명으로 바꾸고 소음과 빛을 차단하는 커튼이나 이중창을 이용해 어두운 수면환경을 조성하는 게 좋다”며 “만성적인 수면장애가 한 달 이상 지속될 경우 전문 의료진의 진단 및 치료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