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저녁으로 부는 서늘한 바람과 가을이 성큼 다가왔다. 흔히 이맘때는 외롭다거나 마음이 허하다는 등 가을을 타는 남성이 부쩍 늘어난다. 흔히 가을은 ‘남성의 계절’로 불리며 남자들이 사색에 잠기기 쉬운 시기로 꼽힌다. 실제로 남성을 대상으로 시행한 ‘어느 계절에 가장 외로움을 느끼는가’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 가을이 44.7%로 1위를 차지했다. 다음이 겨울 40.8%, 여름 7.9%, 봄 6.6% 순이었다.
외로운 감정을 일으키는 것은 ‘계절성 기분장애’( Seasonal Affective Disorder, SAD) 때문이다. SAD는 우울증과 마찬가지로 외로움을 느끼는 것은 비슷하다. 하지만 우울증은 입맛이 떨어지고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게 만드는 반면 SAD는 식욕이 왕성해지고 밤낮을 가리지 않고 잠이 늘어난다.
SAD를 유발하는 대표적인 요소가 ‘일조량 저하’다. 일조량에 따라 호르몬 분비에 변화가 일어나기 때문이다.
뇌에는 시상하부라는 생활리듬을 조절하는 생물학적 시계가 존재한다. 해가 뜨면 일어나고 밤이 되면 잠들듯 인간의 생활리듬은 낮과 밤의 주기에 따라 반응한다.
가령 가을과 겨울에는 기온과 햇볕이 감소하면서 일조시간이 부족해진다. 이는 에너지 부족, 활동량 저하, 슬픔, 과식, 과수면증상을 일으키는 생화학적 반응을 유도한다.
이와 관련된 호르몬이 멜라토닌이다. 함병주 고려대 안암병원 신경정신과 교수는 “멜라토닌은 뇌의 중앙에 있는 작은 내분비선인 ‘송과선’에서 분비되며 수면주기를 조절한다”며 “멜라토닌은 일조량과 반비례하는데 밤에 많이 생성되고 낮에는 덜 생성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따라서 가을이나 겨울에는 여름보다 상대적으로 멜라토닌양이 늘게 된다”고 덧붙였다.
또 비타민D와도 관련이 깊다. 햇볕을 쬐면 비타민D가 생성돼 뇌 속 세로토닌 분비가 활성화된다. 세로토닌은 신경전달물질로 심리적 안정과 엔도르핀 생성을 촉진하는 호르몬이다. 하지만 일조량이 줄어드는 가을, 겨울철에는 세로토닌의 활성도가 낮아지며 우울증 발병에 취약해진다.
함 교수는 “감소된 비타민D는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 분비까지 줄어들게 만든다”며 “비타민D가 고환에서 남성호르몬의 분비를 조절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결국 멜라토닌 상승과 세로토닌 하강이 남성들에게 가을을 타게끔 유도하는 것”이라며 “저하된 남성호르몬은 남성의 활동력과 야성적인 모습을 감소시키고 외로움과 쓸쓸함을 더 크게 느끼게 한다”고 덧붙였다.
가을을 타는 것은 일조량 감소와 밀접한 연관이 있는 만큼 매일 일정시간 햇볕을 쬐는 ‘광선요법’을 활용하는 게 도움이 된다. 가을기분장애를 해소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햇볕 아래 있는 시간을 늘리는 것이다. 하루 30분 이상 햇볕을 쬐면 비타민D가 생성돼 뇌 속의 세로토닌 분비를 활성화된다. 맑은 날 꾸준히 산책하고 친구나 가족과 함께 걷는 게 좋다. 시간이 부족해 여의치 않으면 실내에서 커튼을 걷어 햇볕을 받는 것도 도움이 된다.
또 의식적으로 규칙적인 생활을 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식욕과 수면욕을 부르는 만큼 우울한 기분에 많이 먹고 오래 자면 몸매가 망가지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의식적으로라도 아침잠을 줄이고 밤에는 제 시간에 잠자리에 들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게 좋다.
함병주 교수는 “만약 2주 이상 심한 우울감, 흥미감소, 죄책감 등이 동반된다면 병원을 방문해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