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3년 전부터 ‘효소’를 활용한 다이어트가 인기를 끌고 있다. ‘먹기만 하면’ 예뻐진다는 이너뷰티 열풍도 효소뷰티를 끌어올리는 데 한몫했다. 이와 함께 효소전문가, 효소박사가 대거 등장해 백초효소·산야초효소 등의 체중 감량 효과를 소개하고 나섰다. 단식원의 단골손님도 이들 효소다. 거의 초고도비만이었던 사람들이 날씬한 여성의 모습으로 바뀐 비포 애프터 사진도 어렵잖게 인터넷을 떠돈다.
효소가 대체 뭐길래 이렇게들 열광하는 걸까. 효소는 인간뿐만 아니라 동물, 식물 등 생명을 지닌 모든 것과 연관돼 있다. 체내에서 대사작용을 도와 오장육부가 제대로 기능하도록 촉매 역할을 한다. 인간은 효소 없이 생명을 유지할 수 없다.
건강한 사람은 효소가 제대로 분비된다. 반면 소화효소 분비가 원활하지 않으면 위가 거부룩해지고, 간 해독 효소가 제 역할을 못 하면 질병에 노출될 수 있다. 재생효소가 자신의 역할을 못 하면 노화가 빨리 온다. 효소는 1차적으로는 부모님에게 유전적으로 물려받으며, 이후로는 음식을 통해서 얻게 된다.
인체는 매일 새로운 효소를 만들어내지만 잘못된 식습관과 노화 등으로 점점 줄어들기 때문에 음식으로 보충하는 게 좋다. 그러나 효소는 55도 이상 열을 가하면 사라지고, 현대인은 화식을 주로 먹다보니 자연스레 얻을 기회를 놓치기 쉽다.
이같은 상황에서 효소 다이어트는 주로 주부층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중년 여성의 상당수가 TV 생활정보 프로그램에서 내보낸 정보에 혹한다. 효소박사들과 기쁜 마음으로 성공사례를 들려주는 사례자들을 보고 ‘나도 도전해봐야지’ 마음먹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인기를 타면서 효소 다이어트 프로그램 진행에 들어가는 비용도 치솟았다. 열흘간 약 40만~50만원 어치를 구입해야 다이어트를 해볼 수 있다. 산야초효소 등은 병 당 7만원을 호가한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비싼 돈을 주고 설탕물을 산다’며 비판하는 경우도 적잖다. 한동하 한의학 박사는 이같은 현상은 “발효(醱酵)와 효소(酵素)라는 단어가 뒤죽박죽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발효시키면서 효소를 만든다고 하지만 이는 별개일 수 있다. 발효의 결과물에 정작 ‘효소’는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발효는 미생물에 의해 유기물이 분해되는 과정이다. 이때 특정 유기물이 분해되기 위해 반드시 효소가 필요하다. 효소는 모든 생물체에 무수히 존재하는데 발효 과정에서 물질들을 잘게 분해하는 단백질의 일종이다.
우리 몸에도 2000여종 이상의 효소가 존재한다. 각각의 효소는 대사과정에서 수행하는 역할이 제각각이다. 단순히 먹으면 건강해진다는 게 아니라 예를 들면 프로테아제는 단백질을 아미노산으로 분해하는 일만 하고, 아밀라제는 전분을 포도당으로 분해하는 역할만 한다.
하지만 집에서 만든 효소액이나 산야초 효소 등은 효소로 보기 어렵다. 성낙주 경상대 식품영양학과 교수는 ”효소액으로 불리는 것들이 결국 ‘설탕물’이라는 비판을 받는 것은 원료에 설탕을 첨가하면 삼투압이 높아져 원료 중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미생물이 사멸하거나 혹은 생육이 억제되기 때문”이라며 “이때 새로운 효소가 생성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원료에 원래 존재하고 있던 효소마저 대부분 기능을 잃게 된다”고 말했다.
이들 효소액을 1년 정도 보관해도 썩지 않는 이유다. 이처럼 당분을 이용해 식품의 부패를 방지하는 저장법을 ‘당장’(糖藏, sugaring)이라고 한다. 게다가 식물마다 함유한 효소는 고분자단백질로 식물의 세포벽을 통과하지 못한다. 성 교수는 “요즘 소개되는 효소 담그는 과정은 단지 당장에 불과하다”며 “다만 당장 공정 중 살균과 밀봉과정이 생략되었을 뿐”이라고 설명한다. 그는 “흔히 매스컴에서는 효소를 만들 때 황설탕이 좋다고 권하고 있는데, 국내서 시판되는 황설탕은 백설탕에 황색색소를 첨가해 만드는 게 대부분이라 오히려 백설탕보다 나쁘다”고 지적했다. 결론적으로 이렇게 만들어진 효소액에는 정작 효소가 거의 없다.
내용물 전체를 고형물로 만들어서 복용하더라도 효소의 흡수도 기대하기 힘들다. 효소는 단백질로 우리 몸에 들어오면 단백질을 분해하는 위산(펩신)이나 트립신과 같은 체내효소에 의해 아미노산으로 쪼개지면서 본래의 활성을 잃은 상태로 흡수된다. 면역시스템 때문에 외부물질이 단백질 상태로 흡수될 수 없다.
한동하 박사는 발효액(효소가 아님)을 만들 경우에도 설탕에 절인 때 특정 재료를 비비거나 절구로 으깨고 거칠게 가루로 내라고 조언한다. 이런 경우 조직세포벽이 파괴돼 유효성분 용출이 쉬워진다. 이 역시 효소를 먹는다는 의미보다는 다양한 생리활성물질의 도움을 받기 위한 것이다.
결론적으로 효소액을 먹었더니 살이 빠졌다는 것은 ‘단식’의 의미가 컸기 때문으로 보여진다. 효소 다이어트는 대개 열흘 정도 거의 굶다시피하며 병에 든 효소액을 마시는 게 전부이다. 굶는 와중에 최소한의 열량을 제공하는 역할을 해서 단식을 더 수월하게 만들어주는 정도로 이해하면 된다. 효소는 결국 가열하지 않은 천연음식을 통해 자연스럽게 체내로 흡수돼야 하는 게 기본 원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