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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밥도둑 ‘장아찌’ … 과거엔 양반들만 먹는 고급 음식
  • 정종우 기자
  • 등록 2015-08-24 11:43:35
  • 수정 2020-09-14 12:3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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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채소 풍부한 초여름이 제철, 궁중에선 소고기 넣어 … 효소 덕분에 소화 잘돼
장아찌는 발효 과정에서 원재료가 가진 강한 성질을 누르지만 각각의 특성에 따른 효능을 고스란히 안고 있으며, 유해 미생물이 사라져 장기보존이 가능하다.한국은 4계절이 뚜렷하고 습한 기후를 갖고 있어 예부터 곰팡이에 의한 음식부패를 막기 위해 소금을 사용하는 절임 문화가 발달했다. 겨우내 식탁을 책임졌던 김치, 어패류의 저장을 위해 짜게 절인 젓갈 등이 대표적이다. 장아찌도 한국을 대표하는 절임음식으로 젓갈과 달리 채소를 소금물, 간장, 식초 등에 발효시킨다.

식재료를 보관하기 위해 시작되었지만 음식에 대한 욕망 덕에 장아찌는 맛이 정교해지고 다양해졌다. 냉장 보관, 당일 배송, 하우스 재배 등 음식 보관에 대한 변화가 일어나고 제철음식의 보관이 필요 없어지면서 장아찌는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게다가 염장음식이 건강에 좋지 않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섭취 자체를 피하는 사람도 늘고 있다. 하지만 최근 ‘쿡방’(요리하는 방송), ‘먹방’(음식은 먹는 방송) 등이 인기를 얻으면서 미식에 대한 요구가 늘어나 대표적인 염장음식인 장아찌가 다시 빛을 보고 있다.

도시락을 싸가던 시절에 깻잎장아찌는 최고의 반찬 중 하나였다. 진한 고깃국물을 먹을 때는 고추장에 담근 마늘장아찌가 제격이다. 무를 말린 무말랭이 장아찌는 단골 도시락 반찬이었다. 고추장아찌, 감장아찌, 무장아찌 등도 대표적이며 넣은 재료에 따라 종류가 달라진다.

장아찌는 제철 재료를 이용해 간장이나 소금에 절이거나 고추장에 넣었다가 먹는 저장식품이다. 발효과정에서 원재료가 가진 강한 성질을 누르지만 각각의 특성에 따른 효능을 고스란히 안고 있다. 재료를 소금물, 간장, 식초 등에 넣어 탈수시키면 수분이 빠져나가고 양념이 스며들어 효소에 의한 소화작용이 촉진된다. 동시에 유효한 미생물이 번식해 발효가 진행된다. 몸에 이로운 미생물 이외에 유해 미생물이 사라져 장기보존이 가능하다.

장아찌는 초여름이 제철이다. 주재료가 되는 오이·마늘·깻잎 등은 여름철에 쉽게 구할 수 있고, 값싸 오래전부터 장아찌의 재료로 각광받았다. 겨울에는 김치와 더불어 비타민을 공급해주는 중요한 식품 중 하나였다. 장아찌는 장지(醬漬), 장과(醬果) 지채(瀆菜), 장저(醬菹) 등으로 다양하게 불렀다. 저(菹)는 고대 중국에서 먹던 채소 절임으로 한국 김치의 먼 조상 뻘이 된다.

고려시대 후기 문신이자 문인이었던 이규보가 지은 ‘가포육영(家圃六詠)’이라는 시에서 처음 등장한다. 최초의 한글 표기는 조선시대 중국어 학습지 ‘박통사언해(朴通事諺解’에 나오는 ‘쟝앳디히’이다. ‘장(쟝)에 담근 김치(디히)’란 뜻이다. 하지만 장아찌의 어원을 장과지(醬瓜漬), 즉 오이장아찌가 장아찌로 변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다.

1957년에 황혜성이 쓴 ‘이조궁중요리통고’에서는 오이, 무, 열무, 미나리, 배추속대 등을 소금에 절이거나 햇볕에 말려 물기를 뺀 후 소고기와 함께 넣고 볶아 실고추·참기름·깨소금과 함께 버무린다고 궁중식 장아찌 만드는 법을 소개한다. 궁중에서는 주로 장아찌 대신에 장과란 단어를 사용했다. 궁중음식답게 귀한 쇠고기를 사용한 게 특징이다.

고려시대 이색의 ‘목은집(牧隱集)’에서 ‘병중에 오이장아찌가 꿀처럼 귀했다’고 적혀있다. 조선시대 중기까지 귀하게 대접받았다. 궁중에서는 장과라 불렀다. 장과는 각종 채소를 햇볕에 말려서 쇠고기와 함께 볶아 양념과 버무린 고급 음식이었다. 이후 시간이 지나면서 일반 서민들도 먹는 저렴한 반찬으로 변했다. 물자가 부족했던 일제강점기 말에는 조선총독부가 장아찌를 장려할 정도였다.

된장, 간장 등에 담는 장아찌는 오랫동안 이용됐지만 고추장이 대중화된 것은 오래되지 않았다. 19세기 이후 고추장 장아찌가 등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조기로 유명한 영광에서는 고추장에 굴비를 박아 넣은 고추장 굴비가 부자들의 밥상이나 한정식 상에 올랐다. 여름이면 찬물에 밥 말아 먹는 탓에 영광에서는 이른 봄에 잡은 조기로 만든 굴비를 대가리와 가시, 껍질을 제거한 살을 7~8개의 조각으로 나눠 5~6개월 후에 꺼내 먹었다. 감칠맛이 풍부하고 매콤한 고추장 굴비는 여름철 잃어버린 입맛을 찾는 데 제격이다. 굴비처럼 단백질이 풍부한 생선이나 고기 혹은 감칠맛이 나는 해조류를 넣으면 재료의 맛은 물론이고 고추장의 맛도 좋아지는 효과가 있었다.

장아찌는 담그는 장에 따라 제조법이 달라진다. 간장에 담그는 장아찌는 재료 자체에 수분이 적은 고추, 마늘, 양파, 깻잎 등을 사용해야 한다. 끓인 간장물을 식혀 손질한 재료를 붓고 기다리면 간장 장아찌를 맛볼 수 있다.

고추장 장아찌를 담글 때는 재료를 미리 소금에 절여 수분을 충분히 뺀 뒤 고추장에 박아야 한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 물이 생기지 않고 저장성도 좋아진다. 고추장 장아찌에는 마늘쫑, 고추, 더덕, 도라지, 매실, 가죽나물 등이 재료로 좋다. 조청을 넣어 버무리면 윤기가 나고 오랫동안 맛을 유지할 수 있다.

된장 장아찌는 짠맛이 상대적으로 강해 먹을 때는 된장을 완전히 걷어내고 양념을 한 뒤 먹어야 한다. 너무 짜면 물에 살짝 헹궈 무쳐도 좋다. 된장에 마늘, 맛술, 다시마 우린 물을 섞어도 맛이 좋다. 된장 장아찌는 한달 이상 숙성해야 깊은 맛이 난다. 기호에 따라 된장에 식초, 조청, 감초 우린물, 술지게미 등을 넣으면 독특한 맛을 느낄 수 있다.

소금을 활용한 장아찌는 재료 위에 소금을 직접 뿌리거나 소금물로 절인다. 소금물의 농도는 소금 1, 물 10 으로 하는 게 가장 이상적이다. 달걀을 넣었을 때 수면 위로 뜨는 달걀의 면적인 500원 동전 크기만큼 될 때가 가장 알맞다. 소금물의 양은 재료가 충분히 잠겨야 한다. 물 10컵에 약 10개의 오이를 절일 수 있다. 소금 장아찌는 오이지가 대표적이다. 오이지를 만들 때는 충분히 끓인 뜨거운 소금물을 바로 부어야 오이가 무르지 않고 익은 다음에도 아삭하게 먹을 수 있다. 절일 때 쓰는 소금은 꽃소금보다 천일염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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