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기가 학습내용 인지하지는 못해 … 모유수유·음식관리가 더 중요
수학태교, 영어태교는 임산부에게 역효과를 주기 십상이며 오히려 임산부의 심리적 안정과 양질의 영양공급이 우선시돼야 한다.
통역사인 예비엄마 강모 씨(30)는 최근 ‘태교’ 때문에 고민이 이만저만한 게 아니다. 최근 또래 엄마들 사이에서 태교를 위해 같이 ‘수학 스터디’를 하자는 제안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는 고등학교 시절 수학공부 포기자, 속칭 ‘수포자’였고, 솔직히 10년도 넘은 지금 다시 수학책을 펴는 게 끔찍하다. 하지만 ‘아이를 위해 해야 한다’는 육아 커뮤니티나 주변 친구들의 말에 과외라도 받아야 하는 것 아닌가 자조하고 있다.
똑똑한 아이를 낳고 싶은 마음이야 부모라면 누구나 마찬가지다. 엄마들은 아이를 위한다며 구구단을 넘어 19*19단을 외우고, 고등학교 때 보던 ‘수학의 정석’을 다시 꺼내든다. 하지만 수학 공부에 매달려 스트레스를 받는 것은 오히려 태아에게 독이 될 수 있다. 예비 엄마들이 자녀가 수포자로 전락하지 않게 하려고 수학태교에 나선다는 한 매체의 보도와 관련, 모 정신과 의사는 ‘태어나기 전부터 아동학대’라고 일침을 가했다.
태교의 중요성이 주목받은 것은 오스트리아의 정신분석학 창시자 프로이드가 ‘출생 전 심리학’을 발표한 이후부터다. 이후 많은 연구를 바탕으로 태아가 외부자극에 반응한다는 사실이 정설로 밝혀졌다. 특히 태아가 주위 자극과 반응하며 지능이 높아지거나 건강해진다는 연구결과는 흔히 볼 수 있다.
고현주 호산여성병원 산부인과 원장은 “태교는 자궁환경을 온전하게 유지시켜 태아가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라며 “엄마가 억지로 수학이나 영어를 공부한다고 해서 이같은 지적 성과가 자녀에게 전해지는 것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수학태교를 열심히 했다고 훗날 아이가 ‘수학천재’가 될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의미다. 이와 함께 유행하는 ‘영어태교’도 마찬가지다. 간혹 태담(胎談)을 영어로 나누겠다며 영어학원을 다니는 부모가 늘고 있는데, 태아가 영어를 언어로 인식하기란 불가능하다.
전문가들은 수학태교를 한다고, 영어로 태담을 나눈다고 아이가 공부를 잘 하게 될 것으로 생각하는 건 상식 밖의 행동이라고 입을 모은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아이가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충분한 영양을 섭취하고,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조급해하지 않고 여유를 갖는 것이다.
사람이 느끼는 감각은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 등 오감이다. 이들 감각으로 다양한 정보와 지식을 얻는 게 학습이다. 태아도 오감을 갖고 있지만 직접 받아들일 수 있는 정보는 거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가령 탯줄로부터 영양을 공급받을 뿐 음식을 직접 먹지 않으니 맛을 느끼지 못하고, 눈을 감고 있어 시각적으로 인지할 일이 없다.
다만 모체의 움직임이나 주위 소음에는 촉각이나 청각이 일부 반응할 수 있다. 태아는 25주가 경과하면 제일 먼저 청각이 발달한다. 소리는 인체를 타고 전달될 수 있어 클래식음악 등을 들려주면 긍정적이다. 클래식음악의 화성이나 리듬은 일종의 수학적 원리가 바탕이 되므로 음악태교는 수학문제를 푸는 것보다 태아 발달에 훨씬 도움이 된다고 보는 게 합리적이다. 다만 아무리 좋은 음악도 엄마가 듣기 싫으면 스트레스가 될 수 있어 가요, 경음악, 행진곡, 국악 등 평소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부담 없이 즐겁게 듣는 것도 도움이 된다.
태교보다 중요한 게 탯줄로 전해지는 성분이다. 엄마가 먹은 것은 아기에게 그대로 전해진다. 임신 기간 중 고지방식, 고탄수화물식, 음주, 흡연 등을 삼가야 하는 이유다.
고현주 원장은 “산모가 스트레스를 받으면 내분비 및 염증성 스테로이드 호르몬이 증가하고, 이때 태내 신경세포 증식 및 분화에 영향을 준다”며 “산모에게 만성적 스트레스와 관련한 지표물질의 상승은 출생 후 아이의 뇌내 특정 영역의 체적 변화와 활동성에 영향을 미치며, 학습능력에 미치는 집중력과 인지기능에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산모는 공부해야 한다는 압박, 태교를 해야 한다는 스트레스를 갖기 보다는 조기진통을 피하고 선물처럼 주어진 태아와 편안하게 교감하며 즐기는 게 이롭다”고 덧붙였다.
무분별하게 과거의 교과서를 펼치는 것보다 출생 후 모유 수유를 하는 편이 아이의 지능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될 확률이 높다. 고 원장은 “일부 태아는 모유의 긴사슬다가불포화지방산(Long chain polyunsaturated fatty acids: LC-PUFAS, 대표적인 게 DHA, EPA)이라는 성분과 반응해 지능을 높아지는 유전자를 갖고 있다”며 “이런 아이라면 지능지수가 6.5~7.3 정도 올라갈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똑똑한 아이로 키우고 싶다면 우선 주변의 말에 휘둘리지 않고 과학적 근거가 없는 낭설은 적당히 걸러 들을 수 있는 ‘현명한 엄마’가 되는 게 우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