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증의 정도를 객관화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의학계에서는 통증을 시각화해 묘사한 통증척도(VAS, Visual Analogue Scale, 10점 만점)를 사용한다. 주사를 맞을 때 따끔한 정도가 3이라면 치통은 4.5, 출산의 고통이 7.5, 복합부위통증증후군(CRPS) 등 희귀난치성 질환으로 일상이 불가능할 정도의 극심한 고통은 8로 수치화하고 있다.
통증은 수용체를 지닌 특수한 신경이 자극을 받아 생기는 불쾌한 감각이다. 다른 질환에 의한 증상일 뿐만 아니라 그 자체만으로 치료의 대상이 돼야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환자들은 통증을 가볍게 생각하고, 참고 견뎌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잘못된 인식이 조기에 적절한 통증 치료를 받지 못하게 하는 장애물로 작용하고 있다.
통증은 급성과 만성으로 나뉜다. 급성통증은 조직 및 장기가 손상되거나 일부 신체조직에 염증이 생겼을 때 급작스럽게 나타나는 증상이며 몸에서 위험을 알려주는 일종의 경고로 꼭 필요한 존재다.
만성통증은 조기에 질병을 적절히 치료하지 못했거나, 환자가 통증을 참거나 무시해 고통이 오래 지속되는 것을 의미한다. 통증이 만성화되면 불안감, 우울증, 수면장애 등 심리적인 변화가 동반되고 삶의 질이 급격히 떨어진다.
통증척도의 상위를 차지하는 통증은 대부분 신경병증으로 인해 발생한다. 말초신경계와 중추신경계 손상 또는 신경전달체계 이상으로 발생한다. 찌르는 듯한 느낌, 쑤시고 칼로 베는 느낌, 화끈거림, 감각저하, 무감각 등 다른 통증과 증상 양상이 다르다. 극심한 통증을 유발하는 신경병증엔 어떤 게 있을까.
복합부위통증증후군은 가장 극심한 통증을 유발하는 신경병성 희귀질환으로 교통사고 등 외상이나 수술 후유증으로 발생한다. 건들기만 해도 특정 부위가 화끈거리고 바늘로 쿡쿡 찌르는 듯한 통증이 수시로 찾아온다. 예고없이 찾아오는 극심한 통증 탓에 일상생활에 큰 지장을 받는다. 심한 경우 불면증이나 우울증, 분노, 불안 등 심리적인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 X-레이나 자기공명영상(MRI) 등 영상 촬영으로도 정확하게 진단할 수 없고 몸에 특별한 이상이 발견되지 않기 때문에 ‘엄살’이라는 오해를 받기도 한다.
미국 의사 사일러스 웨어 미첼(Silas Weir Mitchell)이 남북전쟁(1861~1865) 당시 총상 환자에서 ‘작열통(causalgia)’이란 단어를 처음으로 사용하며 복합부위통증증후군을 언급했다. 원래 반사성교감신경질환으로 불리다가 1993년 세계통증연구학회에 의해 현재 병명으로 바뀌었다.
신진우 서울아산병원 통증클리닉 마취통증학과 교수는 “복합부위통증증후군의 발병 원인은 아직 명확히 규명되지 않았지만 신경조직 손상이나 기능이상에 의한 비정상적인 흥분이 말초신경 또는 중추신경을 예민하게 하고, 자율신경계와 연계해 이상반응을 일으키는 것으로 추측된다”며 “주요 증상으로 타는 듯 화끈거리는 작열통이나 경미한 자극에도 과도하게 반응하는 이질통, 감각과민 등이 사지에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주로 40대 초반에서 많이 나타나며 여성 환자가 남성보다 2~3배 가량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교통사고 등 외상이나 수술 후 발생할 때가 많지만 주사나 가벼운 상처 등으로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대부분 팔과 다리에 화끈거리는 통증이 느껴지고 혈관이상으로 피부색이 자주색 또는 밝은 붉은색으로 변하거나 창백해지기도 한다. 통증이 생긴 부위는 다른 부위에 비해 체온이 1도 이상 차거나 뜨거워진다. 이와 함께 근력이 약화되거나 운동 범위가 줄어 운동기능 장애가 나타나며 지각과민, 땀 분비 변화, 감각저하, 떨림 등이 증상도 보인다.
신근만 한림대 강동성심병원 마취통증의학과 교수는 “신경의 문제이기 때문에 둔탁한 아픔보다는 ‘전기같이 찌릿하다’거나 ‘칼로 베는 듯한 날카로움’이라고 곧잘 표현된다”며 “신경이 심하게 변성되면 사람과 살짝 스쳐도 당사자는 심한 고통을 느껴 괴로워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일상생활이 힘들다는 자괴감에 우울증을 함께 겪는 환자가 많다”고 덧붙였다.
이 질환은 원인이 다양하고 복합적이기 때문에 명확한 치료법이 확립돼 있지 않다. 현재 약물요법, 신경차단술 및 박동성 고주파열응고술, 척수신경자극기삽입술 등이 시행된다. 척수신경자극기삽입술은 통증과 연관된 척수 부위에 신경자극기를 삽입, 인위적으로 일정한 전기자극을 줘 통증을 감소시킨다. 이밖에 신경 흥분성을 감소시켜 효과를 보는 케타민·리도카인 정맥주사나 최근 국내에 도입된 척수강내 약제 지속주입장치삽입술, 우울증 및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대비를 위한 심리학적 치료와 물리치료 등을 시행한다.
하지만 선진국과 달리 장애등급이 인정되지 않아 환자의 경제적 부담이 큰 편이다. 통증 부위에 전기자극을 줘 고통을 줄이는 척수신경자극기삽입술은 총 비용 2400만원 중 300만원, 척수자극기 배터리 교체 비용 1000만원 중 절반인 500만원을 환자가 부담해야 하는 상황이다.
‘통증의 왕’으로 불리는 대상포진의 경우 산통보다 통증척도의 윗자리를 차지할 정도로 심한 통증을 유발한다. 발병 초기 나타나는 열과 근육통이 감기나 오십견과 비슷해 치료를 미루다가 병을 키우는 경우가 많다.
바늘로 찌르는 듯한 통증이 느껴지다가 4~5일 뒤 피부에 발진이 생기면 대상포진을 의심해볼 수 있다. 흔히 대상포진 통증은 ‘수십 개의 바늘로 동시에 찌르는 듯한 느낌’, ‘벌레가 기어가는 느낌’ 등으로 표현된다.
대상(帶狀)이라는 병명처럼 몸의 한쪽에 띠 모양으로 발진이 생겨난다. 통증과 함께 수포나 발진이 옆구리 등 가슴 등에 생겼다면 병원을 찾는 게 좋다.
신경절이 있는 신체 어느 부위에서나 발생하며 발병 부위에 따라 다양한 합병증을 동반한다. 대상포진 환자 중 10~25%가 겪는 안면 대상포진의 경우 각막염, 결막염, 녹내장 등을 유발함은 물론 뇌졸중 위험을 4배까지 높인다. 이밖에 간염, 심근염, 관절염 등 다양한 합병증을 남긴다.
대상포진의 원인은 면역력 저하다. 잠복해 있던 수두대상포진바이러스가 면역력이 떨어졌을 때 발병한다. 50세 이상의 중장년층, 수술을 받은 환자, 당뇨병 등 만성질환자 등에서 발생률이 높다.
유독 여름철에 자주 발생하는 경향을 나타낸다. 이는 냉방기 가동으로 인해 실내외 온도차가 커지면서 면역력이 떨어지기 때문으로 추측된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조사 결과 지난해 전체 대상포진 환자의 60% 가량이 50대였다. 특히 50대 여성은 남성보다 발생률이 1.9배 높았다. 갱년기에 따른 신체 변화, 배우자의 은퇴와 자녀의 결혼 등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원인으로 추정된다.
대상포진으로 인한 환자 수와 의료비도 증가하고 있다. 2010년 약 48만명이었던 대상포진 환자는 지난해 약 64만명으로 34% 증가했다. 같은 기간 전체 진료비도 444억원에서 683억 원으로 53.9% 뛰었다. 고령화가 가속화되면서 사회경제적 부담은 더욱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중장년층은 신경통 등 대상포진 후유증의 발생률이 높다. 치료가 끝난 뒤에도 염증 부위의 통증이 최대 수 년까지 지속될 수 있다. 이로 인해 옷을 입거나 몸을 움직일 때 고통이 뒤따르기도 한다. 60세 이상 대상포진 환자 10명 중 6명이 후유증으로 신경통을 경험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만성질환자와 폐경기여성은 대표적으로 면역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대상포진 고위험군에 속한다. 최근 논문에 따르면 수술 경험이 있는 사람, 여성, 흡연자인 경우 통증이 심하고 오래 지속된다.
또 대상포진 환자의 50%는 발병 부위에 수술을 받은 경험이 있다. 이는 수술로 인한 신경섬유 약화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당뇨병 환자는 일반인보다 세포매개면역 기능이 떨어져 대상포진에 걸릴 확률이 높다. 미국 연구진이 당뇨병 환자 약 40만명을 10년간 추적관찰한 결과 65세 이상 제2형 당뇨병 환자의 대상포진 발병률이 일반인보다 3.12배 높았다. 반면 30세 이전에 주로 발병하는 제1형 당뇨병은 대상포진 발병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대상포진을 예방하려면 건강한 생활습관이 필수다. 잦은 열대야로 인해 숙면을 취하지 못하는 여름철에는 규칙적인 생활과 운동, 영양가 있는 식단을 유지해 면역력이 저하되지 않도록 각별히 유의해야 한다.
치료 시기가 늦어질수록 합병증의 발생 위험이 높아지므로 욱신욱신한 통증이나 물집이 생기면 즉시 병원을 찾아가 치료한다. 증상 발현 후 3일(72시간) 이내 항바이러스제를 투여해야 통증 정도와 합병증 발생 가능성을 줄일 수 있다.
김원진 강남차병원 내분비내과 교수는 “대상포진에 걸린 환자는 마약성 진통제를 처방받아야 할 만큼 극심한 통증을 겪고 우울증, 수면장애, 식욕부진 등으로 삶의 질을 현저히 저하된다”며 “폐경기여성이나 당뇨병 등 만성질환자는 대상포진 고위험군이라는 사실을 자각하고 대비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