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 내 무자격 약제병에 대한 대안으로 내세운 법안이 또 무산돼 대책마련이 시급하다. 국회에 따르면 육군 중장 출신인 송영근 새누리당 국회의원은 약사회의 반발로 ‘군보건의료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철회했다. 2013년 김성주 통합민주당 국회의원도 군대와 농어촌 등 약사가 부족한 곳의 의약품 안전 강화를 위해 약무장교와 공중보건약사제도를 도입하는 방안을 추진했지만 실패로 끝났다.
송의원의 법안은 군인, 군무원 등이 소정의 교육을 이수한 이후 약사를 비롯해 간호조무사, 임상병리사, 방사선사, 응급구조사에 준하는 군보건의료보조인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내용을 담았다. 이에 약사들은 한시적이라고 해도 무자격자를 양산해 군인의 건강권을 위협하는 법안으로 즉각 철회해줄 것을 요청하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약사회는 의사와 같이 6년간 교육을 받는 약사를 간호조무사와 같은 보조인으로 인식한다는 것에 대해 반발하며 대안으로 약무사관(약사장교) 도입과 약사면허자 별도 관리를 통한 군무원 같은 인력의 적정배치가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 의원의 개정안은 약학대학에 다니거나 약사 자격이 있는 사람이 약무장교나 약무사관후보생, 또는 공중보건약사로 병역 의무를 질 수 있도록 했지만 이 법안도 불발로 끝났다.
감사원이 2012년 5월부터 6월까지 국방부를 대상으로 실시한 감사 결과, 군병원 10곳에서 약사면허가 없는 약제병이 약제장교의 지휘·감독을 받지 않고 2만2902건의 의약품을 불법 조제한 것으로 드러난 바 있다.
문제는 규모가 큰 군병원도 문제지만 독립중대, 대대급에도 의료나 약료를 담당할 인원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부대에서는 일반병이 담당하는 경우가 많아 잘못된 약을 복용하는 사례도 있다.
서해안의 한 독립중대에서 약품 담당으로 근무했던 한 전역자는 “약의 성분은 물론 약 이름도 모르는 상태에서 설사약과 지사제를 잘못 아는 바람에 설사환자에게 설사약을 준 경험이 있다”며 “군대 특성상 쉽게 근무에서 빠질 수 없기 때문에 이런 현상은 비일비재하다고 알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병용금기약물 같은 건 배우지도 못했다”며 “편의점에서 파는 일반약들이 대부분이긴 하지만 병용해선 안되는 약물이 있다는 건 제대한 후에나 알았다”고 말했다.
한편 약대 6년제 전환 이후 남학생의 군입대 문제도 해결되지 않고 있다. 매년 1월 중 진행되는 약사국시 일정을 고려했을 때 현재 학사장교 지원 시스템은 예비 약사들이 1년의 시간을 낭비할 수밖에 없다. 학사장교 지원은 입대 전 해 연말에 진행되는 만큼 약사, 한약사 국시를 앞두고 있는 예비 졸업생은 자격증이 없어 지원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간호장교 전형의 경우 예비 간호사도 지원한 뒤 국가고시에 떨어지면 탈락 처리하는데 예비 약사는 그런 혜택이 없다. 약대 6년제 전환과 더불어 군미필자인 남학생들의 연령대가 높아지면서 학생들 사이에선 군입대에 대한 우려가 기존 4년제보다 높아졌다. 약대생은 약제병, 약제 장교 등의 지원이 가능하지만 피트 준비 기간에 6년으로 전체 대학 재학 기간도 늘면서 나이로 인한 불이익 등을 고민하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서울 송파구의 한 개원약사는 “의사처럼 의무장교나 공중보건의를 해야 할 의무가 없기 때문에 일반병으로 다녀오면 사회에 그만큼 빨리 나갈 수 있어 장교로 나서는 사람이 적은 게 현실”이라고 밝혔다.
한 외자사의 약제장교 출신인 모 부장은 “약사장교로 근무해봐야 의무장교와 동등한 대우를 받는게 아니라 간호장교처럼 보조인력 취급받는다”며 “사회에 나와서 큰 도움도 되지 않는 경력을 구태여 할 필요가 있는가”라고 되물었다.
인천시의 한 개원약사는 “군대에 일반병으로 지원했을 때 약대 출신이기 때문에 병원에서 근무할 줄 알았지만 일반보병부대에서 병영생활을 했다”며 “일반병으로 복무하는 약대생들만이라도 제대로 관리하면 지금 상황처럼 나쁘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보의 근무를 마치고 개원한 서울의 한 원장은 "의대와 같은 6년제 공부를 하고 약사가 되는 사람들도 의료인처럼 국가를 위해 군대나 의료취약지역에서 근무를 하면 된다"며 "의료인도 군대나 공보의가 좋아서 하는게 아닌 것처럼 의무를 다하는 게 직능의 권위를 세우는 길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군대에서 일반병사에 의한 조제·투약은 공공연한 사실로 국방부와 보건복지부가 합리적 대안을 만들기 위해 공청회를 열어야 한다는 게 약사계의 주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