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전역을 공포에 떨게 만들었던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이 31일째 확진자가 나오지 않으면서 사실상 종식 국면에 접어들었다. 사망자도 지난달 12일 이후 24일째 발생하지 않았다. 이에 정부는 지난달 28일 ‘메르스 대응 범정부 대책회의’를 열고 국내 메르스의 사실상 종식을 선언했다. 지난 5월 20일 첫 환자가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은 이후 69일만이다. 하지만 최종 환자가 음성 판정을 받운 날부터 28일이 지나야 공식적으로 메르스 종식을 선언할 수 있다는 점에서 아직 메르스 사태는 현재 진행 중이다.
황교안 국무총리는 지난달 28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 법무부·행자부·문체부·보건복지부·국민안전처 장관, 기재부2·교육부·외교부2 차관 등이 참석한 ‘메르스 대응 범정부 대책회의’에서 “메르스 사태로 국민 여러분께 불안과 불편을 끼쳐 드려 총리로서 송구스럽다”며 “격리자가 모두 해제되는 등 여러 상황을 종합해볼 때 국민들은 이제 안심해도 좋다는 게 의료계와 정부의 판단”이라며 사실상 종식을 선언했다.
메르스 때문에 한국 방문 자제를 권고 했던 중국(일부 지방정부)·체코·러시아·대만·아랍에미리트·몽골·베트남 등 7개 국가도 관련 권고를 해제했다. 외교부에 따르면 28일 베트남을 마지막으로 7개국이 자국민에게 내렸던 한국 방문 자제 권고도 모두 풀었다. 이에 반해 ‘메르스 확산 차단과 국민안전을 위한 시민공대위’ 등 일부 시민단체는 “종식 선언 어디에도 정부 잘못에 대한 진솔한 인정과 반성이 없다”며 “대통령이 먼저 국민 앞에서 사과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메르스는 36명의 생명을 앗아갔을 뿐만 아니라 의료계 전체에 심각한 타격을 남겼다. 확진 환자가 발생하거나 거쳐간 대학병원과 병·의원은 외래환자가 급감해 심각한 재정난에 직면했고, 서울 중구의 하나로의원은 아예 문을 닫기도 했다. 임기 1년 6개월로 비교적 장수했던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장관은 초기 대응에 실패한 책임을 지고 결국 옷을 벗어야 했다.
국내 최초 메르스 환자(68)는 바레인에서 사업을 하다가 사우디아라비아를 거쳐 지난 5월 4일 귀국했다. 같은 달 11일 처음 증상이 나타났지만 20일에야 메르스로 확진됐다. 이후 환자 수는 걷잡을 수 없이 늘었다. 6월 9일 환자 수는 100명을 돌파했고, 마지막 환자가 발생한 지난달 4일까지 총 186명이 메르스로 확진됐다.
국내 최고 병원 중 하나로 꼽히던 삼성서울병원은 90명의 환자가 발생해 메르스 근원지라는 오명을 얻었고, 37일간 부분폐쇄해 매출 면에서도 큰 타격을 받았다. 환자 수는 평소의 10분의 1 수준인 800여명으로 줄었다.
자가격리자 수는 더 빠르게 늘었다. 6월2일 1000명을 넘었고 같은 달 17일엔 6729명까지 급증했다. 격리를 경험한 사람만 1만6693명에 달한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정부의 소극적인 자가격리 방침에 반발하며 메르스 경유 병원 명단을 발표해 복지부와 대립하기도 했다.
의료진은 전체 환자 186명 중 39명이 병원 관련 종사자일 정도로 메르스와 사투를 벌였다. 이중 상당수는 메르스 확진환자를 돌보다 감염됐다. 정부가 병원에 지급한 레벨D 보호구는 총 99만3826개, N95마스크는 151만280개에 달했다. 특이한 점은 환자 이송을 담당한 119구급대원의 경우 감염 사례가 없었다.
발생 초기 별것 아니라고 생각됐던 메르스가 급속도로 확산된 이유로는 △정부의 안일한 대응 △의료진과 일반 대중의 메르스 이해 부족 △병원내 예방 및 통제 조치 부실 △혼잡한 병원 구조 △여러 병원에서 진료받는 문화 △보호자 및 간병인 문화 등이 꼽힌다.
특히 정부의 대응은 매번 늦었다. 공세적이고 주도적인 대응으로 상황을 통제하기는커녕 국민 여론에 떠밀려 대책을 내놓기에 급급했다. 이재갑 한림대 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전문가들은 “당국이 머뭇머뭇하며 초기 방역에 실패한 게 메르스 확산의 결정적인 원인”이라며 “1차 저지선을 심하다 싶을 정도로 강하게 설정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해 초기 방역이 무너졌다”고 지적했다. 이어 “지금이라도 신속한 검사 및 격리시스템을 갖추고 예산과 인력을 과감히 투입하는 등 새판을 짜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정부가 초기 확진자의 소재를 온전히 파악하지 못하면서 감염자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신속한 대처 없이 질병관리본부에서 발표한 메르스 예방수칙은 국민들을 분노하게 만들었다. ‘낙타 고기 먹지 않기’와 같은 내용이 널리 회자된 것은 이런 정서를 반영한다.
급성호흡기증후군(사스·SARS)와 신종플루 때와 달리 병원의 실명을 즉각 공개하지 않은 부분도 많은 비판을 받았다. 문 전 장관은 “병원명 비공개로 인한 고민의 많은 부분은 근거가 없다”며 “메르스는 밀접 접촉을 통해 감염되기 때문에 어떤 환자가 해당 병원에 머물렀다고 해서 그 병원에 가면 안 된다고 하는 것은 지나친 우려”라고 말해 빈축을 샀다.
이처럼 환자 발생 병원명을 공개하라는 요구가 빗발치는데도 ‘병원명 공개 시 득보다 실이 크다’며 버티다 격리자 수가 2000명을 넘어서는 등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자 등 여론에 떠밀리듯 정보를 공개했다. 하지만 이로 인해 SNS와 인터넷을 통한 각종 악성 루머가 퍼지면서 많은 병원들이 피해를 받았다.
문 전 장관이 메르스에 마스크는 아무런 예방 효과가 없다고 말하면서 자신은 마스크를 쓰고 병원을 순찰하는 모습도 거센 비판을 받았다. 이같은 행태는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감을 떨어뜨렸고 메르스에 대한 공포심을 키웠다.
컨트롤타워도 수차례 변경되며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였다. 메르스 초기에는 질병관리본부가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다가 5월 28일 복지부에 중앙메르스관리대책본부가 차려지고 장옥주 복지부 차관이 본부장을 맡았다. 6월 2일 본부장이 문형표 복지부 장관으로 격상됐으나 6월 8일 다시 종합대응 태스크포스(TF)가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게 됐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일선 현장에서 허둥지둥하기 일쑤였고, 급기야 서울시 등 일부 지방자치단체는 정부와 다른 독자노선을 선언하는 사태까지 벌어지기도 했다.
국회 입법조사처도 유대운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요청에 따라 작성한 ‘메르스 사태로 본 재난대응체계의 문제점 및 개선방안 조사 분석 보고서’를 통해 재난지휘 체제의 혼선이 메르스 부실 대응과 혼란을 부추겼다고 지적했다.
한국은 미국 질병통제센터(CDC)에 해당하는 질병관리본부가 감염병 대응·예방 기능을 수행하고, 하부조직인 국립보건연구원이 감염병 R&D를 수행해 위기대응 능력이 분산된다. 또 각 부처에서 따로 감염병 관련 R&D를 진행하다보니 분야 간 협력을 통한 융복합 연구가 어렵다. 현재 수행 중인 범부처 사업도 목적만 공유할 뿐, 실질적으로는 예산을 나눠 부처별로 개별적인 사업을 진행하는 방식이다. 이로 인해 국내에서도 감염병 보건의료 분야의 R&D 기획과 예산 조정은 물론, 연구주체간 관계 조정과 인력 지원 등 공공부문 R&D 역량을 모두 집약할 수 있는 ‘범부처 상위 컨트롤타워’ 설립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최근 열린 ‘국가적 감염병 위기 대응을 위한 과학기술 역할 강화 방안’ 토론회에서 송대섭 고려대 약대 교수는 “감염병 위기 극복을 위해서는 생명공학뿐만 아니라 다양한 과학기술 분야와의 융합적 접근을 통한 해결방법 개발이 필요하기 때문에 범부처 차원의 다학제 연구가 필요하다”며 “방역 전담 부처와 별도로 과학기술 투자를 담당하는 부처를 중심으로 감염병 R&D 컨트롤타워 기능을 수행토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밀집된 입원실과 응급실도 메르스 확산의 주범이다. 국내 메르스 첫 감염자와 같은 병실에서 생활한 배우자와 옆 침대 환자, 병문안을 왔던 가족들이 감염된 것은 다인실 구조의 입원실 때문이라는 게 공통적인 지적사항이다.
메르스 확진자(2015년 6월 9일자) 95명 가운데 약 50%가 병동에서 메르스에 감염됐다. 최초 발생병원인 평택성모병원의 경우 감염자 36명 중 다수가 다인실 입원 환자로 추정된다.
또 고열과 기침으로 병원을 찾은 메르스 환자가 격리되지 않은 채 응급실에 장기간 체류하면서 많은 환자와 가족, 의료진을 감염시켰다.
해외의 경우 응급실은 입원 전까지 1인실에서 진료를 받지만, 국내의 경우 비좁은 공간에 내무반식 침실로 운영된다. 여기에 환자의 차례가 될 때까지 장시간 머무르는 과정에서 각종 병원균에 노출된다. 한 대형병원 관계자는 “응급실은 과밀화 때문에 병동에 비해 감염 통제 자체가 어려운 공간”이라며 “우리 병원 응급실은 하루에 내원환자와 보호자 200여명과 직원 50명이 오가기 때문에 바이러스가 퍼지기 시작하면 겉잡을 수 없다”고 말했다.
인력과 시설이 열악한 중소병원의 사정은 더욱 암담하다. 송형곤 이천병원 응급의료센터장은 “대형병원은 외래에서 입원 예약을 하는 사람을 위해 병상의 90∼95%를 확보하는 반면 응급실용으로 비워두는 병상은 5∼10%에 불과하다”며 “환자가 1인실 또는 6인실 등 특정 병실을 원하지만 남는 병상이 나지 않아 응급실에서만 머물게 되고, 결국 응급실에서 치료를 끝내고 퇴원하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응급실로 환자가 얼마나 들어올지 모르기 때문에 병원간 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 병실을 무작정 응급실용으로 비워놓기는 어렵다”며 “삼성서울병원의 경우 응급실을 3개 구역으로 나눠 중증도나 감염 위험도에 따라 환자를 구분하지만, 이들이 제때 일반 병실로 올라가지 못하면 환자가 뒤섞일 수 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김홍빈 분당서울대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급성 호흡기 감염자에 대한 응급실 선별진료소 운영과 의료전달체계 개선이 필요하다”며 “다인실(일반병실) 확대안은 재검토하는 대신 1·2인실을 확대하고 급성호흡기 감염병 등에 대한 선제격리를 인정해 의심단계부터 적극적으로 조치해야 한다”밝혔다.
환자에 대한 병문안 문화와 간병 문화도 개선돼야 할 문제다. 메르스 환자 중 약 40%는 환자 가족이나 간병인이었다. 간병인이 상주하는 병원은 그렇지 않은 병원에 비해 병원감염 발생률이 2.87배 높았다.
해외에서는 이미 전문 간병인들을 통해 환자를 돌보고 철저한 위생관리로 감염을 예방한다. 국내의 경우 일반인들의 간병문화를 지양하고 전문 간호인력을 보충해 현재 시행되고 있는 포괄간호서비스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
포괄간호서비스는 간병인이 아닌 간호사·간호조무사 등이 전문적인 간호서비스를 제공해 환자 가족의 간병 부담을 덜고 의료서비스의 질을 높이는 제도다. 정부는 포괄간호서비스를 2018년 전체 병원으로 확대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메르스 사태와 같은 비상상황이 터졌을 때 ‘최전방’에서 움직일 공공의료기관의 시설, 인력, 장비를 대폭 확충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국내 공공의료의 골간을 이루는 지역거점 공공병원인 지방의료원을 더욱 보강하는 동시에 이들 병원이 제 구실을 할 수 있도록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철저하게 관리감독하고 제도적 지원체제를 마련해야 한다는 의미다.
전국보건의료노조 관계자는 “국립중앙의료원에 감염병전문센터를 설치해야 한다”며 “이 시설을 중심으로 한국원자력의학원, 경찰병원, 교통병원 등 특수목적 공공병원들을 묶어 국가재난대책 병원집단을 수립하는 방안도 고민해야 한다”고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