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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혈 이식, 미래 의료기술 맞나 … 유효성 논란 여전
  • 박정환 기자
  • 등록 2015-08-03 09:13:24
  • 수정 2015-08-05 10:3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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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5만건 중 기증제대혈 10% 불과 … 이용 범위 극히 제한적, 가족제대혈 사용시 재발 위험

현대의학으로 고칠 수 없는 난치병 환자가 갈수록 늘자 의학계는 새 치료법의 연구개발에 혈안이 됐다. 질병을 치료해 환자 만족도를 높이고 동시에 병원의 수익도 향상시키겠다는 의도였다. 2000년대 들어 줄기세포와 함께 난치병 치료법의 하나로 관심을 모은 게 제대혈이식이다.

출산시 탯줄에서 채혈한 제대혈을 냉동보관했다가 나중에 난치병에 걸렸을 때 사용한다는 말로 서울 강남권, 돈 좀 있다는 부모들의 귀를 솔깃하게 했다. 상당히 고가인데도 자녀의 제대혈을 보관하려는 사람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었고, 제대혈 보관업체 수도 덩달아 늘었다. 하지만 최근 고가를 들여 보관한 제대혈이 무용지물이라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논란이 커지고 있다.

또 일부 병원은 정부의 허가없이 제대혈을 무단으로 이식해 검찰조사를 받기도 했다. 제대혈 치료 사용률은 0.07~1.3% 수준에 불과하지만 난치병 환자들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거액의 진료비를 지불하는 실정이다. 난치병 환자들의 이같은 절박한 심정을 악용해 불법 행위를 저지른 셈이다.

제대혈은 ‘제대(탯줄)속에 흐르는 혈액’으로 분만시 엄마와 태아를 연결하는 탯줄에서 출생할 때 단 한번만 채혈이 가능하다. 보통 70~100㎖ 채혈되며 태아나 산모에게는 부담이 없다. 채혈된 혈액 속에는 연골, 뼈, 근육, 신경을 만들어 내는 중간엽 줄기세포와 골수나 혈액을 새롭게 만들어 내는 조혈모세포가 풍부하게 들어 있다. 덕분에 제대혈을 채취해 보존해두면 아기 자신이나 가족의 백혈병, 소아암, 재생불량성 빈혈 등 난치병 치료에 활용할 수 있다는 게 제대혈 보관업체 측의 설명이다.
 
일반적인 골수이식은 조직적합성항원 6개가 모두 일치해야 하기 때문에 제공자가 부족할뿐더러 적합한 것을 찾기 힘들어 이식 치료에 어려움을 겪을 때가 많다. 반면 제대혈은 자신의 혈액이므로 이같은 문제가 없다. 제대혈 업계에서는 항원 6개 중 4개 이상만 일치해도 이식 가능하므로 부모나 형제의 난치병 치료에도 활용할 수 있고 완치율도 높다고 선전한다.

현재 제대혈의 활용범위는 골수이식으로 치료가 가능한 질환에 머물러 있지만 췌장세포(당뇨병), 심장근육세포(심근경색증), 신경세포(척수손상, 파킨슨병, 알프하이머성 치매, 뇌졸증), 연골세포(류마티스성관절염, 퇴행성관절염), 간세포(간질환), 근육세포(근이양증), 폐세포(미숙아 폐질환) 등의 치료에 적용하는 방법이 연구되고 있다.

국내 제대혈 치료 연구는 2000년대 초부터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으며, 이에 맞춰 제대혈 보관도 대중에게 소개됐다. 현재 전국의 제대혈은행 업체는 보건복지부가 위탁한 서울특별시제대혈은행, 차병원기증제대혈은행, 녹십자제대혈은행, 보령아이맘셀뱅크제대혈은행 메디포스트제대혈은행, 아이코드제대혈은행, 베이비셀제대혈은행, 드림코드제대혈은행, 라이프코드제대혈은행 등 17곳이다.

이들 업체가 보관하고 있는 제대혈은 2013년 말 기준으로 총 44만6290건에 달한다. 이 중 제대혈을 냉동 보관하다 자신이나 부모·형제에게 사용하는 ‘가족제대혈’이 40만5500건(90%), 타인의 질병치료와 의학연구를 목적으로 사용하는 ‘기증제대혈’이 4790건(10%)를 차지한다. 반면 미국 등 해외의 경우 기증 제대혈은행이 압도적으로 많다.

가족 제대혈은 신생아가 태어날 때 탯줄에서 추출한 제대혈을 10년, 20년 등 특정 기간을 정해 비용을 부담해 보관업체에 맡기는 형태로 100만~400만원이 소요된다. 기증 제대혈은 같은 방법으로 추출한 제대혈을 제대혈은행에 기증해 공공의 목적으로 쓰는 것이다. 기증 제대혈 보관은 정부 예산이 투입된다. 기증 제대혈은행 운영을 위해 정부는 매년 22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제대혈을 보관하고 있다.

하지만 제대혈 보관사업 초기부터 유효성 논란이 끊이질 않았으며 일부 제대혈 보관업체, 즉 제대혈 은행만 이익을 거두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최근엔 일부 시민단체가 고가의 가족 제대혈 보관사업이 사기라고 주장하면서 논란이 증폭됐다. 선민네트워크, 올바른시장경제를위한국민연합 등 5개 시민단체는 지난 24일 기자회견을 열어 백혈병에 걸린 자녀의 제대혈을 이식하려다 의사에게서 제대혈 치료가 적합하지 않다는 얘기를 들은 사례를 들며 “자가 제대혈은 난치병 치료에 쓸 수 없으며, 보건복지부가 이를 알고도 묵인해 제대혈은행들만 이익을 보고 있어 사기극”이라고 주장했다.
제대혈 사기 논란은 젊은 엄마들의 커뮤니티나 인터넷카페 등을 통해 급속도로 퍼져나가며 폭발적인 조회수와 댓글을 기록하고 있다.

이들 단체가 제대혈이 사기라고 주장한 근거는 무엇일까. 가장 큰 문제는 비용이 고가임에도 활용 사례가 극히 제한적이라는 사실이다. 미국 골수이식학회가 2008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보관된 자신의 제대혈을 사용할 확률은 많게는 0.04%에 그친다. 국제 의학계에서도 이 같은 이유로 가족 제대혈보다 기증 제대혈 활성화를 권고하고 있고, 이탈리아에서는 제대혈의 가족 보관을 법으로 금지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제대혈은행에 보관된 40만5500건의 제대혈 중 치료용으로 이식된 것은 179건에 불과했다.

한 대학병원 교수는 “백혈병, 다발성골수종, 악성림프종 등 조혈모세포(골수에서 자가복제 및 분화를 통해 백혈구·적혈구·혈소판 등의 혈액세포를 만들어 내는 세포) 이식이 필요한 질환의 경우 가족 제대혈보다 기증 제대혈 사용을 권장한다”며 “태어날 때부터 발병인자를 갖고 있다면 자신의 제대혈을 사용할 경우 재발 위험이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또다른 업계 관계자는 “조직적합성항원(HLA)이 맞는 기증 제대혈을 찾지 못할 경우 가족 제대혈을 사용하기도 하지만 이는 최후의 방법”이라며 “상황이 이런데도 일부 제대혈보관 업체들은 ‘이식 시 면역거부반응이 없다’며 가족 제대혈을 권장하고 있다”고 밝혔다.

시민단체들도 “질환이 발생한 경우 자신의 제대혈에는 이미 그 병에 취약한 유전자가 존재하므로 이식해도 재발 가능성이 높다. 전문가도 이럴 때 타인의 기증 제대혈 사용을 권장한다”며 “보건복지부는 기증 제대혈을 활성화하기 위해 제대혈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제대혈 이식을 연구하고 있는 의사들은 국가 차원에서 사용률이 낮은 제대혈 보관에 막대한 비용을 들이는 게 비효율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미래에 대한 대비책으로 인식하고 관련 산업을 확대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영호 한양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현재까지는 제대혈 활용 분야가 한정돼 있지만 의학이 발전하면서 쓰임새는 더 넓어질 것”이라며 “제대혈 보관은 현 시점에서 쓸 수 있는 것과 한계점, 앞으로의 쓰임새 등을 정확히 파악한 뒤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엔 제대혈 이식을 허가받지 않은 의료기관이 환자에게 제대혈을 불법으로 이식해 경찰 수사를 받았다. 서울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제대혈 줄기세포를 환자들에게 불법으로 이식한 혐의(제대혈 관리 및 연구에 관한 법률 위반)로 서울·경남 등 전국 병원 15곳의 원장들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20일 밝혔다.

이들 병원에 제대혈을 불법으로 판 제대혈 치료제 유통업체 6곳의 관계자 12명도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에 따르면 이 병원들은 제대혈 이식 지정 의료기관이 아닌데도 2011년 7월부터 올해 중순까지 환자에게 각각 1000만∼2500만원을 받고 제대혈 줄기세포를 치료 목적으로 불법 이식했다.

정부는 2011년 7월부터 시행된 제대혈 관리 및 연구에 관한 법률에 따라 지정 의료기관에서만 제대혈의 이식 및 치료를 허가하고 있다.  이 법은 제대혈을 사고파는 것 자체를 금지하지만 제대혈 치료제 유통업체들은 건당 수백만원을 받고 병원에 공급했다.
경찰 관계자는 “환자들은 ‘피부가 좋아진다’, ‘당뇨병을 낫게 해준다’는 등의 의사 말에 혹해 제대혈 줄기세포를 이식받은 것으로 조사됐다”며 “제대혈법이 2011년 7월부터 시행돼 그때를 기점으로 혐의가 적용되지만, 그전부터 이러한 불법 매매 및 이식 행위가 만연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행법상 제대혈 줄기세포를 이식하려면 반드시 복지부 산하 질병관리본부 장기이식관리센터를 거쳐야 한다. 병원이 환자가 필요한 줄기세포를 요청하면 관리센터가 제대혈은행에 통보하고, 은행이 이를 병원에 직접 제공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무허가 업체에 대한 규제가 사실상 어려워 보유 중인 제대혈이 암암리에 외부로 유출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경찰은 최초 H사로부터 유출된 제대혈이 중간 불법 유통업체들을 거쳐 최종적으로 일선 병원에 공급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일부 피부과나 성형외과를 중심으로 제대혈 줄기세포를 미용 목적으로 활용하고 있는데, 제대혈 이식 병원으로 인증받은 곳이 아니라면 모두 불법”이라며 “이런 경우 임상시험을 제대로 거치지 않아 효과를 입증하기 어려운 만큼 위험성도 높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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