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설희 건국대병원 신경과 교수는 수면유도호르몬인 멜라토닌이 알츠하이머병과 자폐 치료에 효과적이라는 연구결과를 30일 발표했다. 이번 연구에 따르면 멜라토닌이 강력한 항산화·항염증 효과를 내 인지기능을 호전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수면시간은 개인차가 크지만 대게 나이들수록 줄어든다. 수면부족 상태가 장기간 지속되면 인지기능과 면역력이 감소하면서 감염병, 당뇨병, 암 등의 발생률이 높아진다.
한 교수는 멜라토닌의 효과를 알아보기 위해 실험용 쥐를 수면부족 군(SD)과, 수면 부족 상태에서 멜라토닌을 투여받은 군(SD MEL), 수면부족 없이 멜라토닌만 투여받은 군(MEL), 스트레스를 조절하는 군(Stress CON), 정상 대조군(CON) 등 5개 군으로 나눠 실험을 진행했다.
먼저 5개 군을 낮과 밤이 정반대로 바뀐 환경에서 4주간 지내게 한 뒤 SD군, SD MEL군, Stress CON군은 96시간 동안 깊은 잠을 자지 못하게 했다. 대신 주변이 물로 둘러싸인 환경에서 화분을 뒤집어 높은 섬 같은 곳에서 지내게 하고, 쥐들이 렘(REM)수면에 빠지면 순간 중심을 잃고 물속에 빠지게 해 수면부족 상태를 유발했다. 단 SD MEL군은 실험과 함께 1주일 간 매일 아침 9시에 멜라토닌을 투여하고, Stress CON군은 스트레스 요소를 줄이기 위해 다른 두 군보다 더 넓은 공간에서 지내게 했다.
이후 인지능력을 알아보는 ‘모리스의 수중미로’ 실험을 진행했다. 이 실험은 둥근 수조에 물을 반쯤 채우고 수조 한 쪽에 수면에서 2㎝ 정도 잠긴 섬을 만든 뒤 쥐를 수조에 넣고 헤엄쳐 섬을 찾게 한다. 연구팀은 물을 뿌옇게 만들어 쥐들이 섬을 쉽게 찾을 수 없게 했다.
실험 결과 수면부족 군(SD)은 정상 대조군보다 섬을 찾는 데까지 걸린 탐색시간, 탐색 중 오류, 경로 길이, 수영 속도 등 모든 분야에서 수행능력이 현저히 떨어졌다. 또 해마의 염증세포 반응을 비롯해 산화스트레스 정도를 나타내는 4-hydroxynonena(4-HNEl)와 7·8-dihydro-8-oxo-deoxyguanosine(8-oxo-dG) 수치도 증가했다. 반면 정신지체와 자폐증을 막는 FMRP 단백질은 줄었다.
산화스트레스가 체내 지속적으로 쌓이면 세포가 손상되면서 면역체계가 약화돼 암 등의 유병률이 높아지고 노화가 촉진된다.수면부족 상태에서 멜라닌을 투여받은 군(SD MEL)은 초반 실험에서 정상 대조군보다 실수 없이 빠른 속도로 섬을 찾는 등 인지능력이 회복된 모습을 보였다. 산화스트레스를 나타내는 4-HNE와 8-oxo-dG수치를 비롯해 FMRP 단백질도 모두 정상치와 유사하게 회복됐다.
한설희 교수는 “수면결핍은 뇌세포에 산화스트레스성 염증반응을 유도하고 신경세포에 FMRP 발현을 감소시킨다”며 “이는 수면결핍이 인지기능을 떨어뜨리고 치매나 자폐와 같은 신경질환 발생과 밀접한 관련성이 있음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이어 “멜라토닌을 투여하자 수면결핍으로 생긴 인지기능 이상과 뇌의 병리적 변화가 호전됐다”며 “알츠하이머병이나 자폐증의 치료에 있어 멜라토닌 혹은 멜라토닌과 유사한 물질들이 치료효과를 나타낼 것으로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학계에서도 이번 연구결과에 주목하고 있다. 미국 페인스타인의학연구소(The Feinstein Institute for Medical Research)의 하르딕 파텔(Hardik Patel) 교수는 리뷰 논문을 통해 “그동안의 연구는 수면부족이 산화스트레스를 증가시키고 뇌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는 것을 밝히는 데 불과했지만 이 논문은 인지기능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분자적 단위에서 이해하는 데 도움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연구결과는 의학과 과학 중심의 세계 최대 출판사인 엘제비어(Elsevier)가 발간하는 국제학술지 ‘신경과학(Neuroscience)’ 8월호에 게재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