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부터 SNS를 달구고 있는 게 ‘워터파크 임신설’을 다룬 기사다. 워터파크의 물속에 의도하지 않게 몸 밖으로 나온 남성의 정자가 여성의 몸속에 들어가 임신된다는 다소 엽기적인 내용이다.
한국에서 이와 관련된 피해자가 최근 처음으로 나왔다는 보도였다. 작년 8월 중순 23세 여성이 세 명의 친구들과 함께 용인의 C수영장에 갔다가 네 명 모두 임신했단다. 수영장 측에서는 공식입장의 발표를 하지 않았고, 피해자 측에서는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준비 중이라는 믿기 힘든 내용을 담아냈다.
2009년 폴란드에서도 호텔 수영장에서 수영한 뒤 임신했다는 10대의 부모가 호텔을 상대로 고소하는 사건이 있었다고 알려져 있다. 임신했다는 10대 여성의 나이는 당시 13세였다. 고소한 부모의 주장은 ‘물 안에 퍼진 정자 때문에 딸이 임신했다’는 것이다.
게다가 해당 기사는 한 네티즌이 장난으로 만든 것으로 밝혀졌다. 기사를 보면 기자 이름은 ‘임배춘’이다. 이는 한 온라인커뮤니티 회원을 비하하는 단어인 ‘일베충’을 연상할 수 있다. 자문에 도움을 줬다는 미국 버클리대 생물학 교수라는 재미교포 ‘General Joe’(제너럴 조)는 버지니아 공대 총기 난사 사건의 주범인 조승희를 부르는 말이다.
하지만 사실 여부를 떠나 이게 과연 가능한 일일까. 두진경 어비뇨기과 원장은 “우선 수영장에서 남성이 정액을 뿌려놓을 수 있을지조차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같은 일이 일어나려면 수영장에서 남성이 정액을 뿌려 놓아야 하고, 정액 속 정자가 수영장을 헤엄치고 다니다가 여성의 몸속으로 들어가서 난자와 만나 수정해야 하는데 정자가 물에서 자유롭게 다닐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인체는 일정 농도의 전해질로 구성돼 있으며 이같은 전해질 농도가 일정하게 유지돼야 대사가 이뤄지고 생활이 가능하다. 이같은 작용을 ‘항상성’(homeostasis)이라 한다. 정자도 마찬가지로 일정한 전해질 농도를 유지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
정자가 물속에 있으면 어떻게 될까. 두 원장은 “정자는 얇은 세포막을 두고 내부에 일정 농도의 전해질이 유지되고 있으며, 물은 전해질이 거의 없거나 상당히 낮다”며 “이런 경우 삼투압현상이 작용해 순수한 물이 정자로 삼투돼 들어오면서 정자가 풍선처럼 커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때 정자꼬리의 운동성도 매우 떨어지는데, 보통 2분 정도 지나면 약간의 움직임 밖에는 보이지 않는다”며 “1분 이내에 다시 정상적인 농도로 바꿔준다면 약 80%의 운동성을 회복하지만, 그 이상 지나면 점점 정자의 운동성이 떨어진다”고 덧붙였다.
수영장에 정자가 있다고 치자. 정상적인 성관계에서도 질내에 사정된 정자가 1억마리가 풀어져 달리기를 하다 그중 백마리 정도만 난자가 있는 곳까지 도달한다. 정상적인 경우에도 쉽지 않은데 하물며 수영장에 빠져 퉁퉁하게 부어오르고 운동성도 현저하게 떨어진 정자가 임신을 시킬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것.
두 원장은 “누가 수영장에 정자를 뿌려놓을 수는 있어도, 그 정자가 여성의 몸에 들어가서 수정하는 것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게다가 워터파크의 물은 염소를 비롯해 전기분해장치를 통해 소독이 이뤄진다. 정자는 약알칼리성에서 생존할 수 있는데 염소 성분이 들어있는 약산성의 수영장의 물에서는 운동성은 물론이고 생존 자체가 힘들다. 과학적으로도 불가능하고, 아직 확정판결이 나온 사례도 없다.
거꾸로 워터파크의 물은 임신하게 만드는 기적을 보이지는 못하지만 물이 오랜시간 교체되지 않고 고여 있으면 세균과 미생물이 번식하기 좋은 환경이 되면서 건강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 세균과 미생물은 피부질환을 유발하는데, 보통 당일 또는 1~2주의 잠복기 이후 증상이 나타난다.
물속 세균 중 하나인 녹농균은 외이염, 중이염 등 귓병과 피부병을 일으킨다. 녹농균으로 피부발진이 나타나면 피부가 가렵고 울퉁불퉁해지며 진무름이 생길 수 있다. 피부질환 뿐만 아니라 설사와 위장장애가 발생할 수 있다.
이질균의 경우 장에 급성 염증을 일으키는데 위산에 강해 200마리 미만의 균을 섭취하는 것 만으로도 감염될 수 있다. 대장균의 경우 장 속에서는 병원성을 나타내지 않는 것이 보통이지만 일부 항원형 대장균은 병원성으로 전염성 설사를 유발한다. 기생성 원생동물 중 구충류의 일종인 와포자충은 설사를 유발할 수 있는데, 염소 소독에 대한 저항성이 매우 커 소독만으로는 예방할 수 없다.
이뿐만 아니라 워터파크에서는 소독을 하기 위해 2~3가지 이상의 화학약품을 넣는 데 이 중에는 ‘염산’이 포함된 것으로 밝혀졌다. 물놀이장에서 사용되는 ‘염소계소독제’는 살균 효과가 뛰어나지만 농도가 높으면 알레르기성 피부염 등 피부 문제를 유발할 수 있다. 또, 사람의 땀, 배설물 등의 유기물질과 염소소독제가 만나면 소독제 부산물인 THM(트리할로메탄)이 발생하면서 발암물질로 작용한다.
일본의 경우 소독제 부산물에 대한 기준치가 설정돼 있지만 국내선 소독부산생성물 기준치가 없을 뿐 아니라 수질검사 항목도 pH(수소이온농도), 탁도, 유리잔류염소, 과망간산칼륨, 대장균군 등 다섯 가지에 불과하다. 또 현행법상 물놀이장에 염산 투입이 가능하기 때문에 안전한 구연산보다 저렴한 염산을 사용하는 것이다. 임신부가 소독제 부산물에 많이 노출되면 저체중아 출산이나 심할 경우 유산과 같은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또 방광암, 신장암, 결장암 등이 초래될 가능성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