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윤모 씨(33)는 요즘들어 주변 사람들로부터 ‘안색이 안 좋아 보인다’는 많이 들었지만 잦은 야근과 회식 탓으로 생각해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얼굴색이 점점 짙은 암적색으로 변해갔고, 하루종일 자도 피로가 해소되지 않을 때가 많았다. 결국 건강이 염려돼 병원을 찾은 결과 불규칙한 생활습관, 과음, 야식 등으로 신장기능에 이상이 생겼다는 진단을 받았다.
윤 씨의 사례처럼 색깔과 건강은 밀접한 연관성을 지니며 얼굴뿐만 아니라 손톱, 눈, 눈꺼풀, 가래, 소변 등의 색깔은 방광·간·폐·혈관 같은 몸속 중요 부위의 건강 상태를 나타내는 창이므로 변화를 소홀히 여기면 안 된다. 최근엔 색깔을 이용해 정서적·신체적 문제를 치료하는 컬러테라피(색채치료)가 인기를 얻는 추세다. 색깔로 알 수 있는 신체 부위별 건강 상태, 컬러테라피에 사용되는 색의 종류와 특징 등에 대해 알아본다.
손톱 색깔은 혈액순환, 표피세포, 폐 등과 연관이 있다. 김대균 가톨릭대 인천성모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타고난 손톱의 모양이나 색깔이라면 상관없지만 최근 손톱의 상태가 변했다면 질병의 신호일 수 있어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혈액순환이 잘 되지 않으면 손톱이나 피부 색이 변하기 시작하고, 표피세포가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면 손톱 모양이 이상하게 자란다.
손톱이 희고 창백한 푸른빛을 띠면 호흡기질환이나 간질환을 의심해볼 수 있다. 김 교수는 “호흡기질환으로 정상적인 호흡을 하지 못하면 체내 산소가 부족해져 손톱이 하얗거나 푸른색을 띤다”며 “간이 좋지 않아 황달이 오면 혈액 내 헤모글로빈 성분이 상대적으로 줄면서 손톱이 하얗게 보인다”고 설명했다.
건선이 있으면 표피세포가 비정상적으로 증식하면서 손톱의 모양과 색깔손톱이 물결치듯 울퉁불퉁하게 자라거나 파인다. 폐질환 환자는 만성적인 저산소증이 동반돼 손가락과 손톱 끝이 둥글게 변성된다.
손톱에 검은 점이 생기면 흑색종을 의심해볼 수 있다. 흑색종은 암의 일종으로 멜라닌 색소를 만들어 내는 멜라닌세포가 변성돼 생긴다.
소변 색깔도 각종 질환의 위험을 알려준다. 윤하나 이대목동병원 비뇨기과 교수는 “몸이 정상인 사람의 소변은 맥주에 약간의 물을 탄 듯한 맑은 황갈색을 띤다”며 “수분 섭취량과 탈수 정도에 따라 거의 무색부터 진한 호박색까지 다양한 색깔이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만약 콩팥에 염증, 결석, 종양이 생기면 소변에 혈액이 섞인다. 이 소변이 요관, 방광, 요도를 거치면서 적혈구 색깔이 짙어져 간장 탄 물처럼 검붉은색이 난다.
요로·요도결석, 염증, 종양 등이 생기면 선홍빛 혈뇨가 나온다.
방광염에 걸리면 소변에 고름이 섞여 색깔이 탁해진다. 요붕증 환자는물을 많이 먹지 않았는데도 소변색이 매우 투명하고, 소변량이 하루 4~5ℓ에 달하게 된다.
눈 색깔도 유심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혈관이 좁아지는 동맥경화증이 온 경우 눈 안쪽 점막에 검붉은색 작은 반점이 생긴다. 심장혈관이나 목에 있는 경동맥이 좁아지면 혈액순환에 지장이 생기고, 이로 인해 눈의 실핏줄이 막히다 터져 피가 나와 붉은 색을 띤다.
빈혈 환자는 아래 눈꺼풀을 뒤집었을 때 안쪽 점막 색깔이 옅은 분홍색을 띠는 게 특징이다.
간경화증이 있으면 눈 전체가 노랗게 변한다. 염증에 의해 간 속 빌리루빈이란 색소가 제대로 처리되지 못해 나타나는 증상이다. 이 물질은 원래 적갈색으로 혈류를 타고 떠돌아다니다 눈이나 피부세포 등에 쌓일 경우 노란색을 띤다.
혈중 콜레스테롤이 과도하게 높은 이상지질혈증이 생기면 검은 눈동자 주변에 지방질의 하얀 테가 생긴다.
가래도 여러 질병 여부를 가늠해볼 수 있는 척도가 된다. 하얗거나 맑은 색이면 정상이지만 호흡기바이러스에 감염된 경우 누런색을 띤다. 폐부종이면 폐 속에서 이산화탄소와 산소가 원활하게 교환되지 않아 피가 빠져나오면서 가래와 섞여 분홍색 가래가 나온다.
기관지에 암이나 염증이 생겨 실핏줄이 터진 경우 가래를 뱉었을 때 갈색을 띤다. 또 기관지가 패혈증을 유발하는 녹농균에 감염되면 녹색 가래가 발생한다. 녹농균이 특이한 형광색소 성분을 분비하기 때문이다.
검정색 가래는 대부분 먼지, 대기오염, 담배연기, 폐곰팡이 감염이 원인이 돼 나온다.
얼굴 색은 콩팥, 간, 폐, 담도 등 장기와 혈액순환의 상태를 반영한다. 콩팥에 문제가 생겨 혈액 내 노폐물이 제대로 걸러지지 못하면 독성물질이 나와 혈액에 섞이면서 암적색으로 변한다. 이 혈액이 얼굴로 향하면 안색이 바뀌게 된다.
간·담도질환 탓에 혈액 내 빌리루빈 수치가 높아지면 안색이 노래진다.
또 혈액순환이 잘 되지 않으면 몸속 세포와 조직에 피·산소가 충분히 공급되지 않는다. 이런 경우 혈관이 피와 산소를 더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기 위해 확장되면서 얼굴이 불그스름해진다.
폐질환, 빈혈이 있으면 몸속 혈액과 산소가 부족해 얼굴빛이 창백해진다.
최근엔 색깔을 단지 질병을 알리는 신호로 보는 것을 넘어 치료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 컬러테라피는 미술치료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색깔이 각각 강력한 고유의 파장과 에너지가 있다는 점을 활용해 신체와 마음을 치료한다. 약이나 수술로 병을 없애는 적극적인 방법은 아니지만 병으로 인한 힘든 상황을 스스로 헤쳐나가게 하는 보조적 개념으로 주목받고 있다. 김선현 차의과대 미술대학원 교수는 “색채가 직관적인 의미와 느낌을 전달하는 강렬한 메시지라는 사실은 다양한 과학적·의학적 연구로 증명된 것”이라며 “이를 잘 활용하면 신체와 정신, 감정을 조화시키고 회복하는 데 도움된다”고 설명했다.
인간은 상황에 따라 자신의 감정을 표출할 수 있는 색이 조금씩 다르다. 빨간색은 우울감을 완화하는 데 효과적이다. 김 교수는 “사람은 건강상태, 심리적 변화, 유행과 같은 문화적 영향에 따라 특정 색에 끌리게 된다”며 “하지만 끌린다고 다 좋은 색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이어 “우울증 환자들은 스스로 (옷이나 집안 분위기에) 파란색을 쓰는 경향이 있는데, 기분을 전환하기 위해서는 의식적으로 빨간색을 사용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혈액순환이 안 될 때에도 빨간색을 가까이하면 아드레날린이 분비돼 혈액순환이 좋아질 수 있다. 전문가들은 “빨간색은 에너지가 뿜어져 나오게 하며 맥박을 증가시킨다”고 말한다. 영국 BBC방송에 따르면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빨간색 유니폼을 입은 권투나 격투기 선수들은 경기에 이길 확률이 5%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인테리어잡지 ‘컨트리 리빙’ 잡지에 따르면 사회적 활력을 올리려면 거실에 빨간색을 사용하면 좋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혈압과 체온을 상승시키고 신경조직을 자극하므로 고혈압 환자나 상처·염증이 있는 사람은 가까이하지 않는 게 좋다.
힘든 일을 겪거나 일상이 고된 사람은 분홍색을 선호한다. 여성다움과 연관이 있는 색이지만 사람들을 진정시키는 효과가 있다.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에 따르면 스위스에서 감옥 벽면을 핑크색으로 칠한 결과 15분 만에 수감자들의 분노를 감소시킨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아이오와대 풋볼팀의 헤이든 프라이 감독은 상대팀 선수들을 진정시키고 투지를 꺾기 위해 상대팀 라커룸을 핑크색으로 칠하게 했다. 당시 이에 대해 말도 많았지만 프라이 감독은 엄청난 승률을 올려 가장 성공한 미국 대학 풋볼 감독 중 하나가 됐다.
분홍색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모습을 보이는 사람은 애정결핍일 확률이 높으므로 취미생활을 공유하거나 대화를 통해 감정을 적절히 해소해 주는 게 좋다.
차분함이나 평온함을 나타내는 파란색은 내향적이고 감수성이 예민한 사람과 잘 맞는다. 과도한 긴장이나 스트레스를 해소해주는 효과가 있다. 침실에 파란 벽지를 활용하면 불면증과 두통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된다. 후두염, 생리통, 편두통, 불면증 등의 치료에도 유익하게 활용할 수 있다. 반면 저혈압, 마비 증세, 우울증 있는 사람에겐 좋지 않다.
많은 실내 장식가들은 침실을 파란색으로 꾸밀 것을 추천한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 이 색을 보면 기분을 좋게 만들고 잠자기 전엔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자연의 색인 녹색은 긴장을 완화시키고 균형감을 느끼게 해준다. 앉아서 하는 일이 많거나 평소 소화가 잘 안 되는 사람은 실내에 녹색식물을 키우는 게 도움될 수 있다. 또 교감신경계에 유익하게 작용해 평소 자주 신경이 날카로워지거나 조울증을 앓는 사람에게 효과적이다. 심한 피로감을 느끼거나 졸음 증상이 있을 땐 피하는 게 좋다.
노란색은 밝고 긍정적인 느낌을 준다. 이 색을 좋아하는 사람은 주의력과 집중력이 높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빠르게 만들어낸다. 이 때문에 사교적인 대화를 비롯한 다양한 의사소통이 필요한 직업에 잘 맞는다. 대화할 때 심리적으로 위축될 땐 노란색 넥타이를 매거나 손수건을 활용한다.
심리학자들은 노란색이 실제로 정신활동을 자극할 수 있다고 추측한다. 한 연구에 따르면 노란색 방에서 시험을 치른 학생들은 다른 색상의 방에서 시험을 치른 학생들에 비해 10~15% 더 좋은 점수를 받았다. 노란색이 갓난아기를 더 길게 울게 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보라색을 찾는다면 감정의 기복이 심하거나 몸과 마음이 지쳐 있는 상태일 수 있다. 이로 인해 보라색을 좋아하면 ‘사이코’라는 속설이 나오기도 했다. 명상, 자기성찰, 창의적 활동에 어울리는 색으로 폐경기 중년여성이 보라색 계통의 옷·스카프 등을 이용하면 자존감을 회복하는 데 도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