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의 안전지대는 없다”는 말은 면역기능이 약한 사람에게 발암인자가 들어오면 누구라도 암에 걸릴 수 있다는 뜻이다. 한국인의 사망원인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암, 여전히 암과 관련해 의학적으로 근거 없는 여러 가지 속설들이 떠돌고 있다. 암환자나 가족들은 치료를 위해 최대한 방법을 동원하기 마련이지만 암에 대한 잘못된 정보로 인해 수술을 기피하는 등 치료를 더욱 어렵게 만들기도 한다.
폐암이 흡연자에서만 발생한다는 건 대표적인 오해다. 물론 폐암의 가장 강력한 발병원인 중 하나가 흡연이지만 실제 흡연자의 10~15%에서만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폐암 중 비흡연자에서도 잘 발생하는 선암이 41.7%로 발생률 1위를 차지했으며 흡연자에서 발병률이 높은 편평상피세포암은 23.6%로 2위를 차지했다.
오래 담배를 피운 경우 금연해도 발생위험을 낮출 수 없다는 것 역시 오해다. 금연 시점부터 폐암 발생 위험이 감소하다가 10~15년 정도가 지나면 비흡연자와 같아진다. 담배를 피워도 다른 폐암 예방제, 예컨대 항산화제나 비타민제를 먹으면 폐암 발생률을 낮출 수 있다는 안전하다는 속설은 검증된 바 없다.
자궁근종을 오래 방치하면 자궁암으로 발전한다는 이야기는 사실이 아니다. 둘은 서로 전혀 다른 질병이다. 남편이 포경수술을 했다면 아내가 자궁암에 걸리지 않는다는 설도 과학적 근거가 없다. 김철환 인제대 서울백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포경수술을 하면 귀두가 청결해지며, 고환암이나 여자의 자궁암에 걸릴 확률이 줄어든다는 연구는 일반화하기 어려운 증거”라고 강조했다.
자궁암의 발병원인은 인유두종바이러스 감염으로, 포경수술과는 아무 연관성이 없다. 자궁암은 반드시 수술로 제거해야 된다는 것도 대표적인 오해다. 암 조직 제거가 수술만으로는 어렵다. 가급적 고주파 등 비침습적 치료를 시행하되 방사선·항암제 치료가 병행돼야 한다.
전립선암과 전립선비대증을 연관지어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만 둘은 서로 다른 질병이다. 또 전립선암은 성병과도 무관하다. 전립선암 수술을 받으면 정상적인 배뇨가 힘들다는 것도 사실과 다르다.
반면 포경수술을 받으면 전립선암 위험이 낮아진다는 이야기는 과학적 근거가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마리 엘리스 페어런트 캐나다 퀘벡대 교수의 연구 결과 생후 1년 이내에 포경수술을 받은 남성은 대조군에 비해 전립선암 발생률이 14% 낮았다. 포경수술의 전립선암 감소 효과는 흑인이 60%로 가장 큰 것으로 나타났다.
유방에 멍울이 잡히면 모두 암일 것이라는 의심을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가슴에 생긴 멍울이 크기가 자라지 않고 유지되면 양성종양(섬유선종)일 확률이 크다. 강은영 분당서울대병원 외과 교수는 “섬유선종은 여성의 20~30%가 겪을 정도로 적지 않다”며 “특히 여성호르몬 분비량이 많은 20~30대 여성에게 양성 종양이 잘 생긴다”고 설명했다.
김정숙 이대목동병원 건강증진센터장은 “6개월 내 멍울이 안 커지면 대부분 암이 아니다”며 “2년까지 그대로면 99% 안전하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경구피임약이 유방암을 높이거나, 언더와이어 브래지어가 유방암을 일으킨다는 속설은 아직 과학적 근거가 불충분하다. 유방암 수술 후 정상적인 부부생활이 불가능할 것이라는 것도 대표적인 오해 중 하나다. 유방암 수술 이후 성생활과 관련해 특별히 주의해야할 사항은 없다.
최근 가수 이문세 씨가 투병 중이라고 고백해 유명해진 갑상선암도 여러 유머의 근원지다. 갑상선암을 수술하면 목소리가 변한다고 오해하는 사람이 많지만 대부분 잠깐 쉰 소리가 나는 정도이고 수술 중 신경을 건드려 목소리 이상이 생기는 경우는 1% 안팎이다. 이 경우에도 적절한 치료를 받으면 음성을 되찾을 수 있다. 다만 암 발생 위치에 따라 발성에 영향을 줄 수는 있다. 박경식 건국대병원 갑상선암센터 교수는 “갑상선암 치료는 종양 크기뿐만 아니라 종양이 생긴 위치도 중요하다”며 “성대를 조절하는 신경 근처에 암이 위치한 경우 갑상선암 크기와 무관하게 신경 침범으로 이어져 수술 없이 방치하면 목소리에 장애가 생길 수 있다”고 설명했다.
육식을 즐기면 대장암에 잘 걸리는 것은 과학적으로 입증됐지만 고기의 종류에 따라 암 발생에 미치는 영향이 다르며, 비만이나 운동부족보다 영향력이 덜하다고 전문가들은 설명한다.
미국암협회 연구결과 적색육이나 가공된 고기를 많이 먹으면 대장암에 걸릴 위험성이 높아진 반면 생선, 닭고기, 오리고기를 먹은 경우 암 발생이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붉은색 고기는 지방 함량이 높고, 섭취 과정에서 지방을 제거하기 어렵다. 지방의 과다섭취는 담즙산 분비를 증가시켜 대장점막에 악영향을 미친다. 붉은색 고기를 먹을 때는 가능한 기름기 적은 부위를 택하고, 눈에 보이는 기름은 최대한 제거한다.
고기가 대장암 위험을 높인다고 해서 채소류만 먹는 것도 좋은 방법은 아니다. 김재황 영남대병원 외과 교수는 “진료한 대장암 환자 중 육류를 자주 먹었다고 말한 환자는 100명 중 2~3명에 불과하다”며 “구워먹는 게 해롭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상식이고, 익히지 않거나 조리하지 않은 날것의 육식을 하는 경우에도 암 발병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암환자는 반드시 단백질이 필요하므로 육식을 하되 살코기 위주로 채소와 곁들여 먹는 게 좋다”고 덧붙였다.
휴대전화 사용이 암 발병률을 높인다는 것은 과학적으로 입증됐지만 일부 전문가는 직업적으로 고위험군이 아닌 이상 전자파 노출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세계보건기구(WHO)는 2011년 휴대전화 전자파가 암 발병률을 높일 수 있다고 공식 발표했다. 이와 함께 10년 이상 하루 30분씩 휴대전화를 매일 사용할 경우 뇌종양 발병률이 40% 높아진다는 기존 연구결과 내용도 인정했다.
지난해 환경부 산하 국립환경과학원이 휴대전화 사용 환경에 따른 전자파 발생 현황을 조사한 결과도 흥미롭다. 통화 연결 중에 전자파 강도가 증가하고 특히 지하철과 같이 빠른 속도로 이동 중인 상태에서 통화하면 정지 상태보다 평균 5배 가량 전자파 강도가 증가했다. 가장 가까운 기지국을 수시로 검색하기 때문에 기기 출력이 증가하게 된다. 엘리베이터 등 밀폐된 장소에서 통화할 때도 개방 공간에서 통화하는 것보다 평균 7배가량 전자파 강도가 세졌다. 밀폐된 장소는 전파 수신이 어려워 기기출력이 증가하기 때문이다.
반면 2012년 영국 보건국(Health Protection Agency, HPA)은 휴대폰 전자파의 유해성을 연구한 결과 유해성에 대한 명확한 증거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이 단체는 1995~2011년 휴대폰뿐만 아니라 자기공명영상(MRI), 텔레비전, 와이파이 등에 대한 수백 건의 연구를 재검토해 이 같은 결과를 얻었다.
김윤신 한양대병원 직업환경의학과 교수는 “아직 정확한 역학조사 결과가 나오지 않아 전자파와 암 발생간 연관성을 단정짓는 것은 무리”라며 “그러나 전자파가 뇌종양, 수면방해, 신경과민, 백혈병 등을 일으킨다는 연구결과가 있어 전자파 노출을 최소화하는 게 좋다”고 설명했다.
술이 센 사람은 간이 튼튼해서 약한 사람보다 간암에 걸릴 확률이 낮다는 것은 전혀 근거 없는 이야기다. 술이 간에 미치는 영향은 평소 주량과 관련이 있는 게 아니라, 음주의 양과 기간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술을 잘 마시는 사람은 잘 마시지 못하는 사람에 비해 한 번 마실 때 많이 마시기 때문에 오히려 간암에 걸릴 위험이 더 크다. 하루 40~80g의 술을 10년 동안 마신 사람은 알코올성 간질환에 걸릴 확률이 매우 높다.
유기농식품만 먹으면 암을 피할 수 있다는 것도 과대포장된 면이 크다. 물론 유기농식품과 유전자조작이 되지 않은 식품이 건강에 좋은 건 사실이다. 미국 보건당국도 화학물질에 노출된 식품은 암 발생 위험을 높이므로 농약이나 화학비료를 사용하지 않고 항생제, 호르몬, 방부제 등 인공첨가물이 들어가지 않은 식품을 먹으라고 권고했다.
단 모든 식품에는 항산화 성분과 함께 발암 성분도 포함된 만큼 유기농이라고 해서 무조건 안심할 수만은 없다고 덧붙였다. 예컨대 사과나 상추에 많이 들어 있는 ‘카페인산’, 알로에의 샤프롤, 파슬리에 들어 있는 ‘소랄렌’, 버섯에 있는 ‘셀레릴 하이드라진’, 브로콜리, 콜리플라워, 케이크, 양배추, 배추, 순무, 고추냉이와 같은 십자화과의 채소에 많이 포함되어 있는 ‘이소시오시아네이트(isothiocyanate)’ 등은 천연 발암물질이다. 즉 아무리 좋은 유기농 식품이라도 한 가지만 많이 먹으면 미량의 독성 성분이 쌓여 해가 된다. 암 예방을 위해서는 다양한 제철 식품을 골고루 섭취하는 게 바람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