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고령화, 서구화된 식습관 등으로 중증·만성질환 환자가 급증하면서 건강검진을 통한 조기진단 및 치료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건강검진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게 내시경이다. 내시경을 위, 식도, 대장 등에 넣어 관찰하면 악성종양 등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는 용종이나 미세 병변을 발견할 수 있고 동시에 병변을 절제해 치료도 가능하다.
피부를 절개할 필요가 없고 절차가 간단해 많은 환자들이 선호하지만 장세척제 복용으로 인한 불편함, 내시경 삽입 과정에서 오는 불쾌함 등은 내시경검사를 망설이게 하는 원인이다. 최근 도입된 수면내시경, 초음파내시경, 캡슐내시경 등은 이같은 문제를 개선해 환자들의 만족감을 높였다. 살면서 누구나 한 번쯤은 겪게 될 내시경검사의 종류, 방법, 주의사항 등을 알아본다.
내시경은 겉으로 보기엔 간단하지만 광학·전자공학·의학이 총집결된 첨단 의료기기다. 최초의 내시경은 오스트리아 빈 출신의 필리프 보치니가 1805년 개발한 ‘리히트라이터’로, 병변을 직접 볼 수 없는 장기를 관찰하기 위해 고안됐다.
1886년엔 독일의 아돌프 쿠스마울 박사가 최초로 길이 18인치(47㎝), 직경 0.5인치(13㎜)인 내시경을 사용해 살아 있는 환자의 위 속을 관찰했다. 1932년에는 루돌프 쉰들러 박사가 환자의 거부감을 덜어주는 형태의 내시경을 만들어 사용하기도 했다. 1960년대에는 광섬유가 도입되면서 내시경의 직경이 줄어들고 전체적으로 유연해졌다.
내시경검사는 병소를 직접적으로 관찰하면서 조금이라도 이상한 부위가 있으면 조직검사와 함께 치료를 병행할 수 있다. 내시경으로 볼 때 암은 모양이 지저분하고 색깔이 하얗거나 지나치게 붉고 크기도 다양한 반면 양성종양은 모양이 일정한 양상을 보인다.
단 드문 확률로 종양이 위 체부(가운데)의 후벽(등쪽), 십이지장 구부(위에 가까운 동그랗게 휘어진 부위) 등에 위치한 경우 놓칠 수 있다. 크기가 미세한 병소나 점막 아래층에 퍼지는 형태로 자라는 침윤성 암을 놓치는 경우도 종종 있다.
부작용으로 1만명 중 3명 꼴로 출혈 또는 천공이 발생한다. 하지만 2년 이상 수련한 의사라면 오진이나 우발적 위험이 발생할 확률이 크게 낮아지며 임상경험에 비례해 편안하고 정확한 검사가 가능해진다.
건강검진 기관에서 가장 많이 시행하는 게 위내시경(상부위장관내시경)과 대장내시경이다. 위내시경은 환자를 왼쪽으로 눕게 한 뒤 입을 통해 광섬유와 미세관을 둘러싼 가는 호스 모양의 부드러운 내시경을 삽입, 식도·위·십이지장을 관찰한다. 병변이 발견되면 해당 조직을 떼어내 조직검사를 시행하기도 한다. 상복통, 구토, 출혈, 소화불량, 상부위장관 X선 촬영상 이상소견 등이 있을 때 실시한다.
주 목적은 위암의 조기발견이다. 보통 위암은 진행된 상태에서 발견되면 치료가 불가능한 경우가 많지만 증상이 발현하지 않은 조기위암은 90%이상 완치 가능하다. 남수연 국립암센터 암예방검진센터 교수는 “위내시경 검진의 경우 위암 사망률을 54~65% 감소시키는 것으로 파악됐다”고 설명했다.
위내시경검사 결과 조기위암일 경우 복부 절개 없이 내시경만으로 암을 제거하는 내시경 점막하박리술(ESD)이 널리 활용되고 있다. 이 시술은 주로 암이 넓게 퍼지지 않은 초기이거나 암 크기가 2~3㎝ 이하이면서 궤양이 없는 환자에게 적합하다. 반면 암이 위 주변 임파선으로 퍼지거나 위벽 근육층까지 진행됐거나, 암의 세포분화도가 나쁜 경우에는 적용하기 어렵다.
내시경으로 암이 발생한 아래 부위에 약물을 주입해 부풀려 돌출시킨 후, 특수 제작된 내시경 칼을 이용해 절개한다. 쉽게 말해 약물로 암 발생부위를 자르기 좋게 부풀린 후, 생선회 뜨듯 위벽에서 잘라낸다.
위내시경을 할 땐 내시경을 통해 공기가 주입해 위를 부풀여야 검사가 제대로 이뤄지므로 배에 가스 찬 느낌이 발생한다. 이는 검사를 위해 꼭 필요한 절차로 검사 중 트림을 참아야 안전하고 편하게 검사를 시행할 수 있다. 검사 중 트림을 하게 되면 위가 부풀린 상태가 유지되지 않아 검사가 제대로 이뤄지기 어렵다.
목 주변의 통증이 검사 후 하루 정도 지속될 수 있고, 조직검사가 시행된 경우 경미한 복통이 수일간 지속될 수 있다.
대장내시경은 항문으로 특수카메라가 달린 관을 삽입, 대장 내부 및 대장과 인접한 소장의 말단 부위를 관찰한다. 여러 질환 중 대장암과 염증성장질환 진단에 효과적이다. 갑작스러운 혈색소(헤모글로빈 hemoglobin) 감소 등 빈혈 징후가 있는 경우 대변에서 혈색소가 검출되지 않더라도 상부위장관(위, 식도, 십이지장)내시경과 함께 대장내시경을 시행한다. 직접 대장의 내부를 보면서 병변을 관찰하고 필요에 따라 지혈, 조직검사, 병변제거 등을 실시한다.
출혈·원인불명의 하복통·만성설사·염증성장질환 진단 및 추적, 대장게실이나 악성질환 감별, 조기 대장암의 조기발견 등에 활용한다.
대장내시경검사의 합병증으로는 장천공, 생검 부위에서의 지속적인 출혈, 과로한 진정제 사용으로 인한 호흡억제 등이 있다. 검사 효과를 높이려면 검사 2일 전부터 관장을 실시해 환자의 대장 속 대변을 완전히 제거한다.
대장암 조기진단 및 치료의 관건은 얼마나 빨리 대장암 징후를 포착하느냐에 달렸다. 대장암은 다른 암과 달리 용종 단계를 거치며, 용종의 95%가 암으로 발전한다. 이 크기가 1㎝ 이상으로 대장암이 될 가능성이 큰 것을 ‘진행성 대장종양’이라고 한다. 대장내시경으로 진행성 대장종양을 찾아 제거하면 대장암으로 발전하지 않는다.
보통 위암과 대장암은 발병 원인이 비슷해 함께 앓는 경우가 많다. 이상우 고려대 안산병원 소화기내과 교수팀이 위에 결절(혹)이 있거나 위암으로 진단받은 환자 416명을 분석한 결과 대장암 전 단계인 용종 발생이 일반인보다 34%나 높았다. 이 교수는 “위와 대장은 암이 동시에 생길 가능성이 높다”며 “위내시경에서 용종이 발견되면 악성이 아니더라도 추가로 대장내시경을 받아볼 필요가 있다”고 권했다.
내시경은 소화기질환 및 암 등의 진단 및 치료에 효과적이지만 관을 직접 장기로 삽입하기 때문에 고통·두려움·불쾌감·구토 등을 동반하게 된다. 이같은 단점을 보완한 게 수면내시경이다. 불편함과 공포를 느끼지 않고 내시경검사를 받을 수 있어 보편화되는 추세다.
중앙대병원이 2011~2013년 내시경검사를 받은 16만4621명을 조사한 결과, 약 40%가 사람들이 수면내시경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수면내시경이라고 해서 잠이 드는 것은 아니며 진정제를 투여해 수면작용과 기억상실을 유도한다. 검사를 받으면서도 의사의 지시에 응할 수 있을 만큼의 의식은 있지만 검사가 끝나면 잠을 자고 난 것처럼 무엇을 했는지 거의 기억하지 못한다. 검사는 총 1시간 30분 정도 걸리며, 검사 후 1시간이 지나면 식사를 할 수 있다. 검사 후 한동안 어지러운 증상이 나타났다가 약 30분 후 회복된다. 검사 당일에는 운전이나 기계 조작 등 무리한 일은 피하는 게 좋다.
수면내시경에는 미다졸람이나 프로포폴 등 진정(수면)유도제를 사용한다. 간혹 이런 약물의 부작용으로 회복 후 운동실조, 균형상실 등 부작용이 나타나며 고령자나 쇠약한 환자는 무호흡, 저호흡, 혈압저하 등이 올 수 있다.
수면내시경으로 인한 사고 대부분은 심장충격기와 산소포화도측정기 같은 응급장비 및 시스템을 갖추지 않은 병원에서 주로 발생하기 때문에 검사 전 이같은 장비를 갖췄는지, 마취과 전문의가 상주하는지를 체크해야 한다.
김재규 중앙대병원 소화기내과 교수는 “수면내시경검사 및 내시경을 통한 시술이 잦은 요즘 환자 안전에 대한 교육을 받은 전문 의료진이 필수”라며 “내시경 관련 의료 종사자는 모두 응급처치에 대한 전문교육을 받아야 하고, 마취과 전문의는 내시경실에 상주하면서 내시경 중 발생할 수 있는 응급상황에 즉각 대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캡슐내시경은 비타민 알약처럼 작은 크기의 진단 장치로 환자가 캡슐내시경을 삼키면 장치가 몸 속 소화기관을 돌아다니면서 영상을 촬영한다. 촬영된 영상은 환자가 허리에 차고 있는 기록장치로 전송돼 저장되고 의사는 저장된 영상을 바탕으로 환자의 질병을 진단한다.
관 형태의 일반 내시경이 들어가기 힘든 소장 등을 관찰할 수 있어 원인 모를 복통, 설사, 출혈 및 빈혈의 원인을 찾는데 효과적이다. 일반적으로 소장에서 나타날 질환의 경우 65~70% 이상 식별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엔 크론병, 소장종양 진단에도 활용되고 있다.
캡슐내시경검사도 일반 내시경검사와 마찬가지로 검사 10시간 전부터는 금식해야 하며 필요한 경우 대장내시경과 마찬가지로 장청결액을 복용하기도 한다. 몸에 심박동기·제세동기를 가지고 있거나 장폐색·장협착이 의심스럽거나, 임산부인 경우 캡슐내시경 검사를 받을 수 없다.
환자가 캡슐을 삼킨 후 검사가 진행되는 8시간 동안 걷기나 눕는 등 일상적인 행동은 가능하다. 단 격렬한 운동이나 힘든 일은 삼가야 한다. 검사 후 4시간이 경과되면 가벼운 음식을 먹을 수 있다. 캡슐은 1회용으로 장운동에 의해 이동하기 때문에 항문으로 배출되는 동안 고통이나 불편감은 크게 없다.
정혜영 이대목동병원 내과 교수는 “관 형태의 일반 내시경은 환자의 장기를 실시간으로 관찰하며 처치도 가능해 위암, 대장암, 역류성식도염 진단에 용이하다”며 “캡슐내시경은 일반 내시경으로 관찰이 힘든 소장의 출혈 등을 관찰하는 데 효과적이지만 일반적인 위나 대장검사에는 큰 효과가 없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