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습적인 입법예고에 예고기간 8일로 짧아 ‘일방적 행정’ 행태의 표본 지적
보건복지부가 지난달 29일 내놓은 신의료기술평가 개정안이 ‘의료산업활성화’라는 본래 취지를 외면하고 도리어 규제완화가 아닌 규제강화로 이어져 관련 업계로부터 비난을 사고 있다.
지난달 29일 복지부는 식품의약품안전처 허가를 받은 의료기기 제품에 한해 신의료기술평가를 1년간 유예하겠다는 일부 개정안을 발표했다. 개정안의 취지는 신속한 제품 상용화를 통해 국내 의료기기 업계의 경쟁력을 높이고, 의료현장에서 신의료기술이 조기에 사용될 수 있기 위한 것이다.
수년째 신의료기술평가 제도는 업계 내부에서 ‘이중규제’의 대표적인 사례로 거론됐다. 식약처에서 유효성과 안전성을 검증받은 제품에 대해 또다시 한국보건의료연구원(NECA)에서 유효성에 대해 재평가를 받는 구조 자체가 잘못됐다는 지적이 끊임없이 제기됐다.
그동안 복지부와 NECA는 신의료기술평가는 기존 의료기기와 신규 의료기기의 유효성을 비교평가하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기 때문에 평가 기준이 다르다는 이유로 신의료기술평가제도가 꼭 필요하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예컨대 식약처는 신규 의료기기가 안전하고 제 기능을 발휘하는지에 대해 초점을 맞추지만, NECA는 기존 기기와 비교해 유효성에서 우위가 있는지 또 특정 적응증에 관해 실제로 진단과 치료에 도움을 주는지 검증한다는 주장이다.
관건은 신의료기술 인증을 받아야만 개발한 의료기기 업체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으로부터 적응증과 급여코드(또는 임의비급여코드)를 받아 병의원에 의료기기를 적극적으로 공급하고,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데 현재는 식약처 허가 외에 복지부 및 NECA의 신의료기술 인증을 추가로 획득해야 비로소 심평원에 코드 부여를 요청할 수 있다는 것이다.
복지부가 지난달 29일 전격 입법예고한 개정안의 주요내용은 요약하면 △식약처에서 허가를 받은 의료기기는 1년간 신의료기술평가를 유예하되 △기존 특정 의료기기에 대한 비교임상 문헌이 있어야 유예가 가능하며 △이럴 경우 해당 의료기기가 특정 대상질환 또는 적응증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부합할 경우 1년 동안 신의료기술평가가 면제되며 그 사이 보다 완벽한 안전성 및 유효성 자료를 NECA에 제출해 검증받아야만 신의료기술로 인정받아 건강보험 급여화 등 정부로부터 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A의료기기 관계자는 “복지부가 비교임상 문헌을 쉽게 보는 데 이는 관련 사례를 구하기도 어려운 데다가 자본력과 인력 등에서 아직 영세성을 탈피하지 못한 국내 업체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부담을 주는 데 복지부는 업체의 사정을 조금이라고 알고 저러는 지 이해할 수 없다”며 분노했다.
그는 또 “외국에서도 비교임상은 경쟁제품과 차별화된 마케팅 자료로 활용하기 위해 진행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인허가 단축 과정을 줄여 경제활성화를 유도하려는 청와대나 기획재정부의 큰 정책적 맥락을 외면한 채 교묘히 복지부와 NECA의 실익을 위한 대책만 내놓고 있다”고 날을 세웠다. 즉 복지부가 출연 및 사실상 통할하는 기관이 NECA이고, 식약처 출범으로 보건복지부의 입지가 좁아지면서 의료기기 급여화 권한을 놓지 않기 위해 정부 기조에 어긋하는 개정안을 내놓았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그는 이어 “이럴 바엔 차라리 기존 식약처 허가절차를 신의료기술평가 절차로 대체하는 게 나을 것”이라며 “상부(청와대 및 다른 경제부처)의 눈치를 보며 내놓은 언어 농단에 다름없는 개정안”이라고 비판했다.
B사 관계자 역시 “기존 제품 또는 경쟁사 제품과 비교한 임상자료를 만들기 위해서는 시간적·비용적 낭비가 상당할 것”이라며 “비교임상시험 문헌 제출 요건을 끼워놓았음에도 불구하고, 복지부가 마치 조기 상용화가 가능한 것처럼 위장 발표한 것은 기만에 가깝다”고 꼬집었다.
복지부에 개정안에는 더욱 막무가내인 독소조항이 또 있다. 이 규칙을 2015년 8월 1일부터 시행하되 이 규칙 시행 후 최초로 임상시험자료를 첨부해 식약처 품목허가를 받은 의료기기부터 적용한다는 것이다. 이는 현재 신의료기술평가를 밟고 있는 제품에 관해 사실상 평가 통과를 포기하라고 종용하는 선언과 다름이 없다고 업계 관계자들은 입을 모았다.
이번 개정안 입법예고 절차에도 구린내가 진동한다는 지적이다. 기습적으로 예고한 데다가 입법예고기간을 지난 6월 29일부터 7월 6일로 짧게 잡아 의료기기 업계가 인지하고 대응하는 시간을 주지 않으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통상적인 입법예고기간은 15~30일이다. 더욱이 업계의 이해가 크게 좌우되는 사안에 8일에 불과한 입법예고기간을 잡은 것은 일방적 행정 행태의 전형이라는 지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이미 1상에서 2상, 3상까지 임상연구를 거쳐 논문까지 나와 식약처에서 허가받은 제품은 안전성, 유효성이 입증된 것이므로 조속히 심평원의 코드를 받아 치료에 이용되는 게 환자에게도 바람직하다”며 “특히 의료선진국서 첨단기술로 입증받아 시판된 제품까지 재차 신의료기술인증평가를 받는 것은 지나친 형식주의”라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