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은 우리에게 시시때때로 건강신호를 보낸다. 피로감, 근육 떨림, 충혈, 두통 등 신호의 형태도 무척 다양하다. 이 중 가장 솔직하면서 원초적인 신호가 몸에서 풍기는 냄새다. 전문가들은 몸에서 나는 냄새의 정체를 정확히 알면 걱정은 덜고 건강관리는 한결 쉬워진다고 입을 모은다. 흔히 입이나 몸에서 냄새가 나면 잘 씻지 않는 사람으로 오해하기 쉽지만 실상은 큰 질병을 앓고 있을 수 있다.
일본의 고미츠 우네키 의학박사는 저서 ‘입 몸냄새 모두 싹’에서 입냄새와 몸냄새는 질병을 파악할 수 있는 바로미터라고 설명했다.
몸에서 나는 특유의 냄새는 단순히 생리적인 원인이 아닌 병적인 현상에서 비롯될 수 있다. 몸을 청결하게 해도 병이 있거나 내장 등의 기능이 약해진 경우 이상 증후를 나타내는 냄새 물질이 땀, 변, 입을 통해 나오면서 냄새를 유발한다. 이 때문에 입냄새나 몸냄새가 여느 때와 달리 이상하다고 느껴진다면 건강상태를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
스웨덴 카롤린스카연구소의 매츠 올센 교수는 최근 각각의 질병은 나름대로 독특한 냄새가 있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이번 연구결과에 따르면 림프샘의 결핵성 부종인 갑상선종이 헐어 터지는 질환인 ‘연주창(경부림프선결핵)’은 몸에서 김빠진 맥주 같은 냄새, 당뇨병 환자는 숨을 쉴 때 아세톤 냄새가 났다.
연구팀은 또 8명의 건강한 사람을 박테리아내독소(LPS, lipopolysaccharide, 지방다당질) 주입군과 식염수 투입군으로 나눈 뒤 4시간 동안 타이트한 티셔츠를 입게 했다. 이후 40명의 판별단이 다른 냄새가 밴 티셔츠 샘플의 냄새를 맡도록 한 결과 LPS를 주입한 그룹의 티셔츠에서 더 강렬하고 불쾌한 냄새가 나는 것으로 평가했다. 즉 박테리아에 노출돼 면역력이 활성화되면 체내 시아노톡신(Cyanotoxins) 수치가 높아지면서 역겨운 체취가 나게 된다.
소변 냄새도 질병 유무를 판단하는 기준이 될 수 있다. 소변의 지린내가 지나치게 심한 경우 폐쇄성 방광염이나 신우염 등을 의심해볼 수 있다. 또 장과 방광 사이에 누공이 생기면 소변에서 구린내와 같은 냄새가 나기도 한다.
입냄새는 전신질환 유무를 비교적 정확히 파악할 수 있는 신호다. 대부분의 구취는 입 속의 세균으로 인한 치주질환으로 발생하지만 간혹 전신질환의 원인인 경우도 있다. 양훈식 중앙대병원 이비인후과 교수는 “구취의 85% 이상이 구강 위생상태 불량, 잇몸질환, 백태, 인두염, 편도염, 구강암 등으로 발생하며 나머지 15%의 경우 기관지확장증·폐농양 등 폐질환, 간성혼수 등 긴질환, 당뇨병 합병증 등이 원인이 된다”고 설명했다.
만약 입이나 소변에서 단 냄새나 아세톤 냄새가 나면 당뇨병을 의심해볼 수 있다. 특히 트림할 때 시큼하면서 단 냄새, 흔히 ‘단내’로 표현되는 냄새가 나면 바로 검진을 받아보는 게 좋다.
당뇨병 환자는 내분비계에 장애가 생겨 인슐린이 제대로 분비되지 않는다. 이로 인해 탄수화물의 분해능력이 떨어지고 지방대사가 활성화되면 아세톤 성분이 배출된다. 이 물질이 폐를 통해 입과 코로 배출되는 과정에서 시큼한 냄새가 난다. 잘못된 방법으로 다이어트를 하고 있는 사람에서도 비슷한 냄새가 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소화불량, 역류성 식도질환을 앓는 환자도 입에서 역한 냄새가 날 수 있다. 위의 냄새가 올라오는 것을 식도가 막지 못하기 때문이다. 위암이나 소화흡수 불량, 장내 감염, 장폐색의 경우에도 비슷한 냄새가 난다. 이럴 땐 수면시 머리를 15㎝ 이상 높게 해 위산 역류를 막고 밤참을 금한다. 기름진 음식, 초콜릿, 술, 담배, 커피 등도 역류 증상을 악화시키므로 섭취를 삼가는 게 좋다.
위장관에 출혈이 있으면 피가 썩는 냄새가 나기도 한다.
신장질환이나 심각한 만성 신부전증을 앓고 있을 경우 입에서 소변(암모니아) 냄새가 나기도 한다. 이종철 삼성서울병원 소화기내과 교수는 “신장질환 환자는 배설이 잘 되지 않아 혈액 및 침 속의 요소 농도가 증가하고 그 일부가 암모니아로 변해 이같은 현상이 나타난다”며 “폐질환인 경우에는 숨쉴 때 비린내가 약간 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신장기능이 저하되면 노폐물이 제 때 배설되지 않아 혈중 요소 농도가 증가하고 타액의 요소 농도도 덩달아 높아진다. 이런 경우 요소의 일부가 암모니아로 변하면서 입에서 악취를 풍긴다. 김정현 한림대 춘천성심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신부전에 의한 요독증이 있으면 숨 쉴 때마다 소변냄새나 생선비린내와 비슷한 냄새가 난다”고 설명했다.
생선냄새증후군(트리메틸아민유리아) 환자의 경우 몸 전체에서 옆에 있는 사람이 느낄 정도의 비린내가 난다. 이 질환은 유전적으로 생선 비린내가 나는 신경흥분전달물질인 ‘콜린’의 대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땀, 오줌, 침, 피, 코 등에 축적된다.
입에서 대변 냄새가 나면 위식도역류, 장누수증후군 등을 의심해봐야 한다. 위장 내에 많은 구멍이 생기는 질병인 장누수증후군은 소화되지 않은 음식이 혈류로 스며들어 각종 음식 알레르기와 자가면역질환을 유발할 수 있으므로 조기 발견과 치료가 필수적이다.
마늘 냄새가 난다면 셀레늄 과다 섭취를 의심해볼 수 있다. 셀레늄은 인체 대사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항산화제이지만 과다 섭취할 경우 신경 손상을 유발할 수 있다.
달걀 썩는 냄새는 간질환을 알리는 경고다. 인체 소장에서는 필수 아미노산의 일종인 ‘메티오닌(methionine)’이 세균에 의해 분해되면서 황화합물의 일종인 메르캅탄이 생성된다.
이 물질은 간기능이 정상이면 소변 등을 통해 자연 배출되지만 간경변이나 간암 등 중증 간질환을 앓는 경우 체내에 축척된 뒤 폐를 통해 입과 코 등으로 배출되면서 달걀 썩는 냄새와 비슷한 지독한 냄새를 풍긴다.
간경변이나 간암 등 중증 간질환을 앓으면 입에서 한 냄새가 날 수 있다. 생선 내장이나 야채가 썩는 듯한 냄새는 폐질환 화농균으로 폐 조직이 급속이 파괴되고 있는 징후다. 날고기가 썩은 것 같은 입 냄새가 난다면 위벽 일부가 괴사된 위염을 앓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또 부비동염(축농증) 등의 콧병이 있을 경우 입을 벌렸을 때 비릿한 냄새가 난다. 편도선에 있는 구멍 사이에 음식물 찌꺼기 등이 끼어 덩어리를 이룬 편도결석도 구취의 원인이 된다. 여기에 세균이 번식해 부패하면 냄새가 날 수 있다. 문인희 인제대 서울백병원 이비인후과 교수는 “편도결석에 세균이 번식해 부패하는 과정에서 냄새가 목과 입을 통해 나오게 된다”고 말했다.
건강관리협회 동부지부 김태선 원장은 “입냄새의 이상 정도가 심하고 나아질 기미 없이 계속된다면 전반적인 건강상태 확인을 위한 진료 및 건강검진이 필요하다”며 “면역성을 높여주는 폐렴백신 등 예방접종도 제 때 맞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