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MERS) 확산으로 한반도 전역에 불안감이 확산되는 상황에서 건강기능식품 업계는 쾌재를 부르고 있다. 가짜 백하수오 사건으로 급락했던 매출이 메르스에 대한 불안과 병원 진료에 대한 불신이 겹쳐지면서 다시 상승세를 보였기 때문이다.
건강기능식품 제조업체들은 보충제나 건강기능식품에 필수 영양소가 다량 함유돼 면역력 향상, 각종 만성질환 예방 및 치료에 효과적이라고 홍보한다. 이 중 대표적인 게 셀레늄(Se, selenium)과 크롬(chromium, Cr)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들 영양소가 인체에 꼭 필요하고, 긍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맞지만 자연적으로도 충분히 권장량을 섭취할 수 있어 보충제나 건기식은 따로 먹을 필요가 없다고 조언한다. 특히 권장량보다 과다 섭취할 경우 중추신경계, 간, 심장, 폐, 피부 등에 치명적인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
셀레늄의 효능은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하지만 세계 의료계에서는 건강기능식품 등을 통해 셀레늄을 섭취해도 별다른 효과가 없다는 의견이 힘을 얻고 있다. 오히려 과다 섭취로 인한 부작용을 경고하는 연구결과가 속속 나오고 있다.
‘기적의 원소’ 또는 ‘푸른 빛의 마법사’로 불리는 셀레늄은 동물 간, 육류, 생선, 곡류, 견과류, 달걀, 과일, 채소류에 다량 함유된 항산화물질로 체내 여러 가지 작용에 필수적인 역할을 한다.
강력한 항산화력으로 세포막 손상을 일으키는 과산화수소 등 활성산소를 제거해 신체조직의 노화와 변성의 속도를 지연시킨다. 산화를 방지하는 항산화 영양소에는 셀레늄을 비롯해 비타민 A·C·E와 플라보노이드(flavonoid) 등이 있다. 셀레늄은 비타민E보다 항산화 효과가 2000배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셀레늄의 항산화작용은 해독 및 면역기능을 증진시키고 자외선, X선, 방사선으로부터 받는 피해를 경감시켜 암·간질환·신장병·관절염 등을 예방 및 치료한다. 남성의 고환과 전립선에 영향을 미쳐 건강한 생식기능을 유지할 수 있게 돕는다.
‘프로스타글란딘’으로 알려진 세포 신호분자의 대사에 영향을 미쳐 심혈관질환 위험도 줄일 수 있다. 다만 셀레늄과 심혈관질환 발생률 사이의 명백한 반비례 관계는 입증되지 않았다.
일부에서는 셀레늄이 암세포가 자라거나 퍼지기 전에 사멸시켜 암으로부터 신체를 보호한다고 주장하지만 이를 뒷받침할 만한 임상근거는 아직 부족한 상황이다.
1978년 세계보건기구(WHO)는 셀레늄을 필수 영양소로 규정하고 50~200㎍을 1일 권장량으로 제시했으며 국내에서는 2008년 식품의약품안전처(당시 식약청)가 식품첨가물로 지정했다.
셀레늄은 토양 종류에 따라 함량이 달라지는데, 한반도의 경우 화강암이 70% 이상을 차지해 상대적으로 결핍 지역으로 분류된다. 하지만 곡물을 많이 먹는 식습관 덕분에 하루 세끼만 잘 챙겨 먹어도 권장량을 충족시킬 수 있다. 미국 국립암연구소의 신디 데이비스 교수는 “한국인들의 셀레늄 섭취량이 정확한 수치로 나와있지 않지만 무 양파 배추 등은 셀레늄 함량이 높고, 특히 김치는 다양한 성분이 함유된 만큼 연구 대상으로 가치가 있다”고 설명했다.
셀레늄이 부족하면 활성산소의 피해를 받아 내장기능이 저하된다. 임신 말기에 셀레늄이 결핍되면 유산, 조산, 사산 위험이 높아진다. 신생아가 모체에서 셀레늄을 충분히 공급받지 못하면 성장과 발달에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이밖에 근육통, 심근증, 케산병(Keshan disease) 등이 나타난다. 케산병은 중국 헤이룽장성 케산 지역 여자와 아이들에서 집중적으로 발생한 심장근육병증으로 치사율이 매우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처럼 셀레늄은 인체 신진대사 및 질환 예방에 효과적이지만 보충제나 건기식을 통해 과다 섭취할 경우 독성을 띠면서 각종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 흔한 부작용으로 머리카락과 손톱이 부스러지고 소실되면서 복통·설사·구토 등 위장장애, 피부발진, 피로감, 신경계 이상 등이 나타난다. 이처럼 과잉 섭취 시 나타나는 부작용을 ‘셀레노시스(selenosis)’ 혹은 ‘만성 셀레늄중독증(chronicseleniumtoxicity)’으로 부른다.
각종 질환에 대한 예방효과도 임상근거가 부족하다. 셀레늄은 1990년대부터 전립선암을 예방하는 물질로 알려지면서 전세계 많은 남성이 보충제로 복용해왔지만 1998년 미국 국립암센터(NCI)는 비타민E와 셀레늄에서 전립선암 예방효과를 입증할 수 없었다고 최종 결론을 내렸다.
지난해 미국 프레드허친슨암센터 연구팀이 발표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비타민E와 셀레늄을 고용량 과도하게 섭취하면 전립선암을 예방하기는커녕 오히려 발병 위험이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건강기능식품 업체들의 홍보전에 말려 셀레늄 등을 과신하고 있다는 점이다. 변석수 분당서울대병원 비뇨기과 교수는 “크롬이 전립선암 예방에 효과가 없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는데도 전립선암 환자의 23.7%가 여전히 크롬이나 비타민E 보충제를 복용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며 “전립선암을 제대로 예방하려면 보충제에 의존하기보다는 신선한 채소, 생선, 콩, 토마토 등을 위주로 식단을 바꾸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셀레늄이 폐암 발병 위험을 줄여주는 것으로 알고 있는 사람이 많은데 연구결과는 반대다. 2013년 미국 텍사스대 연구팀은 셀레늄을 단독으로 먹거나 비타민E와 동시에 복용해도 폐암 발병률이 낮아지지 않았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전문가들은 셀레늄은 곡류 등에 다량 함유돼 있기 때문에 쌀을 주식으로 하는 한국인은 보충제나 건강기능식품을 따로 복용할 필요가 없다고 조언한다. 한국인 영양권장량에서 셀레늄의 평균 필요량은 하루 42㎍, 권장섭취량은 50㎍으로 설정돼있다. 임산부와 수유부는 각각 54㎍과 61㎍으로 일반인보다 조금 높다.
최원영 식약처 위해관리팀 연구사는 “건기식 등을 통해 복용하는 셀레늄의 양에 일상 식이로부터 섭취되는 양이 합해지면 자칫 과도한 양의 셀레늄을 장기간 섭취할 수 있다”며 “한국인은 일상생활에서 충분한 양의 셀레늄을 섭취하고 있으므로 셀레늄 섭취를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설명했다.
건강기능식품의 역기능에 대해 강조해 온 박진호 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도 “셀레늄을 과다 섭취하면 전립선 등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건강을 지키려면 건강기능식품에 의존하기보다는 제 때 식사를 챙겨먹는 게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당뇨병 환자가 혈당 조절을 위해 복용하는 크롬(chromium, Cr) 보충제도 별다른 효과가 없다는 게 의학계의 중론이다. 네덜란드 엘살라클리닉 클리프스트라 박사팀이 57명의 환자들을 대상으로 하루 400㎎의 크롬을 투여하고 3~6개월간 관찰한 결과 위약군과 공복혈당 수치가 크게 차이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장기적 혈당조절 지표인 당화혈색소(HbA1C), 혈압, 체지방 비율, 체중, 인슐린에 대한 반응성 등도 유의미한 차이가 발견되지 않았다.
크롬은 미량 무기질로 신체 조직 전반에 분포돼 있으며 혈장단백질과 결합해 운반된다. 셀레늄처럼 직접적인 항산화 작용을 하지는 않지만 인슐린의 보조인자(cofactor)로 작용해 포도당 대사의 항상성 유지를 돕는다. 즉 인슐린의 활성을 높여 포도당이 세포 내로 들어가는 것을 도와 혈당을 안정적으로 유지한다.
육류, 해조류, 감자, 치즈, 과일, 채소 등 다양한 음식에 소량씩 함유돼 있어 음식을 골고루 섭취하면 결핍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보충제나 건기식을 통해 과다 섭취할 경우 위장질환, 저혈당증, 간·신장·신경을 자극할 수 있다.
이같은 부작용 탓에 미국에서는 최근 크롬의 하루권장섭취량을 기존 50~200㎍에서 성인 남자는 35㎍, 성인 여자는 25㎍으로 낮췄다.
크롬의 산화 상태는 2가부터 6가까지 다양하며, 대부분 3가나 6가 형태로 존재한다. 자연계에 존재하는 3가 크롬은 독성이 낮아 식품이나 약 등에 첨가되지만 산업장 공기 중에 포함된 6가 크롬은 독성을 띠고 있어 만성적으로 노출되면 알레르기성 피부염, 피부궤양, 기관지암 등을 유발한다. 6가 크롬 화합물의 발암성은 3가 크롬의 영양적 역할과는 무관하다.
다만 몇몇 연구에서 3가 크롬, 특히 피콜린산크롬이 DNA 손상을 유발할 수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는 식이보충제로 사용되는 크롬이 식품에 함유된 일반적인 크롬과 다르게 유해산소의 형성을 유도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특히 신장질환이나 간질환이 있는 사람은 크롬을 과다 섭취할 경우 증상이 더 악화될 수 있어 주의해야 한다.